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바람을 폈다. 그리고 딸을 낳았다. 상대 여성은 당당히 이혼하고 자수성가해 부자로 떵떵거리며 산다. 아버지의 장례식날 도우루는 그 여인과 그녀의 딸이면서 아버지의 딸인 다카코를 보게 된다. 초라한 어머니 앞에 화려해 보이는 그 모녀를 증오하며 미워한다. 그러나 다카코는 도우루와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고 3학년 때는 급기야 같은 반이 된다. 서로 애증이 섞인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그 눈빛 때문에 학교에는 그들이 사귄다는 소문이 돈다. 그리고 그들은 보행제 앞에 섰다. 분명 도우루와 다카코는 상처를 안고 사는 아이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도우루가 더 상처가 커 보인다. 하지만 미안해하며 사는 다카코도 맘은 그리 편치 않을 것이다. 보행제를 시작하면서 다카코는 자신만의 내기를 하고 그들의 친한 친구 도다 시노부, 유사 미와코, 다카미 고이치, 사사키 안나 그리고 안나의 동생을 통해 24시간의 보행제를 완성해 간다. 이 소설은 1박 2일을 꽤 두껍게 풀어냈다. 마치 나도 보행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마치 군대에서 행군을 다시하는 느낌?- 쉽게 쉽게 넘어간다. 작가는 추리소설의 대가라는데 추리 소설의 대가 답지 않은 따스함이 있다. 청소년기의 상처를 안고 또 진로를 걱정하며 보행제를 맞이하는 학생들. 어느 나라나 있는 그 또래의 모습이다. 그런 청소년기의 고민들은 고민에 그치지 않는다. 고민과 고뇌를 통해 더 성숙한 어른이 된다. 이 책의 주인공들 또한 각자의 문제를 보행제를 통해 느끼고 깨달으며 점점 더 커간다. 그냥 걷기만 해서 커가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루라는 시간동안 친구들과 얘기하고 이야기 못하는 고민은 친구들이 이해해주고 배려해준다. 그런 우정이 그들의 성장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우리 나라도 이런 행사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치맛바람 드센 우리 나라에서 이런 행사가 가능할까? 이런 생각 드니 씁쓸하긴 하지만 뭐 그래도 우리 나라 학생들도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도 우정이란 게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