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그네 - 교유서가 소설
하명희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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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교유서가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개인의 주관적인 느낌을 기록하였습니다. >

하명희 작가의 소설 ' 밤 그네 '는 단편소설을 엮은 책이다. 하명희 작가의 단편소설 속 주인공들은 상실을 겪고 달라진 일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인생의 중요한 사람을 잃거나 건강했던 나 자신을 잃는 일 등은 큰 고통을 야기할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담담한 태도로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신 안의 고통을 들여다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준비할 여유도 없이 사고처럼 몰아닥친다. 또래임에도 맏언니처럼 가까운 사람들의 어려움을 챙겼던 친구 진숙이의 시한부 소식을 듣고 진숙이의 병원을 찾아간다. 진숙은 연숙이의 아버지 간병을 도맡고 장례 준비를 위한 안내사항을 전달한 후 장례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종적을 감추었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전하는 소식은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자신이 있는 병원으로 찾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 밤 그네, 하명희 , ' 먼 곳으로 보내는 ')

-얘들아, 내 장례식에 와주어 고마워. 너희들이랑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오늘. 오늘은 내 장례식이니까 그동안 내가 못되게 군 거 다 봐주라. 나중에 갈 데는 없고 어디든 가고 싶고 그런 때가 있을 거잖아. 가출하고 싶은 날. 그런 날에는 나한테 와. 그땐 내가 시간이 훨씬 많고 할일은 없으니까 다 들어줄게. 안녕, 내 친구들.

하명희 , 밤 그네 , 먼 곳으로 보내는 , p.41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가 시작된 옛 동네를 다시 찾은 미숙은 진숙을 떠올린다. 개발로 인해 살았던 곳을 잃는 상실감이 친구를 떠나보내는 이별의 고통과 중첩된다. 미숙은 가만히 ' 새벽을 건너고 있을 ' 친구 진숙을 떠올리며 함께였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나열되는 문장 속에서 쓸쓸함과 그리움과 애달픔이 전해져왔다. 이처럼 이 단편소설집 ' 밤 그네 '는 한국사회의 사회문제로 인한 개인들의 고통과 회한을 다루고 그것을 고요히 응시한다.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 시절을 기억해준 이야기꾼에게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것은 누구나 각자의 페이지가 있고, 각자의 문장이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들의 합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이 던진 돌멩이가 저항한 오랜 투쟁 같았다. 선생님, 지금은 외롭지 않으시죠?

하명희 , 밤 그네 , 모르는 사람들 , p.94

4.19혁명 당시 시위대에 우연히 휘말려 맨 앞에 서서 돌을 던지게 된다. 휩쓸려 던진 돌멩이 하나로 시위가 격화되고 시위대를 탄압하기 위한 총알이 빗발쳤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던진 돌 하나가 사람을 죽게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이 생겼다고 고백한 작가는 이후 18년이 걸려 자신의 경험을 소설에 쓴다. ' 선생님은 사람이란 게 원래 이렇게 소심하고 겁쟁이라고, 그것이 평생을 살게 한다면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소설이 아니겠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분노와 좌절과 슬픔이 섞여 있는 뒤표지 사진은 18년이 지나도 그날을 기억한다는 표정 같았다. 사진을 찍을 때 선생님은 소설에 다 담을 수 없었던 그날을 떠올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명희 , 밤 그네 , 모르는 사람들 , p.87) '

참혹한 경험은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계속해서 일상을 파고들고 그로 인하여 겪은 이는 그 일이 발생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에 난 딱지를 뜯고 다시 흐르는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차마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일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가야 할까. 하명희 작가의 책 ' 밤 그네 '는 곁에선 이들이 건네는 다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자신의 아픈 경험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 안에 있는 다정을 열어 찾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아픈 일들이 참 많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4.19혁명, 시위대를 가혹하게 탄압하는 총알에 희생된 사람들... 여러 가지 사회 문제와 질병으로 인한 가슴 아픈 이별, 상실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차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담담하게 들여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으며 저자인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다.

곁에 있는 이들에게 다정을 열어 찾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우리 안에 있는 다정을 찾아 건네는 일이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작은 위로가 될 것이다. 단편 ' 다정의 순간 '처럼 관련 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안의 다정을 열어 찾는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유서가 서포터즈 9월 마지막 추천 책 하명희 작가의 ' 밤 그네 '를 읽으면서 다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서로를 향한 부드러운 마음 씀. 오늘날의 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것이 아닐까 떠올리면서 나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꽃대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빨간 꽃을 피우던 제라늄을 처음 본 건 지중해 마을이 배경인 어느 영화에서였어. 영화 제목도, 줄거리도 기억이 안 나는데 제라늄이라는 꽃만은 각인되어 있었거든. 엄마가 결혼하기도 전이니까 20년도 훨씬 전에 본 영화의 잔상이 집집마다 베란다에 빨래처럼 나와 있는 붉은 제라늄이었어. 베란다에 빨래처럼 나와 있는 붉은 꽃은 이곳에 온 걸 환영한다는 인사나 행복한 사람들의 표정 같았어. 그 정도의 여유가 스물두 살의 엄마가 바라는 행복의 조건이어서였을까. 엄마는 제라늄을 통해 누군가 모르는 사람을 환영하는 마음의 쉼터를 가지고 살아가자고 생각했었어. 언젠가 집을 사게 된다면 제라늄 화분을 풍성하게 키워서 베란다 난간 화분걸이에 내놓고 싶었거든. 10여 년 지나 그 마음이 환대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결혼하고 집을 구한 후에는 그걸 잊고 있었던 거야.

하명희 , 밤 그네 , 밤 그네 , p.233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믿는 사회가 되기를. 붉은 제라늄을 난간에 걸어 서로를 따스하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나도 마음 속의 붉은 제라늄을 내걸어 마주하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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