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마음을 살린다 - 행복한 공간을 위한 심리학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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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매일 매일을 전쟁같이 사는 우리에게 휴식은 그리 자주 찾아오지 않죠. 주중엔 열심히 일하고 주말이 되면 쉬긴 하지만 이 또한 금방 지나갑니다. 이런 일상보다 더 힘든 것은 시련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가면서 상처를 치유하기는 상당히 힘이 듭니다. 이럴 땐 어디로든 떠나고 싶죠. 떠남은 돌아오기 위함이지만, 이 당시에는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기 보단 떠남그 자체가 치유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전기적인 신호로 작동한다고 합니다. 이 전류가 강하면 20와트의 전구를 밝힐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 뇌의 여러 전기 신호로 우리 몸에는 호르몬이 붐비됩니다. 이로 인해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도 호르몬으로 치유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을 하지만 웬지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 뇌의 작용으로 호르몬과 성격, 언행을 하지만 이렇게 본다면 인간은 전기적인 신호에 의해 움직이는 하나의 개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요즘은 아주 대중화된 커피하우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하우스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고 앉을 장소를 정합니다. 그런데 희안한 점은 한 번 앉으면 그 자리를 고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 자리에 앉으면 생각도 잘되고, 책도 잘 읽히고 글도 잘 써집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그 장소는 나에게 최적화된 장소가 아닐까요? 커피하우스에는 커피 냄새가 퍼져 있지만 각 자리마다 냄새의 밀도는 다르겠죠? 커피 냄새가 진한 곳이 있고 약간 연하게 나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코는 오른쪽, 왼쪽에서 이 냄새의 밀도를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냄새의 밀도를 정하고, 사람들이 이동하면서 시야를 방해할 수 있기에 시야를 방해 받지 않는 장소 등도 고려해서 자리를 정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자리도 이렇지만 여행하는 장소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할 때의 낯섦은 일종의 스트레스일 수 있습니다. 이 스트레스는 일상의 스트레스와는 다를 것입니다. 그런데 낯선 장소에 여러 번 가면 익숙합니다. 책에서는 미로를 찾는 경우를 들고 있습니다. 미로에서 길을 찾기 위해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연습을 통해 이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여행이 연습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같은 장소를 여러 번 인지하게 되면 낯섦보다는 익숙함이 오기에 여행에서의 스트레스는 줄어들겠지만, 여행이 주는 좋은 긴장감을 사라들게 됩니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하죠. 이런 일상에서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고독이라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생체학적으로 우리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아야겠지만, 때로는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웃고 떠드는 시간이 마음을 즐겁게 하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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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얼굴 - 문학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어가는가
최문규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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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삶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아

태어나면서 살아가는 중에 우리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낀다. 삶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다. 삶을 다시 시작하고도 싶고, 이 삶이 내 삶이 아니기를 바라는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에겐 타임머신도 삶을 리셋 할 방법도 없는데.

살아간다, 산다, 삶이다라고 할 때 우리는 말 그대로 몸에는 체온이 있고, 인식을 할 수 있고, 말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죽음은 이 모든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죽음을 이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죽음. 살아 생전에 우리는 죽음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살아있을 때 죽음은 타인의 경험을 빌려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상태일 뿐이다. 죽음에 대한 정의가 무수히 많은 것도 아마 경험해 보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내용은 이 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죽음을 경험했다고 말할 경우, 그 경험은 사실 자기 자신의 죽음과 무관한, 대체로 타자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 p 91 )

죽음을 이야기하기 앞서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보아야 한다. 시크릿 가든에서 보면 주인공의 정신이 바뀐다. 주위 사람들은 정신이 바뀐, 즉 육체만 갖고 있는 정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신이 바뀐 사람을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그 사람인 것인가? 몸뚱이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이 드라마에서 ‘몸이 바뀌고 정신이 바뀐 상태.’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존재는 정신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존재. 있는 상태. 그것은 보이지 않는 정신이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자신의 끝을 맞이할 때, 즉 죽음에 도달할 때 그 현존재는 더 이상 현존재가 아니라 "'현'이라는 존재를 상실한 것"이다.” ( p 89 )

“현”이라는 존재를 상실할 때, 죽음이라고 했다. 우리들의 삶에서 죽음은 상실로 나타난다.

베르린 대학의 문화학자토마스 마호는 이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죽음(der Tod)이 아니라 죽은 자(der Tote)"라고 말하면서 "죽음의 새로운 가시성"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한다.

