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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자주 쓰는 말이지만 '인생은 신기한 우연의 연속'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를 읽고 다른 책도 읽고 싶어서
남편에게 <책은 도끼다>를 빌려다 달라고 했다.
그게 이미 몇 달 전 이야기.
http://blog.naver.com/wingssprout/220773315738
근데 그 책이 대출중인데, 빌려간 사람이 책을 잃어버렸는지 반납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거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같은 대답이었는데, 얼마전에 드디어 남편이 책을 들고 왔고
<책은 도끼다>를 읽을 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는데.
아니, 이런! <다시, 책은 도끼다>까지 읽을 기회가 생긴 것!
<다시, 책은 도끼다>는 도서관에 구매 신청을 해 놓은 상태라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몰랐는데ㅎㅎ
그래서 내 앞엔 이렇게 <책은 도끼다>와 <다시, 책은 도끼다>가 놓이게 되었다.
먼저 <책은 도끼다>를 읽었다.
http://blog.naver.com/wingssprout/220855091487
나의 책읽기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책은 도끼다>에서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셨고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는 그래서 책을 천천히, 깊이있게 읽어야 한다시며
여러 가지 책을 들어 자신만의 독법을 이야기해주셨다.
마르셀 프루스트, 카프카, 톨스토이, 볼테르, 밀란 쿤데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괴테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무거워지는 작가들의 작품 이야기.
박웅현 님은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될 때는 무조건 고전에서 고른다고 하셨다.
고전이 고전일 수밖에 없는, 그 '무언가'를 읽어내실 수 있고 느끼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 하지만 나는 고전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든데...ㅋㅋㅋ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고전에 부여된 '권위'에 굴복했기 때문.
그냥, 나만의 해석으로 읽으면 되는 거였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고전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던데.
이 책에는 나의 이달의 독서계획에 들어있는 소설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다른 책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더 반가웠다.
아무리 봐도 외워지지 않는 이름이었는데, 이제 외울 수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웅현 님은 책을 읽을 때 인상적인 구절에는 밑줄을 쳐놓고
나중에 따로 타이핑을 해놓는다고 하셨다.
나도 좀 비슷.
나는 밑줄은 아니고(책을 굉장히 깨끗하게 본다. 그래서 밑줄 긋는 게 싫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에 접착메모지를 붙여 표시하고 후에 따로 타이핑해놓는다.
그러면 나중에 어떤 내용을 다시 읽고 싶을 때 찾기 쉬고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도 편하다.
우리에게는 심사, 깊이 생각함이 빠져 있는 듯합니다 .많이 읽는 게 제일이잖아요. 1년에 100권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심사할 시간이 없죠. 결국 내 것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적으로는 많이 읽었을지 몰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20쪽
지식보다 지혜가 좋죠. 그러나 지혜만 있어서 될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지혜를 온전히 느껴야 하는 겁니다. 최근에 자주 하는 생각인데 지혜란 것은 크고 넓ㄹ은 것,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움큼인 것 같아요. 그 한 움큼을 내 몸으로 체화시켜 삶 속에서 어떻게 실천해나가는지의 여부,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읽었으면 느끼고 느꼈으면 행하라. 22쪽
살아있는 사람처럼 내 주변에 항상 있지도 않고 약속해서 만날 일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진정한 우정을 가져다 준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독서는 대인관계보다 좋습니다. 눈치 볼 이유가 없으니까요. 31쪽
인새을 살면서 꼭 들어봄직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있는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가장 명료하게 정리한 게 책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을 만나는 거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거다. 33쪽
제 해석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일상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싶어요. 내가 사는 지금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나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거죠. 38쪽
이런 문장을 보면 어디를 여행하는지는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어떤 눈을 가지고 여행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이죠. 54쪽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서 여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많이 보려고 하지 말고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해요. 책 읽는 것도 마찬가지 같아요. 57쪽
소설가 김훈 선생이 "말 좀 솟아올라라"라고 했어요. 자연 풍경을 보면서 말이 돋아났으면 좋겠다고 한 거죠. 우리도 그렇죠. 우리가 느낀 바는 '와, 멋지다'라는 문장보다 훨씬 많은데 말로는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 돼요. 58쪽
아름다움이든 행복이든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아름다움이나 행복이나 손에 잡히지 않을 때에는 찬란하게 빛나고 간절히 원하게 되는데 막상 손에 들어오면 그 찬란한 빛은 온데간데없어져요. 결혼생활을 예로 들면 아주 이해가 빠를 것 같아요. 63쪽
시가 왜 읽히지 않습니까? 책이 왜 재미가 없나요? 우리는 투입하지 않습니다. 그저 텍스트에 속도를 붙이지요. 그러니 읽지 못하는 겁니다. 사랑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시가 읽혀요. 70쪽
그렇다면 과연 왜 읽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책 한 권을 읽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이렇게 우리들의 삶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모래알 씹듯이 꾸역꾸역 넘겨야 하는 게 삶입니다. 그 삶 속에서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82쪽
