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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9월
평점 :
<남자는 결국 마릴린 먼로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법이야.>
그런 억지스런 의견을 종종 듣는다. 예의 사강도 그런 말을 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여자 역시, 결국은 <항상 같이 있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시장을 보러 갈 때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나, 파티에 참석할
때나, 어디든. <그런 남자, 있을 턱이 없잖아.>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를.
아아, 그러고 보니 사강은 어쩌면 그런 말도 했는지 모르겠다. 과연, 많은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요컨대, 양쪽 다 나름대로 할말이 있는 것이다.
나는 먼로 같은 여자도 아니고, 더구나 하치는 자기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아무데도 같이 가지 않는다. 어디든 같이 갈 수 있는 남자 따위, 지긋지긋해서 싫다.
곧잘, 하치와 나는 대체 뭘까, 하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이기도 하고, 유일한
친구 사이기도 하고, 선생과 제자이기도 했다.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저 마냥 만나고만 싶은 연애의 초기이기도 했다 .
타인인데, 내내 따로따로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토록 가까이 함께 있는 것일까?
------------------------------- '하치의 마지막 연인' 본문 중에서.
설레임에서 시작해서 익숙함으로 전이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함에서 설레임으로 가는 경우란, 우정이 사랑으로 변하는 경우인데,
그런 경우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 서로를 지켜줄 수 있는 사이란, 결국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인데, 현실에서는 100% 맞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야, '정서적인 거리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야?' 라고 물을 수 있지만,
처음에 공간적으로 멀어지고, 그 다음에 통신상으로 멀어지고, 그 다음엔
정서적으로 멀어진다. 그렇게 해서, 서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기간이 일주일이
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이 주일이 되었다가, 한 달이 되었다가, 1년이 되었다가,
영영 사라지게 된다. 기억속에는 살아 있어도, 서로 연락을 못하게 되는 사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통신 수단이 첨단화
되어도 예외없는 법칙이다.
개인적인 일과 업무적인 일 때문에 몇 가지 열 받는 일이 있었지만,
나 자신이 작은 감정에 휘둘리는 건 자기 수양이 덜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비록, 완벽하지 못할 지라도,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살아가자.
기죽거나, 열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2002년 12월.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