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딸이 맹장수술을 하고 어머니는 뱃살을 빼기 위해 러닝머신을 사고 돈을 벌기위해 캐나다로 간 외삼촌으로부터 외롭다는 전화를 걸어올 쯤 아버지는 매주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전쟁통에 잘린 손가락 숫자 3과 고등학교 때 매일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던 친구를 위해 자살 소동을 벌이고 공장부도나서 그 친구에게 도움을 받아 떠오른 고등학교 때 친구 번호 24 오빠가 태어났던 날에서 얻은 4와 9 그리고 처음으로 마련한 아파트의 호수에서 얻은 34 끝으로 부산을 내려 가다 기차 안에서 한 여자에게 반해 달려가려다 -브레이크 페달을 만들면서 살면서 중요한 것은 잘 멈추는 일이란 걸 깨달아- 간신히 멈춘 로맨스에서 얻은 기차좌석 38 그러던 중 재수생인 딸은 라디오에 어릴 때 죽은 오빠를 사연으로 결혼한지 30년이 된 부보님을 4박 5일 동남아 여행을 보내드린다. 그런데 동남아 여행을 간 사이 로또를 못 샀고 그 번호는 얄궂게 당첨이 돼 버린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약수를 뜨러다니고 평소처럼 눌은밥과 오징어 젓갈과 무말랭이로 식사를 하고 공장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오후가 되면 어머니에게 몇 시 퇴근 예정이라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더 이상 뉴스를 보지 않고 케이블 드라마를 봤고 사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신문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날 평소처럼 눌은밥에 오징어젓갈과 무말랭이를 얹어 아침식사를 하고 "다녀올게"라고 말한 아버지는 행방불명이 된다. 어머니는 동남아에서 배달시킨 탁자를 거실에 옮기며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집살이가 심하셨던 어머니의 어머니는 폐병이 심한 아들 먹이려고 시어미니가 키운 닭이 개에 놀라 우물에 빠지자 또 혼날 것을 두려워해 밧줄을 묶고 우물로 내려간다. 어머니는 한 번 대화가 오간 후 다시 대답이 없자 줄을 흔들었지만 줄은 힘없이 흔들렸고 나중에 시체를 건졌을 때 어머니의 어머니는 두 손으로 닭을 꼭 껴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걱정 마라. 그걸 견뎠는데 이쯤이야. 게다가 닭고기도 잘 먹잖니." 이 소설은 묘한 매력이 있다. 자꾸 몇 번이나 앞장으로 넘겨 보게 된다. 단문으로 딱딱 끊어지는 문체는 지루함을 덜어주고 서민 가정의 이야기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느끼게 해 준다. 지우개를 만들며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잘 지우는 거라고 말했던 아버지도 큰 거액을 놓치고, 그게 잘 안된다며 떠나는 아버지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견디는 어머니. 떨어지는 벽지를 덮고 있는 멍한 재수생 딸. 삶이란 새옹지마라지만 살다보면 정말 소설보다 더한 경우를 만난다지만... 왠지 너무 가혹한 건 아닌지. 하지만 닭고기를 먹는 어머니를 통해 삶은 견디는 거라고 이 소설은 말하는 것일까? 어떤 책에서 이런 말을 읽었다. "따져보면 지금 자신이 겪는 어려움쯤이야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아주 필연적인 우연일 뿐" 이라고 그것에 반응하는 양상에 따라 위기가 될 수 있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시 삶에 즉각 즉각 반응하며 사는게 정답 일 것이다. 햅틱이 아닐지라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