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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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독 환자가 늘었다는 기사를 봤다. 2025년에 매독이라니. 슈베르트, 슈만 시대에나 있던 사라진 질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였다. 만약 매독에 걸렸다면 어떤 증상이고 또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임질, 헤르페스, 질편모충염, 클라미디아, 사면발니, 미코플라스마. 이름도 어려운 성병에 대해 현대인은 너무나 무지하다.

이 책은 노르웨이의 성병학과 의사이자 성 과학 분야 작가로 활동 중인 엘렌 스퇴켄 달이 썼다. 그는 TED에서 '처녀성 사기'라는 주제로 강연하여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22년 발표되어 점점 증가하는 성병에 관해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각 질병별로 한 챕터씩 설명되어 있다. 가상의 환자가 내원하는 상황이 묘사되는데 그래서 증상과 치료법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한다. 심각하고 장황한 의학적 설명보다 쉽고 정확한 정보 전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설명된 성병들의 증상이 모두 끔찍했다. 증상이 심해지고 나서야 내원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간단한 검사만으로 어떤 질병인지 진단할 수 있고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매독의 경우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감기와 같은 증세로 시작해서 피부 질환으로 이어지는데 이 때 그냥 지나가면 이후 잠복기가 최장 30년 간 이어진다고. 잠복기 후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심혈관 손상이나 뇌, 중추신경, 전신마비까지 일으킬 수 있는 병이니 반드시 초창기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단순히 성병의 증세와 치료법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병의 역사적 변천사와 치료법을 발견하게 된 과정도 소개되어 있다. 산부인과 도구인 검경의 발명이나 자궁경부 세포 검사를 발견한 파파니콜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개발하게 한 미국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의학과 관련된 깨알 지식까지 얻게되는 책이다.

또한 성병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는 내용도 있다. 흔히 에이즈로 알려진 HIV 바이러스는 성관계로 전염될 가능성 보다 베이거나 찢어진 상처를 통해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과 관계하여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다는 썰도 가능성이 낮다고. 오히려 과학자들은 인간이 동물을 도살, 도축할 때 혈액으로 전염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성병을 금기시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조기발견과 적절한 치료, 무엇보다 안전한 예방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유쾌하고 유익한 책이었다.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질의 응답>도 궁금하다.

- 이 책에서 다루는 성병: 임질, 헤르페스, 생식기 사마귀, 매독, 질편모충염, 클라미디아, 사면발니, 자궁경부암, 미코플라스마, 옴, HIV와 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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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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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작가는 오래전 <달의 바다>로 기억한다. 수지 주연의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로 알려진 <친절한 이방인>은 읽지 못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8년 만의 신작이다.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3월에 태어나서 '마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마치'는 평생 연기자로 살아온 인물이다. 노년의 마치는 알츠하이머 초기증세로 인해 특별 치료를 하는 병원에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특수 VR 기기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마치라는 캐릭터가 배우로 설정된 점이 많은 부분을 말하는 듯 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명성과 인기, 부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을 숨기고 연기해야 하는 숙명도 동반한다.

유년 시절의 상처, 아들의 실종, 남편과의 불화, 딸과의 갈등. 충직했던 매니저와의 진짜 사랑. 마치는 전 인생의 순간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가 과거를 여행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듯이.

배우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디테일이 좋았고 마치의 인생이 나이만큼의 층수가 있는 건물로 상징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던 것들을 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 속의 VR 장치가 현실에도 있으면 좋을텐데.

결국 무의미하고 불행하기만한 삶이란 없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다시 상기시키는 이야기다.




#3월의마치 #정한아 #문학동네 #소설 #신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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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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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찾은 편안한 노년 생활.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학, 젠더 사회학자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노년 돌봄과 집에서 죽을 권리 등을 다룬 다큐였는데 머리를 빨갛게 염색한 여성 학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 그의 <돌봄의 사회학>을 읽었다. 비혼 노인의 돌봄, 노인을 위한 실질적인 주거 환경을 연구한 책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사례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이 책은 우에노 지즈코의 첫 개인적인 에세이다. 사회학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노인으로 살아가는 우에노 교수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산기슭에 집을 짓고 코로나를 계기로 장기간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 지역은 '야마나시현 야쓰가타케'. 저자는 이미 그곳에 별장을 지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야마나시를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낀다. 오래 전, 일본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갈 일이 있었을 때, 두 군데의 선택지가 있었다. 야마나시와 도쿄. 한창 놀기 바쁠 때라 당연히 도쿄를 선택했는데, 이렇게 좋은 줄 알았더라면 야마나시로 갈 걸 그랬다.

