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겁나게 맑음
언니는 학교 갔다오면 책가방을 던져놓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
학교에서 좋은 일이 있으면 웃음이 끊이질 않고,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우리는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그래도 형부에게 매일 체크하는 언니의 말.
"아직도 안 했나?"
그러면 형부는 묵묵부답이고, 입만 살아 있는 땅곤이가 옆에서 받아친다.
"에헤이~ 우야노~"
언니는 일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스타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 야무지게 한다. 일을 설렁설렁하는 나하곤 딴판이다.
그런데 오늘 언니가 딱 좋아할 만한 아저씨가 왔다.
집을 부수려고 포크레인을 불렀는데 아저씨가 일을 너무 잘한다.
이집 일은 포크레인을 쓰는데 난이도가 높다.
안채는 건드리지 않고 집을 부숴야 하는데 바깥채와 안채의 기와가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일머리가 없는 기사면 기와가 넘어와 안채를 건드리기 십상이다.
또한가지 난점은 바깥채에 쓴 나무를 살려야 하니 무턱대고 집을 부술 수도 없다.
헌데 아저씨는 이 모든 걸 만족시켜 주었다.
아래의 벽채부터 포크레인으로 살살 건드려서 부수고 벽채를 연결한 나무들을 걷어냈다.
그 다음 포크레인으로 기와를 살살 긁어낸 뒤 기와를 얹고 있는 나무를 뜯어냈다.
일의 강약을 살리면서 속도까지 계산한 솜씨였다.
오전에 집을 다 부수고 오후에는 땅을 다지는 작업을 했다.
잠깐 잠깐 쉬는 틈에 그늘에 앉아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술술 잘도 하신다.
"진돗개는 예, 충성심이 장난이 아니라예."
진돗개 백이를 보고 진돗개에 얽힌 사연을 풀어내신다.
"진돗개가 팔을 팍 물어삣는 기라예. 암만 잡아당기고 해도 절대로 안 놔주는 기라예. 주인이 아니면 절대로 안 놔주는 기라예."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신경은 안 건드렸다고 하대예."
말씀 하시는 내내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다.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포크레인 아저씨.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가서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일 캡이예요. 일도 잘하시는데 말도 잘하시고 웃기도 잘하셔서 스마일 포크레인으로 부르기로 했어요. 명함 한 장씩 돌리세요."
아저씨가 나를 보고 빙그레 웃는다. 기분이 좋다.
나는 일하는 것보다 노는 걸 좋아한다. 누군들 안 그렇겠나. ...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까닭은 우리 자신이 일로부터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 전에 남해안에 갔더니 어부들이 뱃노래를 하는 것을 봤다. 멸치를 잡으면서 노래를 한다. 노래 박자와 동작이 딱 맞았다. 단순한 고기잡이 노래였다. 그걸 보니 그들은 고된 작업에서도 그다지 스트레스가 없어 보였다. 삶과 노동이 일치되어 보였다. 가령 현대식 콘베이어벨트에 앉은 근로자들을 보라. 그들이 일을 하면서 노래를 할 수 있겠나? 절대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완전히 소외된 노동이기 때문에 자기 육체로부터의 생산이 소외돼 있다.
작가 김훈 “나는 왜 쓰는가” (2014. 11. 01. 조선비즈닷컴)
과연 스마일 포크레인 아저씨는 삶과 노동이 일치되었을까?

포크레인이 나무를 가볍게 집어올린다.

부서진 집 위로 올라선 포크레인

나무 담은 것을 바가지라고 한다. 포크레인 아저씨는 바가지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니면서 일에 맞게 빼고 끼워서 쓴다.

집을 부수고 살린 나무들과 자재들.

스마일 포크레인 아저씨의 뒷모습. 아래 위로 푸른 옷을 입고 나무를 잡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