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 레이먼드 카버 소설 시리즈 1, 개정판
레이몬드 카버 지음, 안종설 옮김,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 집사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레이몬드 카버에게는 2번째 단편집이 되는 이 소설집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특징적인 면이 몇가지 있다.

첫째, 소설의 필치가 아주 사실적이다.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처럼 일상적인 모습들과 일상적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둘째,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이 느껴진다. 하루키의 장편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어떻게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희망은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한다' 라는 주제를 극히 짧은 단편 속에서 구현해 냈다. "상처에 대한 치유 의식으로써의 글 읽기" 에 아주 적합한 소설들이다.

셋째, 형식의 완벽함이다. 이 단편집에는 1인칭으로 쓰여진 소설 9개와 3인칭으로 쓰여진 소설 2개가 있는데, 그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형식이 느껴진다.

뭐니뭐니 해도 이 소설의 좋은 점은 앞서 이야기했던 두 번째에 있다. 같은 책 2번 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책은 다시 한 번 더 읽고 싶어 졌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뭔가 알 것 같다. 뭔가 나아지고 있고, 치유되고 있다.' 는 느낌은 이 단편집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단편집에 있는 단편 소설들에 대한 감상평.

코끼리

동생과,딸과,어머니와,이혼한 전처에게 매달 생활비를 부쳐 주어야 하는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 있다는 절망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꿈을 꾸게 되고, 꿈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서는, 자기에게 무언가 변화가 일어 났음을 알게 된다.

분명히, 코끼리는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를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그 코끼리는 냉장고에 넣고는 비행기 위에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존재다!! 읽고 나서는, 읽는 독자마저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이 단편집의 표제작이다. '나'와 아내 로라, 멜과 멜의 두 번째 아내인 테레사, 이 4명이서, 식탁에 둘러 앉아 나누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다. 어떤 이는 험난한 사랑이고, 어떤 이는 잃어 버린 사랑이며, 어떤 이는 상식을 초월한 사랑이고, 어떤 이는 증오로 변해 버린 사랑이다. 하나의 사랑이 끝나면 그 사랑은 잊혀지고,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랑이 찾아 온다는 여러 가지 사랑의 방식과, 사랑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다음의 구절의 읽어 보자.

"하지만, 당신들은 서로를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과 결혼한 경험이 있지. 아마 틀림없이 당신들도 그 전에는 그 다른 사람을 사랑했을 거야. 테리와 나는 같이 산 지 오년이 되었고, 결혼한 지는 사 년 째야.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 뭔지 아나? 가장 끔찍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지. 예를 들어서 말야, 내일 당장 우리 가운데 한 사람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얘기는 하는게 아닌데 미안하네- 어떻게 되겠나?
물론,처음에는, 그러니까 당분간 혼자 남게 된 사람은 슬픔에 젖어서 어쩔 줄을 모르겠지. 하지만 머지 않아 그 사람은 다시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할 거야.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한 사랑, 그런 사랑은 한낱 과거의 추억으로 묻혀 버리는 거야. 어쩌면 추억 거리조차 되지 않을 지도 모르지." 
 

고요

아마 이 단편집에 있는 소설 중에서는 제일 짧은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발소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사슴 사냥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사슴 이야기 때문에 소란을 겪게 된 후, 그 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용기를 내게 된다. '삶의 새로운 변화는 언제나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매운 인상 깊은 하나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라는 교훈을 이 소설에서 얻었다.

비타민

지극히 사실적인 일상의 모습이 묘사된 소설이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를 꿈꾸다가도 별 것 아닌 일상적인 방해들에 의해 주저 앉고 마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 병원에서 일을 하는 '나'는 아내 패티가 비타민 장사를 시작해서는, 성공했다가 몰락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보게 된다. 파티에서 만난 아내의 후배 돈나와 하룻밤의 사랑을 시도하지만, 바에서 만남 불량스런 흑인들 때문에 좌절되고 만다. 돈나는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아스피린을 찾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다.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

일상에서 작은 '사랑' 의 위대한 힘 (어떤 형태로든 개인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나'는 J.P와 함께 금주 학교에 들어오게 되고, 굴뚝 청소부인 J.P로부터 어떻게 아내를 처음 만났는지, 그가 어떻게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금주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J.P 아내로부터 행운의 키스를 받게 된 후, 아내와,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 용기를 얻게 된다.

체프의 집

남편 웨스와 별거해서 살고 있던 '나'는, 웨스로부터, 체프의 집을 임대했으니 다시 같이 살자는 제의를 받고는 현재 생활과, 남자를 정리하고 그 곳으로 간다. 여름 한철 그곳에서 부족할 것 없는 마음의 평온과 사랑을 확인한다. 체프가 와서 자기 딸 린다를 핑계로 집을 다시 비워 달라는 이야기에 나와 웨스는 실망하지만, 계속해서 같이 살 것을 다짐한다.