시골에 집을 짓는 과정, 상수도와 정화조 등을 설치하고 생각보다 벌레가 많은 것에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제철 과일을 실컷 먹고 겨울이면 자연설에서 스키를 탄다. 자연이 주는 호사를 누리는 저자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나도 언젠가 한적한 시골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싱글인 저자가 커뮤니티를 잘 활용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각자의 특기를 살려 서로 돕고 음식을 대접하는 이웃과 친구가 전원 생활에서 빠질 수 없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글 말미에 '그 중 몇 명은 고인이 됐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노년의 인간 관계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구나 싶어 착찹했다.

이웃인 이로카와 노인과의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보다 스물세 살이나 위인 90대 싱글 노인을 돕던 저자. 자신의 마지막에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무심코 말하니 '괜찮아. 자네는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 받는다. 싱글 노인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는 혼자일 노년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위로를 느꼈다. 그러려면 물론 저자처럼 열정적으로 살아야겠지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아마도 신문, 잡지 등에 연재된 글들을 모은 듯 하다. 수록된 삽화도 글과 잘 어우러져 상상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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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중국인의 삶
다이 시지에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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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나상 수상작가 다이 시지에 첫 소설집.

이 작가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다이 시지에는 1954년 중국에서 태어나 십대시절 문화혁명을 겪었다. 그 후 프랑스로 유학하여 영화를 전공하고 2000년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로 데뷔했다. 동명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페미나상 수상 이력으로 당연히 여성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성 작가였다.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

총 세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독특하고 기묘하다. 세 소설 모두 중국의 '귀도'라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곳은 폐가전 제품이 산처럼 쌓여있어 그 배터리에서 나온 납, 수은과 같은 중금속이 땅을 오염시킨 곳이다. 오염된 땅은 귀도에 사는 인간들까지 오염시켰다.

첫번째 작품 '호찌민'.
조로증을 앓고있어 노인의 모습을 한 열 두살 소년의 이야기다. 두부를 만들어 파는 벙어리 이모와 컨테이너에 사는 소년은 어느날 거액의 돈에 그 지역의 교도소 소장에게 팔려간다. 이름조차 없는 소년에게 교도소는 '호찌민'이라고 불리며 9413번 죄수의 생애를 강제로 외우게 한다.

두번째 작품 '저수지의 보가트'.
저수지 관리인의 딸인 소녀는 겨울이면 꽁꽁 언 저수지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연습한다. 소녀의 어머니는 얼마 전 실종되었는데 어머니는 다니던 공장에서 납에 중독되어 이상해진 뒤였다. 그러던 어느날 언 저수지에서 피겨 연습을 하던 소년은 깨진 얼음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세번째 작품 '산을 뚫는 갑옷'.
대장장이 과부의 차남인 주인공. 주인공의 형은 쇠사슬로 집앞 나무에 묶여있는데 그것은 전자제품 폐기물로 인한 납중독 때문에 광증을 앓고있기 때문이다. 차남은 운좋게 고향을 떠나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아르바이트로 어느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된다.


세 편 모두 제도와 권력, 환경 오염에 피해입은 중국 소시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전체주의, 물질주의에 대한 풍자 같기도 하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덕분에 흥미진진하고 독특한 분위기와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낯설지만 새롭고 놀랍다. 아이러니로 가득한 블랙 코미디이면서 날카롭게 허를 찌르는 소설이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강렬하고 힘이 있다. 마술적이고 우화같은 느낌도 있어 하여간 독특하다.


색다른 느낌의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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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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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변호사가 전하는 우리사회의 노동자 법정투쟁.

15년 넘게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저자가 겪은 법정투쟁 사례들을 모은 책이다. 비정규직, 갑질, 부당해고, 노동착취, 이주노동자 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만연하게 발생하는 노동인권 침해의 현장에 저자가 있었다. 실제 사례들은 현실감이 넘쳤고 극적인 장면들도 꽤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법의 효용에 대해 생각했다. 법이 개인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는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꼈다. 다만 법이 그런 역할을 하려면 윤지영 변호사와 같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골프장 캐디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다. 2020년 상사의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20대 여성의 사건인데 문제는 캐디라는 직업이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와 유가족이 협력해서 결국에는 승소했다. 이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사업주가 보호해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을들의 사례가 나온다. 승소한 사건도 있고 끝내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건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사회 정의와 약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의 과정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대형 로펌에서 높은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대신 노동인권 변호사를 선택한 저자가 존경스럽다. 쉽게 읽혀서 노동인권, 노동법에 대한 이해도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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