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없이 색깔을 말하는 책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의 주인공은 토마스라는 소년이다. 소년은 노란색, 빨간색, 갈색, 파란색, 회색, 무지개색, 초록색, 검은색 등 색깔 세계의 여행으로 우리를 이끈다.

󰡒내가 어떻게 색깔을 느끼는지 들어볼래?󰡓 󰡒노란색은 코를 톡 쏘는 겨자 맛이고, 병아리 솜털처럼 보들보들한 느낌이야.󰡓 󰡒빨간색은 딸기처럼 새콤하고 수박처럼 달콤해. 하지만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날 때처럼 아픈 느낌이기도 해.󰡓 󰡒갈색은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야. 초콜릿 냄새가 나기도 하지만 가끔 고약한 똥 냄새도 나.󰡓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색깔들 중에 왕은 검은색이야. 검은색은 엄마가 나를 꼭 안아줄 때 내 뺨을 간질이는 엄마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색깔이거든.󰡓

토마스와 함께하는 여행길에 우리는 낯선 것들이 아닌 일상의 평범하고도 흔한 사물들을 만나게 되지만, 그 만남은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하고 특별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은 색깔여행의 안내자인 소년이 시각장애인이라는 데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각장애아를 대상으로 하는 책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비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다. 비시각장애인들, 그러니까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색깔을 느끼는지, 어떻게 세상과 관계 맺고 살아가고 있는지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덤으로 낯설게하기의 한 방법을 보여주는 이 책을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받는 계기를 얻게 될 것이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독창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그림책

 

볼로냐 라가치상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메네나 코틴과 로사나 파리아의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원제:El libro negro de los colores)을 ‘뉴 호라이즌’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윤리적 가치를 심어줄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며, 모든 계층의 독자들에게 신선한 기쁨을 주는 책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이 책의 저자들이 촉각과 후각, 미각을 이용해 색깔을 표현함으로써 시각장애인이 인지하는 공감각적인 색의 세계를 비장애인에게 전달하고자 한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심사위원단은 이 그림책이 미학적인 면에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며, 비장애인에게 시각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해 준다고 평가했다. 절제된 우아함이 돋보이는 일러스트레이션은 오랜 고민과 노력의 결실임을 인정했고, 󰡒기존의 한계와 틀을 깨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독창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그림책󰡓이라고 극찬했다.

 

눈을 감고 손끝으로 보는 그림책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꽤 특이한 그림책이다. 마치 ‘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특별전을 그림책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의 텍스트는 점자와 묵자(글자)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이라,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돌출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손으로 느껴볼 수 있을 만큼은 된다. 그림 또한 부조 형식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다.

책은 온통 검은색으로 인쇄되어 있고, 오직 글자만이 하얀색이다. 하지만 토마스는 촉각과 후각, 청각과 미각을 자극하며 다양한 색깔들의 세계로 우리를 능숙하게 안내해 준다. 얼핏 보면 온통 검고 단조로워 보이는 책이지만 우리의 오감을 총동원하면 그 안에 아름다운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그림을 더듬으며 읽는 책이다. 시적이기까지 한 글을 음미하며 손끝으로 그림을 느끼다 보면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또 우리에게 최고의 색깔이 어떤 색깔인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창의력을 죽이는 시각 제일주의에 대한 반성

 

시각은 우리가 현실을 인지하고 이해하여 세상과 관계 맺기 위한 중요한 도구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도구는 아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미각과 촉각, 후각 등의 여러 감각을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들의 방식으로 우리가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보다 창의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미츠시마 타카유키라는 일본의 유명한 시각장애인 화가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보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고 문화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보는 문화가 있다면 보지 못하는 문화도 있습니다.

보는 문화와 보지 못하는 문화와의 만남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바로 이러한 만남을 통한 작은 결과물이자 가능성이다.

 

## 수상내역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그림책으로 인정받으며, 2007년 볼로냐 라가치상 ‘뉴 호라이즌’ 부문 수상작으로 뽑혔다. 또한 미학적인 면에서도 완성도 높은 작품이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는 평가에 걸맞게, 여러 나라에서 그래픽아트 부문과 도서 부문을 넘나들며 상을 받은 작품이다.

2007 볼로냐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

2007 베네수엘라 도서은행 선정 최우수아동문학상

2006 미국 그래픽아트산업협회 선정 베니상

2006 멕시코 문화예술부 선정 제11회 국제아동문학상

2006 멕시코 출판산업협회상

2006 멕시코 그래픽아트상

 

## 저자 인터뷰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어떤 그림책이죠?

 

검은 색 배경 위에 펼쳐져 있는 부조 형태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텍스트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가 어우러져 있는 책이에요. 독자들은 일러스트레이션 위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기존의 책읽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책읽기를 경험하게 될 거예요.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만드신 책인가요?

 

텍스트가 점자로도 되어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볼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 만든 책이에요.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이 책의 점자를 읽기는 어려워요. 비시각장애인들이 시각장애인들의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게 하고 싶었어요. 볼 수 있는 아이들이 시각장애인들이 촉각, 후각, 미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을 통해 색깔을 느끼고 세상과 관계 맺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특별하게 봐달라는 건 아니고요, 그들도 우리처럼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들임을 알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들의 세상도 아름답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편견의 창을 열고 다른 사람들이 안고 사는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이 비주얼이 중시되는 현시대에 어울리는 책인가요?

 

우리는 비주얼의 홍수 속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비주얼이 우리 삶의 중심에 놓여 있다 보니 우리는 점점 더 겉모양만 중시하는 피상적인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어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것만 보죠. 현실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이라는 걸 깨닫지 못해요. 시각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현실을 이해하고, 관계하고, 적응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죠. 그렇지만 그게 유일한 건 아닙니다. 우리는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감각들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이 책은 오감을 이용해 세상을 바라보는 좋은 예가 될 것이라 믿어요.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은 어떻게 기획하신 책인가요?

 

저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할지 항상 궁금했어요. 그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자 노력하면서 토마스라는 시각장애인 꼬마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우리는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색깔을 이해할 수 있을지 그들의 입장에 서서 느끼려고 노력했어요.

 

저자 소개

 

글쓴이 메네나 코틴

 

메네나 코틴은 1950년에 태어났다. 미국 뉴욕 파슨즈 디자인스쿨과 프렛 인스티튜트에서 그래픽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 등을 공부했다. 현재는 그래픽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며 책을 만들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 독자들에게 상상력 넘치고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거꾸로 보는 세상》, 《흑인 천사도 그려 주세요!》등 여러 작품이 있다.

 

그린이 로사나 파리아

 

로사나 파리아는 1963년에 태어났다. 베네수엘라의 유명한 그래픽디자인 학교에서 공부한 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현재 스페인,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여러 나라에서 그녀의 책들이 출판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까만 소녀 니나의 비밀》 《소년과 새》등이 있는데, 《소년과 새》는 2000년에 뮌헨 국제 청소년 도서관에서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250권󰡑 목록에 올랐다.

 

옮긴이 유 아가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했다. 동시통역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스페인과 중남미의 좋은 그림책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아주 놀라운 생일 선물》 《얘가 먼저 그랬어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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