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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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어타운은 시골이다. 베어타운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묘사는 물고기를 잡아올릴 수 있는 공간 옆에서 초밥 정도는 사먹고 싶은데 그것마저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도심에 갖추어진 편리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점들과 다양한 서비스들이 모두 제공되지 않는 공간에서 미라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하는 남편 페테르와 함께하기 위해서다. 이 한가롭고 고즈넉한 베어타운의 고요함이 흐트러지는 순간은 오직 하키 경기가 펼쳐지는 빙판 위에서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하키는 영혼의 활력소이자 종교이며 계급이다. 하키를 잘하는 선수는 사람들의 인정과 격려를 받지만 가난하거나 하키 실력이 뛰어나지 못한 선수는 소외된다. 마치 약육강식의 이념이 구체화 된 야생처럼 아무도 그 만연한 폭력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강자이기 때문에 강자의 권력을 인정받고, 약자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을 이해하면서 언젠가 강자가 되는 순간을 꿈꾼다. 어린 아맛은 마야를 좋아하면서도 뛰어난 하키 선수인 케빈에게 끌리는 마야를 보고, 그 어떤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경기에서의 활약을 다짐한다.

 

 이처럼 하키의 제국에서 힘의 권력 관계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며 발생하는 폭력들은 사람들에게 의식되지 않는 채로, 혹은 의식하지 않을 것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각 등장인물들은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이며 혹은 그 둘 다였다. 각 등장인물들이 힘의 권력관계에 긁혀 벌어진 영혼의 상처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내적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쓸쓸한 외로움이 내려앉았다.

 

 자식의 뺨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며 "그러게 사는 게 어렵다잖니"라고 속삭였던 어머니. 아이를 낳으면 너무 작은 담요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덮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아이가 생긴다. (p. 155)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위태로움과 불완전함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들이 솟아났다. 하키와 맞물려 벌어지는 힘과 감정의 역학은 뭉클하고 애잔했다. 단단한 자아로 만들어지기 위해 성장통은 지독하고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겪어내는 과정으로서 자신의 아픔과 마주하였을 때 비로소 깨닫는 사실들이 있다. 함께라는 공동체로 구성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폐단을 판단해가며 서로를 만들어가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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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바인
데이브 컬런 지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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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콜럼바인 비극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가해자 딜런의 어머니였던 수 클레볼드의 인터뷰 자료에서였다. 나는 당시 앤드루 솔로몬의『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읽고 있었는데, 그 책 속에 수 클레볼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에서는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개인이 해결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을 다루고 있었는데 딜런과 수 클레볼드는 '범죄'편에서 볼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범죄자의 아들을 둔다는 것은 대체 얼마 만큼의 비극일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서 창비 출판사에서 수 클레볼드의 책을 번역해서 출간한 것을 보았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참담한 제목과는 별개로 담담한 어조로 딜런과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었다. 콜럼바인 비극이 발생할 당시 사람들의 충격과 공포, 그리고 사건에 대한 분노의 화살을 가해자의 유족에게로 돌렸을 때 상황을 떠올리며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그리고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적혀 있었다. 1인칭의 시점에서 읽어나간 그녀의 이야기는 마음 깊이 공감하기에 두려울 정도로 어려운 마음이 들게 했다.

 

 한편으로 피해자들의 상황은 어떤지, 왜 그렇게 큰 사건으로 번질 때까지 아무도 막지 못했는가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조금 검색해보았으나 사건을 접하게 된 사람들의 충격만 드러나 있을 뿐 전체적인 맥락을 들여보기엔 부족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내게 그 모든 해답이 되어줄 책이 나타났다. 『콜럼바인』, 저널리스트가 이 사건을 조사하고 취재하면서 알게 된 모든 사실들을 마치 논픽션 소설처럼 읽기 쉽게 구성한 책이었다. 


