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보슬비가 내리다가 오후에 그침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다. 오늘 일은 땡땡이다.

아침을 먹고 거창 한마음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가방을 짊어지고 내려오는데 몽우리져 있던 홍매화가 활짝 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서로서로 뽐을 내고 있는 듯해서

'예쁘다, 예쁘다' 어루만져 주었다.  

 

 

마을 입구까지 내려오니 저 멀리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지나간다.

"이런, 버스가 가버렸어. 어쩔!"

버스정류장에 오니 마을 입구에 사는 현자씨가 곱게 화장을 하고 앉아서 말한다.

"버스 지나갔어요."

"언제 와요?"

"몰라요."

현자씨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현자씨는 형부만 보면 운다고 한다.

"마을 회의할 때 가면 나만 보면 울어서 얼마나 난감하던지."

"그러게, 남모르게 해꼬지 한 줄 알겠어요."

그래서 형부는 현자씨를 본체만체 한다.

헌데 현자씨는 언니를 보면 손을 흔든다. 빙그레 미소까지 띄면서.

사람마다 자신이 취할 자세를 갖고 있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딱부러지게 얘기하는 현자씨.

내가 보기에 현자씨는 묵동마을의 현인이다. 

 

버스를 보내버렸으니 정류장에 앉아 있는 게 답답하다.

언제 버스가 오는 지도 모르겠고 해서 다음 정류장까지 걸었다.

정류장 아래 포도사과조합 건물이 보이길래 버스 언제 오냐고 물어봤다.

10시 40분에 온단다. 헐~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정류장에 조금 앉아 있다가 좀이 쑤셔서 다시 걸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는데 자동차가 쌩까고 지나가버린다.

포기하고 정류장에 앉아서 차가 지나가는 걸 쳐다보고 있노라니

택시 하나가 정류장 앞에 선다.

"시내 가세요?"

"네."

"타요."

"네에?"

어리둥절해서 택시 가까이 가니 버스비만 받을테니 타란다.

얼씨구나 하고 택시에 탔다.

아저씨는 군청에 다니다 퇴직하고 택시한지 4년 됐다고 한다.

말도 운전도 느릿느릿하다.

가만히 보니 아까부터 운전석 앞에 까딱까딱 움직이는 게 있다.

"아저씨, 저게 뭐예요?"

"느림보 거북이예요. 거북이처럼 천천히 운전하라고 딸이 사줬지요."

 

  

 

느림보 거북이때문이었을까?

아저씨는 느림의 미학을 터득하고 계셨다.

말이 느리니 그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운전이 느리니 조급한 마음이 점점 사라졌다.

버스비만 받으려는 아저씨에게 택시비를 온전히 내고 도서관 앞에 내렸다.

제 값을 냈는데 왠지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느린 것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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