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고전
녹색고전이란 책 제목보다는 녹색인문학이라고 하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정말 많은 지식과 감정들이 있었다. 저자의 지식과 상식에 감탄하면서 본 책이다. 빠르게 읽을려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한참을 읽은 책이었다. 거의 2~3페이지마다 포스트 잇을 붙여가며 가슴에 새기고자 한 이야기가 참 많았다. 이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쓸려면 분량이 참 많아야 할 것 같다. 서평란에 몇 줄 적는다고 책에서 받은 느낌을 전달하기엔 역부족이고 그럴 글 솜씨도 되지 못한다. 분명한 점은 난 이 책을 자구 꺼내어 볼꺼란 사실이다.
고전에 대한 이해부터 경영에 대한 이야기, 생태학의 이야기, 서양철학 등 참 많은 소재들이 녹아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인데 어떻게 이 책을 소개할지도 상당히 어렵다. 여태까지 읽어본 책 중에 느낌을 전달하기에 가장 어려운 책이 아닌가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소유욕 강하다. 나 또한 소유욕이 강하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배우고 싶어한다.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쩌면 이 말은 현대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소유욕을 갖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스쿠아마시족 추장 시애틀의 말을 인용해보자.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 사실 이 말은 서부침략시대가 맞을 것 같다 – 때 미국정부가 스쿠아마시족에게 땅을 팔라고 했다. 추장은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땅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우리로서는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낯설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부족은 자연 속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살았던 것 같다. 요즘의 인류는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연 위에서 살려고 하니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먹이 사슬이 최고 포식자라고 자부해서 그런지 자연에게도 포식자의 위치를 점하려는 것 같다. 이렇게 포식하니 배탈이 나지.
일벌은 1kg의 꿀을 모으기 위해 지구 한 바퀴를 비행한다고 한다. 우린 이 꿀을 양봉이라는 이름으로 취한다. 산업매커니즘으로 하나의 경제가 되었지만 우린 자연을 마구 이용하고 있다. 지구적인 재앙도 우리의 잘못이니 뭐라 할 수 있겠나 싶다.
가이아를 영어로는 mother earth라고 한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 모든 신들의 어머니. 그런데 earth 가 들어간다. 세상, 지구, 땅, 흙이라고 해석하는 earth가 들어간다. 신의 이름이 자연이다. 즉 자연의 탄생과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위대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생과 사를 순리로 받아들이는 그 초연함의 심안을 우리가 어찌 따라 가겠는가?
녹색 고전이라는 책 제목을 난 처음 녹색 인문학이라 부르고 싶었다. 읽다 보니 참 여러 가지 지식을 많이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허나 책을 더 읽다 보니 녹색 인문학이란 제목보단 ‘자연과 고전’, ‘인문학 속의 자연’ 등 여러 가지 제목을 붙여보고 싶었다. 한 두 가지 키워드로 이 책을 정의하고 논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렇다고 책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단지 난 자연과 동화되어 많은 분야를 논한 이 책을 자주 펼쳐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