 『콜럼바인』을 읽고 나서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고등학생 두 명이 자신의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학살한 것도 있겠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스템적 붕괴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아픔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중한 아이들이 부상 또는 사망한 상태로 학교에 머물러 있는데 오랜 시간 방치되어야 했으며 그때 그 유족들은 얼마나 참담하고 슬프며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을 것인지. 비록 학교 건물 내 테러 발생 상황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2차 폭발 위험성을 고려한 선택이었지만 피해자들의 아픔에 충분히 귀 기울이지 못한 처사였다.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콜럼바인 사건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세월호 참사를 연상하게 되었다. 이 둘은 참사가 발생하였을 때 언론, 국가가 해결과정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에서 수많은 오보로 희생자들과 유족, 사회에 혼란을 준 점과 콜럼바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에서 가해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 전달, 그리고 사건을 다루는 잘못된 방식으로 관련 지역 사회에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던 모습은 놀랄만큼 닮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콜럼바인 사건은 세월호 사건에 비한다면 그보다는 훨씬 더 국가가 나름대로 잘 대처했고 그 진상규명도 충분히 이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물론 아픔과 상처, 혼란으로 얼룩진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고될 것이다. 그러나 보상 과정에서 충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과 유족들의 요구를 합리적으로 받아들여가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이끌지 못한 점은 분명한 한계였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는 더 많은 부분을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배려하는 모습은 십몇년도 전의 일임에도 훨씬 더 성숙한 사회를 바라보게 했다. 국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 비극에 함께 공감하며 추모의 시간을 함께 했다. 비록 살인자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추모물을 망가뜨리는 일 등에서 몇몇 갈등들이 잔류하였으나 그로부터 파생된 움직임으로 이 사건을 통해 알아야 할 것들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해결해온 과정들은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밖에도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었다. 총기사건으로 희생된 故 캐시 버넬의 이야기가 종교적 움직임으로 번져나가며 부풀려지고 과장되는 과정, 총명했던 패트릭 아일랜드가 뇌에 입은 상처로 기존에 누려왔던 삶들을 포기해가고 극복해가는 모습 등에서 삶의 여러 단면들을 보았다. 그 생생한 감정들이 말과 행동으로 남아 있어 마치 내가 그 당시 사건들을 함께 겪는 동시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들의 고통과 용기를 보면서 왜 가해자였던 에릭과 딜런은 이런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까?하는 물음은 더욱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들의 기록물을 검토하고 조사한 사람들은 에릭을 '사이코패스'로 규정한다. 에릭은 자신의 우월감을 인정받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고 다른 이들의 고통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다른 사람의 존엄한 생명을 파괴했다. 반면 딜런은 우울증으로 자기파괴 성향이 있었고 자살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에릭과 함께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같은 행동이었지만 이 둘을 막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는 에릭과 딜런 서로 다른 접근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에릭은 평소 거짓말을 자주했다. 에릭은 자신을 대하는 어른들에게 거짓으로 속여 넘기는 일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에릭의 기록을 통해 정신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자도 에릭의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에릭과 같이 일반인들과 다른 사고 방식을 지닌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도록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하고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러 해결방법을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사고 방식이 아예 다르고 교육학적으로 접근이 어렵다면 그 과정은 무척이나 험난할 것이지만 방관한다면 참담한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동감했다.

 

 부모가 자식의 일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자식의 잘못된 행동은 부모의 책임이라고 연관짓는 행동과 사고방식도 위험하다. 그렇지만 자녀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부모로서 그들이 자신의 자녀에 대해 무엇인가를 놓치게 된다면 대신 그것을 미리 파악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딜런의 끔찍한 소설 창작물을 읽은 교사 켈리가 딜런에 대해 알린 사실로 경각심을 가진 지역사회 구성원이 없었듯이.) 그렇다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어떻게 판단하고 지켜가야 하는 것일까. 정말 여러 가지 가치 판단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환기하며 삶에 있어서 중요한 이야기들을 생각해보게 해주었고, 그에 관해 앞으로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사실들 가운데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 결여 또는 다른 이와 함께 느끼는 것을 완전히 포기해버렸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큰 비극을 불러일으키게 되는가였다. 자신의 사소한 목적으로 합리화하며 모든 행동에 마땅히 따르는 책임을 따르지 않았을 때 작은 두 개인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기 충분한 조건이 형성된다. 비극의 총체적인 단면들을 현미경처럼 깊고 세세하게 드러내면서 앞으로 사회에 속한 모든 개인들에게 필요한 가장 두 가지인 공감과 책임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해준 책이었다.      




미스티는 감동했다. 그녀는 너그럽게도 이를 용기 있는 행동으로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초고를 쓰고 있는 회고록에 편지 전문을 싣기로 했다. 톰과 수도 같은 비극에서 아들을 잃었다. 적어도 캐시는 숭고하게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클레볼드 가족은 어디서 위안을 얻지? 미스티는 또한 회고록에서 살인자들의 부모에 대한 비난을 다루었다. 그들이 미리 알았어야 할까? 그들이 아들을 방치했던 것일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지?"
-본책, p.426

패트릭 아일랜드가 절뚝거리며 단상에 올라가 졸업생 대표로 고별사를 낭독했다.
그는 힘겨운 한 해였다고 말한다. "총기사고로 그동안 고등학교에 얼마나 지독한 증오와 분노가 깔려 있었는지 전국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확신했다. 패트릭은 도서관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서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한 해 동안 찬찬히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것은 믿음이었다. "제가 창문으로 뛰어내렸을 때 누군가가 절 잡아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사랑스러운 세상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본책,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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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9 0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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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것의 즐거움, 소설의 구조와 유익함을 편안하고 이해하기 쉬운 작가의 말로 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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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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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흡입력 있는 문체가 도덕 판단의 가치 갈등을 날카로운 잣대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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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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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의 절절한 아픔이 활자 하나하나에 습윤히 배어 있어 새싹 같았던 아이들의 비극적인 참사와 그 아픔에 간접적으로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 사건과 그 무게를 생각하면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긴 이 책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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