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오전에 맑다가 오후에 흐림
나무를 정리했다. 나무는 창고로 쓰던 건물 지붕에 얹었던 것들이다.
넓적하고 똥똥한 것들을 분리하고 비 맞지 않게 천막을 덮었다.
일을 할 때 다음 일을 염두에 두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했던 일을 다시 하는 경우가 많다.
일의 차서를 생각하고 그때그때 마음을 담아서 즐겁고 단단하게.
그동안 나는 일을 슬슬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버릇이 그렇게 들었다.
'어차피 일을 해도 윗선에 가면 수정되고 또다시 해야 될텐데.
클라이언트에게 가면 또 수정될텐데.
설렁설렁 적당히 하면 되지, 힘들여 할 필요 있어?'
이런 생각이 고착돼어 있었다. 그러다보니 그때 해야 할 일이 뒤로 미뤄졌다.
미뤄진 일, 미뤄진 삶.
나는 현재에 있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오전에 나무 정리를 끝내고 오후에 수승대 유원지에 놀러갔다.
수승대는 거창의 대표적인 유원지다.

넓은 강과 거북바위가 보이고

너른 솔숲과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 위에서 솔향기와 강바람을 맡았다.

산책로에 진달래가 피고

강가에서

라면을 먹었다. 장인의 손길로 끓인 라면. 쫄깃한 면발이 일품이다.
강 너머에는 야외 특설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여름에 <거창 연극제>를 하면 여기서 공연을 한단다.
객석은 물속이다.
사람들이 튜브를 끼고 물속에서 공연을 관람한다고 한다.
피서도 하고 연극도 관람하고, 참 재밌을 것 같다.
댓즈 굿 아이디어!!

<거창 연극제>의 메인 극장 앞에 걸려 있는 포스터.
묶여있는 개가 있고 개 뼈다귀를 훔치려는 사람이 제 몸을 스스로 묶었다.
뼈다귀가 저 사람에게는 어떤 것일까?
돈! 권력! 아님 그냥 뼈다귀?
올 7월에는 어떤 포스터가 걸릴지 궁금하다.

연극제의 메인 극장 무대. 200여석 규모의 아담한 극장이다.

수승대 유원지 안에 있는 구연서원.
요수 신권,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이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사림이 세운 서원이다.

넓은 뜰과 절제있게 심은 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구연서원으로 들어가는 문루, 관수루.
'관수'란 <맹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봐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
군자의 학문도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이다.

관수루 아래 문 너머로 보이는 구연서원. 태극을 너머 학문의 길을 열었다.
공부와 예술이 어우러져 있는 곳, 수승대.
학문의 길과 예술의 길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삶이 예술이 되고, 작품이 되는 삶.
생(bios)이 단련(epreuve)이라는 것은 두 의미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경험이라는 의미에서 단련입니다. 세계는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경험하고 인식하며 발견하고, 또 그것을 통해 우리 자신을 우리 자신에게 드러내는 그러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둘째로 이 세계와 이 생(bios)은 수련이라는 의미에서 단련이라는 말이지요. 세계는 그것에 입각해, 그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힘입어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형성하고 변형시키며 목적이나 구원을 지향하여 우리 자신을 완성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단련입니다.
세계가 생(bios)을 통해 경험이 되고 이 경험을 통해 우리 자신은 우리 자신을 변형시키고 우리 자신을 인식하며 알게 된다는 것은, 즉 생(bios)이 tekhnê, 다시 말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기술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고전기 그리스 사유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변형과 변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첫번째 절차를 통해서 세계는 tekhnê를 통해 인식되기 위해 사유되기를 중단하며 두번째 절차를 통해 bios이 단련, 경험, 수련의 상관물이 되기 위해 tekhnê의 대상이기를 중단합니다.
미셸 푸코, <주체의 해석학>, 심세광 옮김, 동문선, 5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