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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이야기 - 세계 거물들은 올해도 그곳을 찾는다
문정인.이재영 지음 / 와이즈베리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다보스 이야기
단어를 보면 직관적으로 해석하길 좋아한다. 다보스 포럼이 뭐야? 라고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거긴 모두가 다 BOSS야” 라고. 실제
다보스에서는 연설을 하는 사람이나 청중이나 수준이 비슷하기에 이 말도 일리가 있지 않을까?
DAVOS FORUM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스위스의 작은 마을 다보스에 모여서 전세계의 석학과 지도자들이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다보스 포럼에서 나온 이야기는 전세계의 전파를 타고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사실 다보스 포럼의 정식명칭은 세계경제포럼 (World Economic Forum, WEF)이다. 포럼의 사전적
의미는 “포럼은 로마시대의 도시 광장을 일컫던 포룸(Forum)에서 유래된 것이다. 로마시대의 포룸은 시민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연설·토론하는
장소였는데, 오늘날의 포럼도 자유토론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토론자들의
발언과 함께 질문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포지엄과 형식이 비슷하나 토론자간 혹은 청중과 토론자간에 활발한 의견 개진과 충돌·합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포럼 [Forum] (매일경제, 매경닷컴)
세계의 지도자와 경제학자가 총출동하여 포럼을 하니 이는 당연히 전세계의 정책적인 의제가 될 것이며, 화두가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저자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다보스 포럼을 참관하며 각 년도의 이슈를 이 책에 남겨놨다.
책을 읽다가 참 인상적인 문장이 들어왔다.
“1994년에는
사회주의가 중국을 구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며,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이제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인데 누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할 것 같다. 사회주의체제를
지탱해온 중국이 전세계의 자본주의를 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워싱턴 컨센서스 vs 베이징 컨센서스도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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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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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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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정부, 재정건전성, 무역∙통상∙투자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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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규율, 거시정책의 탄력적
운용,
맹목적 민영화의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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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전세계 금융위기에서 작은정부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베이징
컨센서스의 국가의 규율이 필요하며, 거시정책의 탄력적인 운용이 필요하다.
이번 KTX민영화 문제에서 던져주듯이 다보스는 이미 “맹목적 민영화를 거부”하고 있었다.
다보스 포럼 자체가 전세계의 리더가 참가하는 포럼이다. 2009년에 저자는 이런 교훈을
얻었다고 하였다.
2009년의
다보스 포럼에서 얻은 4가지 교훈
1.
수출 주도 경제성장 전략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2.
양극화 문제와 사회통합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시장과 국가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면 공황심리가 나타나 절망과 패배주의의 악순환에 빠진다.
4.
“Some Lean Left. Some Lean
Right. We Lean Forward”
안타까운 점은 교훈이 교훈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지금은 2014년이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이 4가지 교훈은 교훈으로 끝나고 있다.
2010년 다보스 포럼의 주제는 ‘다시
생각하고, 다시 디자인하고, 다시 구축하자 ‘Re-think, Re-design, Re-build’이었다. 정말
‘다시 Re’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다시 Re’하고
싶었을까? 이 점은 의문점을 자아냈다. 2010년 뉴노멀 (New Normal)의 시작이 될 것이라 했다. 저성장, 지속적 긴축재정, 통화정책, 고강도
정부규제를 특징으로 하는 뉴노멀. 당연한 결과이다. 이제
각 국가들은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했으니까.
2011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이
제안한 ‘G20 대 G제로’
논쟁은 참 흥미로웠다. G20이라곤 하지만 역시 이곳도 정치적인 영향력의 장이 된다. 우리나라가 G20 의장국으로 행사를 치뤘지만 실제로 얻은 이득은
별로 없어 보였다. 모이기만 모여서 이야기한다고 무슨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 포럼이 되어가는 모습 같다.
2013년에는 뉴노멀이 마무리되고 있다고 보았다. 낙관론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성장이 지속돼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각국이 긴축정책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관이 현실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세계
30억 노동자 중 8억 명이 하루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연명하고 있는 반면 미국 GDP 성장의 3분의 2가 미국 인구 1퍼센트 미만의 사람들이게 집중되는 현상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진짜 놀라운 일일까?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꾸준히 보아왔다. 그런데 뭐가 놀라운가? 난
저 1퍼센트의 탐욕이 놀라울 뿐이다.
다보스 포럼 하나로 전세계의 소통이 될리는 없다. 소통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지만 소통이 아닌 불통이 대세지 않은가? 이 불통의 기반에는 평등하지 않은 포지션이
문제일 것 같다. 우린 이제 불평등이란 개념을 좀 달리 볼 필요가 있다. 평등하지 않다라는 것은 그 기준점에서 어긋난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평등의 개념부터 세우고 이야기를 진행해야 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