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김경언니의 이번주 칼럼. 나도 이런 휴가를 꿈꾼다.  둘 중의 어떤 것이라도 다 좋을 것 같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99000/2004/07/021099000200407280520049.html

 

나른한 여름휴가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7달러 보트투어나 저렴한 침대여행이 주는 행복감을 아는가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여름휴가만큼 설레이는 일도 없지만 또 그것만큼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앉아 혼자 책이나 읽고 DVD나 보면서 자족할 수 있는 타입도 아니다. 그 때문에 나는 어딜 가긴 가지만 최대한 나돌아다닐 필요가 없는 여행 형태를 가장 좋아한다.

예를 들어 배 위에서 보낸 한철. 고작 갑판 위라 어디 나돌아다닐 만한 곳도 없으니 그저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러다 심심하면 한바탕 바다에 뛰어들면 그만이다. 하지만 럭셔리한 초호화 크루즈 여행은 누구에게나 그림의 떡이라 언급할 가치도 없고, 그 대신 7달러짜리 보트 투어의 황홀경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다.

그동안 여행한답시고 어지간히 싸돌아다녀봤지만 개인적으로 베트남 나짱에서의 그 보트 투어만큼 만족스러웠던 것은 없었다. 해변 도시인 나짱에 가면 누구나 이 보트 투어에 참여하는데, 아예 이것 때문에 나짱에 가는 젊은이들도 많다. 여러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수많은 보트 투어가 있지만 내가 참여했던 마마한 보트 투어(Mama Hahn Boat Trip)가 가장 유명했다. 30여명의 여행객을 배에 태워 4개의 무인도를 돌며 스노클링과 술과 음식을 무한정 제공하는 투어(단, 술값과 담배값은 따로 계산한다)다. 때로는 섬에 풀어놓기도 하지만 아무도 배에서 내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갑판 위에 발 디딜 틈 없이 차려진 수십 가지의 해산물 진수성찬을 게걸스럽게 먹은 뒤 바다에 뛰어들어 즐기는 플로팅 바(Floating Bar) 파티. 바다 한가운데 파라솔과 튜브를 띄워놓은 뒤 수십명의 젊은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바다로 뛰어들어 물 위에 둥둥 떠서 몸이 노곤해질 정도로 술(주로 맥주나 와인)을 마신다. 물에서 나오면 갑판 위에 벌렁 드러누워 레게 음악을 들으면서 햇볕에 몸을 말린다. 그때 느끼는 그 나른한 육체적 행복감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게다가 단 7달러에 이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축복이었다. 그때가 한 4년 전 일이니 지금쯤 한 15달러 정도로 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더욱 아쉬운 건 말끝마다 ‘fuck’이라는 말을 즐겨쓰던 여장부 마마한이 이제는 죽고 없다는 것이다.

한편 차 막히고 사람들 북적이는 게 하도 지겨워서 올해부터는 아예 ‘침대 위로 떠나는 3박4일 관능 여행’을 권장하고 있다. 사실 여행이랍시고 궁색한 볼거리를 찾아 낯선 도시를 헤매는 일만큼 피곤한 일이 없는데, 이 여행 역시 어디 나다닐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건 함께 사랑을 나눌 만한 상대가 있을 때만 가능한 것으로, 여행의 일정은 오직 휴식과 섹스뿐이다. 어디로 갈지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사랑하기 적당한 독립적인 공간만 있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 아무 때나 눕고 싶을 정도로 푹신하고 깨끗한 침대만 있으면 그만이다. 룸 서비스가 되고 개인 수영장이 딸린 고급 리조트의 단독 빌라라면 더욱 좋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남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관계이거나 돈이 없는 커플) 간단한 식료품만 싸들고 외딴 산장이나 펜션에 숨어들어도 좋다. 단, 식료품 정리를 채 마치기도 전에 침대 위로 쓰러질 것!

마지막으로 여행지에서 적당히 취해서 로맨틱한 밤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간단한 칵테일 제조법을 소개한다. 보드카에 오렌지 주스나 크렌베리 주스, 혹은 사이다를 2대5 비율로 섞어라. 어느 순간 이성을 잃는다. 물론 그 순간 보사노바 음악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휴대용 스피커를 챙기는 걸 잊지 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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