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흐리지만 덥지않아 일하기 딱 좋은 날씨.
드디어 군청에서 건축허가가 떨어졌다. 이제 공사시작이다.
아침 8시. 마당에 봉고차 두 대가 들어섰다.
콜수사님이 찻잔을 마당에 둔 탁자에 놓는다.
노가다의 일은 믹스커피 한잔과 함께 시작된다.
나는 현이와 백이를 밭으로 데려가 묶어 놓는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고 현이와 백이의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
얌전한 백이는 묶어두어도 별 탈이 없는데 천방지축 현이는 벌써부터 낑낑거리며 난리부르스를 춘다.
줄이 당겨지든가 말든가, 목에 줄이 감기든가 말든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풀어 달라 애걸복걸한다.
그러면 못 이기는 채 현이를 안아준다.
현이를 안아주면 백이가 나에게 달려든다.
현이와 백이가 내 무릎을 두고 자리다툼을 한다.
오늘은 웬일인지 백이가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백이가 현이를 밀치고 내 무릎에 앞다리를 턱 올린다.
‘이것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백이가 이내 앞다리를 내린다.
나도 백이를 다시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딴전을 피운다.
‘백아, 우린 언제쯤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꼭 사귀길 바래.’
현백과 노는 사이 공사는 진척이 되었다.
터파기 프레임이 둘러쳐지고 그 사이에 철근이 끼워졌다.
프레임과 철근 사이에는 콘크리트가 들어간다.
일명 공구리 칠 준비를 다 한 것이다.
작업을 하는 아저씨는 세 명.
호랑이눈을 가진 사장님이 지시를 하고 두 명의 인부가 그에 따라 일을 한다.
멀리서 지켜보니 일을 설렁설렁, 힘들이지 않고 하는 것 같다.
“오늘 하는 일은 힘들지 않나 봐요. 아저씨들이 설렁설렁, 쉬엄쉬엄 일을 하는 것 같던데.”
“아냐, 이거 힘든 일이야.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일을 노는 듯이, 쉬는 듯이 하는 거지.”
나의 질문에 콜수사님의 대답이다.
그렇다. 일을 잘하는 건 노는 듯이 쉬는 듯이 하는 것이다.
힘을 빼고 일과 합체되어 노는 것 같고 쉬는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뭐든 그렇다. 일이든, 사람관계든, 사회생활이든 경직된 몸으로 잘하기는 힘든 법이다.
나는 백이에게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백이를 쓰다듬을 때는 현이처럼 푸근하게 쓰다듬는 게 안 된다.
내 두려움이 몸을 경직되게 한다.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가?
‘백이는 나를 공격할지도 모른다. 백이는 나를 물지도 모른다. 그러니 미연에 방지하자.
백이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머리만 쓰다듬어주자.’
생기지도 않은 일을 가정하고 만들어 내고 상상하고 그걸 두려워하는 꼴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내 망상이 만들어낸 두려움에 굴복하지 말자.
삶의 굽이굽이 마주치는 것들과 힘을 빼고 다가가자.
하여 노는 듯이 쉬는 듯이 ‘밋밋한 만남, 밋밋한 시작’이 되게 하자.

터파기 프레임이 둘러쳐진 모습.

프레임 사이에 철근 배근이 끼워졌다. 거푸집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중에 이 사이에 콘크리트를 붓는다.

둥근 플라스틱이 상수도 파이프 배관이다.

직각을 잡아주는 나무를 박아두었다.

노란 선이 수평을 잡은 선이다. 이 선을 따라 콘크리트를 채운다.

5시에 아저씨들이 돌아가고 모처럼 잡초뽑기를 했다. 상추씨를 뿌린 곳에 촘촘하게 상추가 올라왔다.

모듬쌈씨를 뿌린 곳에는 색깔이 여럿이다. 모듬쌈은 벌레가 많이 먹었다.

상추모종을 심은 것이 이만큼 자랐다.

첫 수확한 상추를 된장에 싸서 먹었다.
상추가 고기처럼 졸깃졸깃하고 잎이 허물허물하지 않고 빳빳하다.
씹는 맛이 제법이다. 상추로 씹는 맛을 느낀 건 처음이다.

고추에 꽃이 폈다. 좀 있으면 고추가 열릴 것이다.

개와 늑대의 시간. 방안 불빛이 아직 남아 있는 태양빛에 스며드는 시간이다.
평범하지만 위대한 시작이 오늘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시작은 언제나 위대하다.
하지만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
다만 기초 공사를 했고 무사히 잘 마쳤다.
그래, 이렇게 시작이 밋밋하고 싱겁다면
개와 늑대의 시간에 빛이 스며들듯
옛집과 새집이 정겹게 스며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