마호의 주장에 의하면, 근대 사회가 금기시하고 배제하려 했던 것은 엄밀히 말하면 죽음이 아니라 죽은 이들의 모습이었으며, 이제 근대에서 탈근대로 전환하는 지금 "죽은 이"의 구체적인 모습과 담론이 복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p 72 )

샤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를 의식하면서, 인간을 “상황-내-존재”로서 규정한다. (112)

샤르트르는 하이데거와 약간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져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중요한 관점인지가 중요할 수 있을까? 이렇게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도 다 죽음을 경험(?)할 수 없기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보드리야르는 또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죽음과 관련하여 보드리야르 시각의 핵심은 “실제적인 것의 죽음”에 있다. 바로 이 점이 하이퍼리얼리즘적 세계의 특징이기도 하다.” ( 146 )

“세계”, “상황”, “실제” 등 각 철학자의 해석은 다르지만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 한가지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은 어떨까?

“삶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까? 만일 그렇다면, 죽음은 고통스러운 삶에 비하면 어쩌면 더 평화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 p 375 )

삶과 죽음. 양면성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하지만 그 죽음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나기에 죽음이 더 두려울 수도 있다.

죽음을 통해 부활한다는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 아닌 새로운 삶의 탄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식만으로 삶과 죽음을 이해할 순 없다. 그렇지만 인간이면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는 죽음. “나 태어날 때 나만 울고 다 웃었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 죽을 때 나도 웃고 다 웃었다.”라고 한다면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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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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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우리가 사랑한 헤.. 헤세가 사랑한 책..

이걸 뭐 어떻게 말해야 하나? 헤세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런데 헤세는 다른 책을 좋아한다. 이거 뭐 애증의 관계인가? 여튼 뭐 이 책은 헤세가 여러 작품들의 서평(?)을 작성한 책이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헤세의 작품해설을 읽고 어떤 책인지 검색해 봤는데 번역서가 없다는 것이다. 유명한 책들을 제외하면 난 저 책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헤세처럼 유명한 작가가 평을 한 책에 대해서 일개 개인이 뭐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본다면 이 책은 거울 속의 거울?’,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어떤 사람을 보고 있는 나?’ 뭐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작품을 논하는 글을, 내가 다시 논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이 사람은 헤세다!!! 헤세!!! !!!

초반에는 헤세가 여러 작품들에게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두 번째에서는 작가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동양사상에 대해서 헤세의 생각을 이야기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딱히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느낀 점은 고전을 읽는다고 읽었지만 내가 접해보지 않은 고전이 많다는 것? 유명한 인기 있는 고전 이외에 많은 고전이 번역되었으면 한다.

평중에서 헤세가 많은 부분을 할애한 책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대한 부분이었다. 카라마조프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유일하게 때려죽이는 사람들, 유일하게 살인의 진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판사와 배심판사들, 낡고 선량한, 잘 보존된 질서의 옹호자들이다. 시민들과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죄 없는 드미트리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그의 무조함을 조롱한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법전에 따라 신과 세상에 판결을 내리는 심판자들이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잘못을 행하고, 이들이 무시무시한 불의를 행하고, 바로 이들이 살인자가 된다. 좁은 마음과 두려움과 제한된 생각에서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 p 94 ~ 95 )

얼마 전 케이블티비에서 나쁜녀석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 보지는 못했지만 범죄자가 범죄자를 잡는 이야기다. 중간에 얼핏보니 경찰이 범죄를 지시하는 장면이 나왔었다. 그렇다면 법을 수호하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법을 집행한다고는 하지만 집행자일 뿐이지 이들도 언제나 범법을 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누구나 법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어느 시대에나 가능하고 어느 순간에도 가능한 일.

그렇다면 헤세가 말한 드미트리는 우리 자신일 수 있다. 헤세의 시선으로 본 여러 작품이기에 헤세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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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법률여행 5 - 민사소송법 편 재미있는 법률여행 시리즈 5
한기찬 지음 / 김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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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재미있는 법률여행