우리는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저 욕망을 하죠.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는 재료가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욕망의 구성 재료들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우리는덜 불행해집니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저는 이십대가 될 수 없어요. 저는 여자가 될 수 없고, 태어난 시대를 바꿀 수 없습니다. 미끄러진 프레젠테이션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걸 안다면 내가 이십대라면 어떨까, 내가 다른 누군가라면 어떨까 하면서 애써 불행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망을 들여다보는 건 매우 중요하죠. 83쪽
그래서 몸을 번잡하게 만들어야 해요. 잘 살려면 몸을 번잡하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애햐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이와는 반대로 마음은 번잡하고 몸은 평화롭죠.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소파에 드러누워 TV를 보면서도 마음은 정신이 없죠. 109쪽
비슷한 얘기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이 자유로울 수 없거든요. 그래서 카잔차키스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 지금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삶을 살고 있었떤 거죠. 무언가를 원하면 자유가 아닌 겁니다. 지금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12쪽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그 부분입니다. 여행지 자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여행지를 소재로 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죠. ... 중략 ...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은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는 온몸이 촉수인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순간순간 예민하고 싶어 했죠. 그 순간에 온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182~183쪽
이번에는 어떻게 하면 현재에 집중하면서 매 순간을 우아하게 보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육체와 물질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낟.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과연 분리된 것인가요? 영혼은 육체에 있습니다. 행복 또한 마찬가지죠. 행복은 물질에 있습니다. 물질이 우리한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배고프면 아무 생각 안 납니다. 185~186쪽
그러므로 필연적인 우리 삶의 패배를 이해하자는 겁니다. 나는 왜 아킬레우스처럼 살 수 없을까? 혹은 왜 그처럼 비장하게 죽을 수 없을까? 속상해 할 것이 아니라 돈키호테처럼 비록 패배한다고 해도 그 패배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쿤데라는 말하고 있습니다. 225쪽
<커튼>을 읽으면서 소설을 쓰는 일은 단순히 이야기를 잘 풀어간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세르반테스처럼 우리가 보지 않았던 걸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거나, 우리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준다거나 해야 하는 거죠. 이야기라는 수면 밑에 철학적, 사회적, 시대적 담론을 쌇고 그 위에 이야기를 축조하며 글을 짓는 거죠. 228쪽
예술가들은 이렇게 미지의 땅을 탐험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땅을 가려고 합니다. 친부살해의 욕망이 바로 이것이죠. 다른 소설가가 이미 이뤄놓은 곳에 가기 싫은 겁니다. 예술의 역사는 계속해서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시도들로 이루어집니다. 233쪽
과학이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better'의 세계라면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different'의 세계입니다. 235쪽
니체가 이런 말을 했죠.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탈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중략....
카프카가 그 시대의 관료주의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초기 관료주의의 끔찍한 모습을 에민하게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현실이 전혀 부끄러움 없이 되풀이된다면, 그 반복되는 현실에 직면한 사상은 결국 언제나 입을 다물게 되는 법이다. 254쪽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은 지금 모험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감이 됐어요. 그 사람들의 성격이나 성향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상황입니다. 모험에 들어선 것은 그 사람의 의지인가요? 상황 때문이잖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돈키호테의 모험과는 전혀 다르죠. 그렇다면 그 모험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찾아오는 일입니까? 아니죠.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지만 나에게도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257~258쪽
사랑을 부추기는 가장 좋은 방법을 둘을 떼어놓는 거예요. 277쪽
이 에피소드를 말씀드린 이유는 오늘 저의 <파우스트> 해석이 바로 이런 해석이 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 속에서 다뤄지는 철학, 신화,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권위가 사실 너무 무겁습니다...중략.. 이 좋은 책을 책의 권위에 눌려서 팽개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파우스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15쪽
지금까지의 여덟 본의 강독은 아마 저의 오독이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기꺼이 오독을 하시기 바랍니다. 정독은 우리 학자들에게 맡겨둡시다. 우리는 그저 책 속의 내용을 저마다의 의미로 받아들여 내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각자의 오독을 합시다. 그래서 그로 인해 좀 더 풍요로워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떨까요. 348~349쪽
나도 책을 빨리 읽는 습관이 있어서 그걸 고치려고 노력중인데...
천천히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심지어 책이 꺾일 정도로..-_-;;)
바로 이거다.
"찬란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 순간을 찬란하게 만든다."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롭게 보는 눈을 길러
일상의 행복을 찾으라는 말이었는데.
이걸 보는 순간, 이게 바로 내 목표였구나 새삼 깨달았다.
내 블로그 이름은 "날아보자, 날마다 반짝반짝"
이 블로그 이름을 지을 때 정말 고민했고,
그게 딱 작가님의 저 말과 통한다.
날마다 반짝반짝 = 매순간을 찬란하게
잊고 있던 나의 목표를 다시 발견하게 해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