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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와 빵의 문화사 - 고소하고 쫄깃한 분식의 유혹
오카다 데쓰 지음, 이윤정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빵과 국수, 이 두 가지 음식으로 동 서양 문화사를 아우르다니 발상부터 신선하다. 일본의 유명한 식문화사 연구자인 저자는 빵, 국수 그리고 과자라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통해 동, 서양 문명사를 깊이 있게 파고든다. 빵과 국수 그리고 과자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요리들을 통해서 동, 서양 문명사를 흥미진진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단, 인류의 역사, 문화, 신화, 식품영양학을 바탕으로 동, 서양 문화사를 넘나들기에 아주 쉽게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그 만큼, 책 곳곳에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하기도 하다.
먼저, 빵의 역사는 상상 외로 길고 길었다. 인류 문명의 기원, 이집트를 여행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인들을 ‘빵을 먹는 사람’이라고 기원전 5세기에 이미 말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빵은 최소 5천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때는 지금처럼 빵이 흔하디 흔한 음식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집트 시대에 빵은 부의 상징이었다. 노동자의 임금은 빵과 맥주로 치러졌다. 병사의 하루 품삯은 빵 20개, 관리의 월급은 납작한 빵 200개와 흰 빵 5개 이런 식이다.
사후 세계를 믿는 고대 이집트인에게 빵은 생명을 이어주는 신성한 음식이기도 했다. 기원전 1200년경에 그려진 람세스 3세 고분의 벽화에는 열일곱 종류 이상의 다양한 빵들이 200만개가 넘게 그려져 있을 정도이다. 오늘 날에도 이집트인들은 빵을 ‘에디쉬 발라디’, 즉 ‘우리의 생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이집트에서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유럽과 미국으로 계승된 서양 문명에서 빵은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숙녀나 귀부인을 이르는 영어, 레이디(Lady)도 `빵을 반죽하는 사람`에서 유래됐다. 주인, 영주, 귀족을 의미하는 로드(Lord)는 `빵을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 덩이의 빵에는 서양인들의 세계관, 종교관에서부터 가정사까지 삶의 모든 것이 오롯이 담겨있다니 새삼 놀랍다.
반면에, 동양 세계에서 빵은 오랫동안 천대를 받아왔다. 16세기에서야 처음으로 빵을 먹어 본 일본의 에도 시대 지식인들은 이렇게 고백했을 정도라고.
1. 빵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잘 모르겠다.
2. 이상한 냄새가 나서 잘 먹을 수가 없다.
3. 버터와 커피란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4. 맛있는 쌀밥을 마다하고 이런 것을 먹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고 이해할 수 없다.
이 후로도 오랫동안 동양 세계에서 빵은 외면을 받아왔다. 1860년대에도 여전히 일본 사람들은 ‘빵 도시락은 이내 속이 허해진다’며 기피한다. 밀가루는 쌀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서민들의 차지였다. 신이 내린 선물인 `밀`의 제분이나 제빵은 신의 사도인 수도사나 국왕,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서양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밀가루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도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밀가루의 유통 시간은 박력분은 1년 이상, 강력분은 6개월 정도이며, 습도 65퍼센트 이하로 건조하고 20도 이하의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있다. 빵 반죽의 탄력을 더하려면, 소금이나 비타민 C를 넣고, 파이나 쿠키 반죽을 잘 늘어나게 하려면 레몬즙이나 식초, 버터나 식용유 등을 넣어야 한단다.
게다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빵 바게트에서 부터 유대인 빵 베이글, 처음 들어보는 아랍빵 발라디, 러시아 빵 바트루쉬키까지.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빵들도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요즘에도 일본의 대표적인 빵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카레빵, 메론빵 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책을 읽다보니, 우리나라 빵의 역사까지 궁금해지고, 우리 식문화사를 깊이 있게 파고든 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책의 후반부는 같은 밀가루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음식인 국수와 과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의 식문화사이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국수가 세계를 제패했다.`고 할 만큼 후반부에도 흥미진진한 역사들이 가득하다.
쫄깃쫄깃 부드러운 빵, 쫀득쫀득하면서도 툭툭 끊어지는 국수, 그리고 바삭바삭한 과자. 세 가지 색 밀가루 음식의 온갖 요리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동, 서양 문명사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