일반인들이 평생 살면서 법원을 이용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있다면 경매를 하기 위해서 정도이지 않을까? 이 외에 소송에 휘말리는 일은 극히 적다고 본다.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 하나 자체만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하지만 겪는다고 하면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일 때문에 법률 대리인을 고용하지만, 그 고용인이 자기 일처럼 잘 처리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없다. 소위 말하는 전문직인 의료계와 법률계 쪽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기반으로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이들이 자신의 일처럼 잘 처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기에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사는 개인간의 다툼을 법률로 규정한 법이다. 듣기로는 민사만큼 복잡한 법도 없다고 들었다. 판례도 많고 사례도 달라 유권해석이 달라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근데 뭐 이 유권해석도 판사의 재량이니, 참 거시기하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판단해서 다른 사람들의 일을 결정해버린다. 강제력이 있는 판단. 이러고 나면 제도적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 에레에~

소송을 할려면 돈이 든다. 소송비용. 참 이게 이해가 안 된다. 소가에 1만 분의 35를 곱하여 인지액을 산출한다고 한다. 책에서 소송액이 200억이니 7천만원이 인지액이라고 한다. 이 인지액은 국고로 귀속된다고 한다. 근데 왜? 이렇게 큰 소송을 하는데 이렇게 큰 금액이 들고 그 금액을 국가가 가져간다고 한다. 3심제도니 국가는 2 1천만원을 꿀꺽~ 할 수 있다. 이거 참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다. 여기다 변호사 선임비용.. ~ 그냥 조용히 사는게 답인갑다.

재미있는 것은 소송 물가액이 5천만원 이상인 경우에 대리인을 고용한다면 반드시 변호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5천 이하는 법률을 잘 아는 사람이 대리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5천만원이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서는 소송과 재판을 나누고 있다. 소송과 재판 상에서 겪게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놓았는데 보면 볼수록 답답하다. 법률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다. 법은 법에 나와 있기에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이렇게 나와 있으니 이대로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용어가 그리 어려운가 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서는 금융관계 용어를 손질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데 법률쪽에서는 아직 그 행동이 잘 보이지 않는다. 뭐 밥그릇이니 철저하게 지킬려고 하겠지.

책 제목은 재미있는 법률여행이다. 흥미를 갖기 위해 여러 사례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작성했다. 실제 사례에서는 다를 수 있겠지만, 민사소송법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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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 삼백수 : 5언절구 편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엮음 / 김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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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우리 한시 삼백수

5언절구 편이다. 예전에 7언절구편이 나온 적이 있다. 그때도 느꼈지만 한시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글자를 정확히 맞추면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은 웬만한 어휘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7언절구보다 더 짧은 5언절구편이라 표현력이 다소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런 어휘력과 표현력이 부럽기도 하다.

시를 읽다 보면 영시든 한시든 우리나라 시던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단어와 표현이 다를 뿐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시대에 따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에 느낌과 지금의 느낌은 분명한 시간적인 갭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인간사 특별하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유방선(1388-1443)산에 사는 맛이라는 시를 보면 산 속에 집을 짓고 혼자 사는 이야기를 시로 만들었다. 산 속에 있기에 자연의 소리를 듣지만 외로움을 느낀다는 시다. 우리가 이 당시를 생각할 때 선입견을 갖게 된다. ‘옛날에는 산에도 많이 살고 그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응답하라 1997’에서 보면 PC통신을 할 때, 부산에 산다고 하면 회를 자주 먹고 집에 배가 있으며, 부산에 있는 자신의 친구를 알 수 있는 듯한 착각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곳, 혹은 지역이 주는 선입견으로 인해 나와는 동떨진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선입견에 불과하다. ‘산에 사는 맛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나 또한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구음(1614-1683)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 끝난 뒤 남한산성을 오르면서 지은 시다. 전쟁 후의 참혹한 현장을 시로 읊조렸다. 죄 없는 백성들의 죽음. 이 현장을 보면서 참혹한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 같다. 지금의 남한산성은 이 때와는 다르다. 산책과 여행의 한 코스일 뿐이다. 지금에야 성을 만드는 것이 전쟁을 대비하는 것은 아니니까.

남한산성은 예나 지금이나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남한산성이 갖는 의미와 지금의 남한산성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시간은 세월이 지나면 무엇이든 유물로 만들어 버리는 오묘한 힘을 갖고 있는 듯하다.

우리 한수 삼백수에는 계절의 변화와 장소, 감정의 변화에 대한 여러 시가 담겨져 있다. 한자를 잘 알아서 음과 뜻, 또는 파자를 하면서 읽으면 더욱 깊은 의미로 다가 올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확히 말하면 시를 읽으면서 한자 공부를 다시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는 다르지만 감정으로 쓰는 것이 시라고 생각한다. 나도 시를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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