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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다 케이스케 지음, 고정아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우연히 찾게 된 오래된 파우치 속 휴대용 자전거 공구. 그 발견으로 어린 시절 불편해서 타지 못해 그대로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경주용 자전거 '비양키'를 다시 꺼내 새롭게 손질하고 수선한다. 그 다음날 학교에 자전거를 끌고 가 아침 육상부 연습에 참여했다가 하게 된 심부름 때문에 멀리까지 나왔다가 그냥, 괜히, 훌쩍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떠난다.
첫 교시 수업 전까지만 행방을 감추자. (P.25)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혼다'의 달림의 시작은 위의 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평소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난 광경은 조금 생경하기도 하고 표지판의 지명들도 낯설다. 그러다 저 곳까지 가볼까 해서 조금 더 멀리,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조금 더 가볼까 해서 더 멀리, 그렇게 페달을 하나하나 밟아나간다.
나는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의 페달 회전이 쌓이고 거듭되어 100킬로, 1,000킬로로 이어졌을 뿐이다. 음식물이 연료가 되어 몸을 움직인다. 그 단순한 공식은 달려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P.143)
그렇게 '혼다'는 도쿄에서 아오모리의 최북단, 그러니까 바다 건너 홋카이도 섬이 위치한 그 지점까지 비양키를 타고 달린다. 철저하게 혼자서 자전거로 국도를 타고 달리는 고독한 일주일간의 여정을 1인칭의 조금은 건조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완벽한 일탈의 순간. 혼자 문득 이유 없이 떠나는 여행을 동경하면서도 두려움이 앞서 이런저런 핑계로 여태까지 한 발자욱도 떼어 보지 못한 내게 그런 그의 모습은 또다시 동경의 대상이자 자극원이 되었다.
가까이에서 엔진 소리와 함께 트랜스뮤직의 중저음이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 아까 식당에서 본 그 커플이 검정색 BMW를 타고 천천히 페리로 다가가고 있었다. 흘낏 본 뒷좌석에는 쿠션과 티슈와 과자봉지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그들은 어딜 가든 언제든 자신들의 방에 있는 것이다. (P.145)
일상, 가장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벗어남, 어긋남, 낯설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위와 같은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일상과 연결되는 하나의 수단이 있다. 바로 여행 중 가끔 전원을 켜 보는 휴대폰이다. 이 휴대폰은 다른 사람과의 만남도 대화도 일체 없는 여행 속에서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사람은 여자 친구인 세나, 같은 육상부 부장인 키요양,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으로 동창회에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스즈키 세 명이다.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신과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그들과의 문자를 통한 소통은 혼다에게 조금은 의미 없이 느껴지기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치부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쩜 일탈이란 단어는 일상이 존재하기에 성립되는 단어이지 않을까?
무대가 일본이었기 때문에 익숙지 못한 지리나 지명들로 실감이 조금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나 자신 또한 이곳에서 부산까지, 또는 목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는 상상과 함께 읽어나가니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지도를 첨부하거나 지명들의 번역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다면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 바라보는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결심 하나만 있으면 떠날 수 있을 듯 한 여행길을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 091225 - 09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