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오는 봄도 모두 담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놀랍게도 김용택 선생님을 담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책에도, 길가에도,
심지어 내 마음에 마저도 온통 꽃 일색입니다.
그것도 아주 예쁘고 고운 놈들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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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리으리한 자개 장식의 문패가 아닙니다.
저 건너집 농부네와 아주 똑같은 꽤나 촌스러운 느낌이 나는 것이,
제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김용택 선생님 ㅡ
그 분의 댁이 확실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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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나마 몸이 좋지 않으셨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동구까지 마중와 주시다니요.
평생의 게으름으로 김용택 선생님의 시마저 모르는 것 투성인데 어째야 하나.
뚤레뚤레 따라와서 염치 불구하고 빈손으로 인사만 드려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어째야 하나.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존경하는 시인 앞에서 들 수 있는 여러 걱정들이
누그러듭니다.
지난 여름 외갓댁을 방문했을 때,
그 때의 표정이 절로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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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란헌.
선생님의 지인분들께서 왕희지체로 집자하여 선물하셨다는데,
보기가 참 좋습니다.
선생님,
지인분들께 술 더 사드려도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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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란헌에서,
관란합니다.
혹시, 선생님께 이야기가 들어가면
꿀밤 한 대 맞을 지 모르겠으나,
이런 곳에서는 절로 시가 써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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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께서 정성스레 음식을 내어주십니다.
마음이 고우셔서,
그리 고우신가 봅니다.
귀하고 귀한 지리산의 죽순으로 만든 죽순전은
참으로 기가 막혔는데, 상상으로나마 맛보시길 바랍니다.
풍성한 음식들 주변으로 옹기종기들 모여 앉아서,
참으로 재미있게 선생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책은 집에 가서 읽고,
오늘은 좀 놀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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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댁을 나와 마을을 거닐다 보니,
어느새 덕치초등학교입니다.
어디 정말 강이 흐르고 새소리가 들리나,
벼르고 벼르던 곳이 덕치초등학교입니다.
사실은 많이 부러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으면,
지렁이 소리마저 들릴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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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말
훌륭한 시인을 뵈었고,
훌륭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오늘이 기쁜 까닭은
'김용택'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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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마자 질 궁리부터 하는
벚들의 시간처럼,
참으로 짧고 아쉬운 만남이었습니다.
지기 때문에 다시 필 때까지
마음으로나마 몇 번이나 다시 틔우고 지우고 하는 것처럼,
마음으로나마 몇 번이나 선생님을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 해봅니다.
선생님 다음에 다시 뵐 때까지,
안녕히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