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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북리뷰] 젤롯
종교서적은 처음 접해본다. 주변엔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난 없다. 누구는 신앙이라고 하고 누구는 믿음이라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쓰는 용어일 뿐이고 난 그저 역사적인 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고역이었다. 그것도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라는 부제가 뜨억~ 하니 있는 책이니 더 그랬겠지.
자기 성공담이나 위인을 기리는 책들을 보면 그 사람이 잘한 일
위주로 기술을 한다. 책이 쓰여진 목적이 그러하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 책도 그렇게 많이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첫 몇 페이지를 지나고 나니, 이거 소설이야? 에세이야?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었다. 마구 찬양하지 않고, 마구 비평하지도
않는다. 작가는 이 책을 역사 다큐처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사실에 접근해서 쓸려고 한 것 같다. 뭐 내가 Bible을
읽어본 적이 없으니 이 시각이 틀렸을지도 모르지만. 섹스피어 원서를 읽으면서 느끼는 무지의 이중질곡
같을 수도 있다. 허나 어쩌겠는가? 이건 순전히 나만의 시각이니
어쩔 수 없지. 지금도 난 Bible을 읽을 생각이 전혀
없느니까. 각설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보자.
우린 ‘난세에 영웅이
출현한다.’는 말을 왕왕한다. 예수가 목수인지도 처음 안
사실이지만, 이 시대에 사회적인 타락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이
시대의 히브리어는 서기관과 율법학자만의 언어였고 예수와 같은 소농은 히브리어로는 의사소통을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회화용 히브리어도 어렸단다. p 77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인정하고
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열심(zeal)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 ‘열심(zeal)’이라는
말은 토라와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이방 주인을 섬기지 않으며(결코 인간을 주님으로 섬기지 않으며) 하느님의 주권에 대해 무조건 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p 84
1세기 팔레스타인에게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의 삶을 살려고 애쓰는 유대인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로마인과 이방인뿐 아니라 로마에
빌붙어 아첨하는 동료 유대인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열심’을 의미하는 ‘젤롯(zealots)’이리고 불렀다. p 85
음… 타인을 배격하는
삶이 이 당시에는 당연했던 것일까? 다름 사람의 믿음을 배격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보자면 포용성을 상당히 뒤떨어졌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이 바로 젤롯이다. 음… 이건 무슨 아이러니인지..
내가 생각하기엔 혁명가, 사상가는
자신을 숨긴다. 메시지 속에서도 자신을 숨긴다. 예수는 그의
비전을 전달하기 위해 시대 상황을 반영했던 시대적 사상가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기적 행위에는 ‘가르침’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즉 예수의 기적은, 그의 특정한 메시지를
유대인들에게 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P 173
대부분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대중 앞에서 한다. 그리고 자신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예수는 12제자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말은 한 입 두 입 전달되게
되면 확대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을 생각하면 구전을 통한 전달이야 말로 예수가 행한 정치적인
행태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후반부에는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했다. 그러기에 읽기에 부담스런 면도 없진 않았다. 다만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좀 다른 면이 있다면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