-이렇게 적고 보면 너무 평번하지만, 그 속엔 따스한 여운이 있다. 레이몬드 카버의 훌륭한 점은 짤막짤막한 글 안에, 따사로운 햇살같은 평온함이 있다는 점이다.  

열병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 있는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카알라일은 아내 에일린이 케이스와 사라 두 아이를 내 버려둔 채 그의 동료 리차드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떠나 간 후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고등학교에 강의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애들을 돌보아 줄 유모를 찾게 되고, 그렇게 구한 첫번째 유모 데비는 집을 엉망으로 만든 채 사흘만에 쫓겨 난다. 그러다가, 에일린이 소개시켜 준 할머니 유모인 웹스터 부인 덕에 새로운 일상을 경험한다. 약 6주의 평온한 일상이 흐른 후, 그는 심한 열병에 걸리고, 그 때를 같이 해 웹스터 부인은 자신은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되었음을 알려 온다. 웹스터 부인을 마중하면서 손을 흔드는 순간, 카알라일은 무언가가 자신의 내부에서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게 되고, 비로소 에일린을 놓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였을까? 가슴 깊이 공감하고, 희망을 읽었던 작품이다. 다음의 구절은 특히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이다.

그 순간, 카알라일은 그렇게 현관 앞에 서서, 무언가가 그 막을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무언가는 에일린, 그러니까 이 순간 이전까지의 인생과 관련된 것이었다. 내가 에일린을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있기야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카알라일은 그 모든 것이 끝났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비로소 그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삶은 한때 조금 전 그가 웹스터 부부에게 얘기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인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는 잊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몸부림쳐 왔지만, 그렇게 흘러가 버린 과거 역시 이제 그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뒤에 남겨 놓은 그 모든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깃털

직장 친구인 버드의 초대로 그의 집에 찾아 가게 된 '나'와 아내 프랜은 그 곳에서 버드의 아내 올라와 함께 저녁을 먹게 되고, 그들의 '대단히' 못 생긴 아기를 보게 된다. 훗날 나와 프랜은 그 때를 기분 나쁘게 회상한다. 그 날 이후로 나와 프랜은 그 때까지 원치 않았었던 아기를 가지게 되고, 그 아기는 못 생긴 것에 비할 바 없는 '내 놓고 말하기가 무엇한 문제' 가 있다.

일상의 변화가 언제나 바람직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마저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겠지. 우리가 감내하고, 안고 가야 할...


대성당

아내와 오랜 친구 사이인 장님 한 명이 '나'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처음에 나는 탐탁치 않게 여기나, 차츰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그에게 대성당의 모습을 설명해 주다가 그와 손을 포갠 채 대성당을 같이 그리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루키가 글 말미의 해설에서 극찬한 작품이다.
완벽한 형식과 함께, 고통은 넘은 마음의 상태를 실감하게 하는 내용의 완벽함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평화롭던 가정에, 생일을 맞은 아이가 뺑소니 차에 치여 죽게 되고, 호워드와 앤은 절망에 휩싸인다.그러나 간단한 추리 끝에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 내게 되고, 그를 찾아간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한 그(제과점 주인)에게서 빵을 얻어 먹게 되고, 그를 용서하게 된다. 하루키의 평가를 보자.

'아이를 잃은 부부는 이상한 전화를 걸어 온 제과점 주인을 찾아간다. 마치 죽은 아이의 혼을 쫓아 어두운 저승을 헤매는 것처럼 밤늦게 제과점을 향해 그들은 차를 달린다. 그곳은 세상의 끝이며 사랑의 종말이다. 거기에서 사랑은 잊혀지고 파괴되어 있다.
제과점 주인은 사랑하는 것을 그만두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도 포기하고 있다. 부부는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은 어이없게도 갑자기 없어져 버렸다. 제과점 주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을 위해서 빵을 굽는 것뿐이다. 그것은 세상의 끝에서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a small, good thing)" 이다. 얼만큼 도움이 되는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대신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슬픈 이야기다. 정말로 슬프고 심오한 이야기다. 그러나 마지막에 문득 빵의 온기가 손 안에 남는다. 이것은 정말로 멋진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침대에 누웠을까

결코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작품. 마지막 장면- "하지만 내가 그 여자한테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아이리스가 재빠리 테이블 밑으로 허리를 굽히더니 모든 게 끝나 버린다. 전화는 먹통이 되어 버렸고, 내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은 새명 유지 장치의 코드를 뽑아 버리는 행위에 대한 암시라고 한다.

말년의 카버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일까?
(그는 49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고 해서 카버적인 따뜻함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이 작품에도 그 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2002년 11월.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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