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인간적인 건축 -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한진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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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두께에 쫄았는데 정말 흥미로운 책이었다. 내용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구성이 독특하고 전달력이 좋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마치 잘 짜여진 멋진 디자인의 PPT 프로젝트 같았다.

토마스 헤더윅은 요즘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영국의 디자이너다. 주로 건물을 디자인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건축가로 칭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건물 뿐만 아니라 가구 등 다양한 것을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공학이나 기술로서의 건축이 아닌 예술과 생활로서의 건축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 들어서 직선 건물들이 도시를 점유한 상황을 개탄한다. 이는 모더니즘을 표방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 때문으로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네모 건물들을 만들어냈다. 사방에 아파트 건물이 빼곡한 우리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런 '비인간적인' 건물들이 인간에게 해롭다. 환경적으로, 정서적으로, 미적으로 전혀 올바르지 않은 건축이다.

그는 '인간화된 건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효율과 경제성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감정을 담은 디자인의 건물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인간화 원칙은 단 세 가지다. 첫째, 도시 간격이 40m 이상일 것. 둘째, 거리는 20m 가량일 것. 셋째, 문가는 2m 내외일 것. 간단한 듯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를 적용시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

책을 읽으며 헤더윅이 디자인한 건물들을 찾아보았다. 여지껏 상상해보지 못한 독톡하고 멋있는 건물들이다. 어떻게 이런 창조성이 나왔을지 궁금했는데, 우선은 그의 조부모, 부모 모두가 예술가였다. 부유한 배경에 예술적 취향과 환경 속에서 자라온 그가 부럽기도 했다.

서울시가 이런 천재에게 프로젝트를 의뢰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노들섬에 헤드윅의 작품이 생길 예정이라니 기대해본다.

배우 이정재와 헤더윅이 친분이 있는지, 책의 추천사도 쓰고 홍보도 했더라. 또 내지가 거의 대부분 그래픽으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놀랐다. 그냥 텍스트만 있는 페이지는 거의 없을 정도다.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매우 고생했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건축 디자이너가 궁금하다면, 혹은 미래의 건축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알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재미있게 읽었다.


*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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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 장영희 문장들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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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의 문장들.

영문학자이자 작가인 장영희. 벌써 작고한지 1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의 글이 읽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고통과 좌절을 겪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삶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세상과 사람들을 대하는 시선과 감정이 남다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겹겹이 쌓인 혜안과 지혜가 더해져 더 깊이가 생겼다.

지금 우리 사회의 소위 엘리트라는 부류들이 보이는 행태와 얼마나 다른 태도인지 모른다. 평생을 좌절과 고통없이 살아서 타인이나 공동체의 가치와 연대를 무시하는 자들과 너무도 비교되었다.

이 책은 생전에 저자가 발표한 글들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담았다. 자연, 인생, 당신, 사랑, 그리고 희망이라는 다섯 가지 단어로 분류했다. 아무데나 펼쳐 읽어도 여운이 남는 문장이 등장한다.

장애인, 소수자, 암환자라는 정체성으로 치열하게 살아낸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거창하진 않아도 소소하고 진심어린 글들이다. 가끔 꺼내어 읽으면 차분한 마음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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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것에 관하여 - 앓기, 읽기, 쓰기, 살기
메이 지음 / 복복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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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탐구한 기록.

몸이 아파 본 경험이 있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일상이 무너진 경험이 있다면 이 책의 문장들이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정확한 진단명도 없는 만성질환으로 거의 평생을 고통과 함께하고 살아가는 중이다. 이 책은 그 막막함과 괴로움의 정체와 그것과 동반하기 위해 애쓴 것들의 기록이다. 부제인 '앓기, 읽기, 쓰기, 살기'에서 드러나듯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사유의 과정이 담겨있다.

극심한 조울증을 앓은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질병으로 고통 받은 작가들은 수없이 많다. 알퐁소 도데, 모파상 등과 같은 작가들이 매독으로 처참한 삶을 보냈다. 하지만 유독 여성 작가들에게만 병약하고 고통 받는 삶의 이미지가 덧입혀졌다.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이다.

챕터 중 '병이 준 것'이 가장 마음에 박혔다. 질병을 앓는 사람은 반드시 비극적이고 처절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역설에 공감했다. 고통을 잊기 위해 저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고백이 너무도 절절했다.

저자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무엇보다 잘 쓴 문장을 읽을 때 느껴지는 자극이 좋았다. 너무 좋은 문장이 많아서 붙여둔 포스트잇이 빼곡할 정도다.

메이 님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다.
큰 위로가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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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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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형식의 소설이 주는 묘미.

미시마 유키오라면 <금각사> 밖에 읽은 것이 없다. 하지만 다자이 오사무와 함께 자살로 삶을 끝낸 일본 문학계의 대표적인 괴인으로 기억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은 그러던 중 읽게 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편지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다섯 명의 남녀가 각자에게 나누는 편지가 주제별로 나뉘어 있으면서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국 소설 <키다리 아저씨> 처럼 편지를 연속해서 읽으며 그 사이사이 벌어진 일들을 유추하거나 짜맞추는 재미가 있다. 물론 이 작품은 <키다리 아저씨>와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40대 미망인 마마코, 유부남 도비오. 20대 OL( '오피스 레이디'. 여성 사무직 종사자를 의미하는 일본식 영어인데 그 어원이 무엇인지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미쓰코와 연극 연출가 지망생 다케루. 그리고 미쓰코의 사촌이자 은둔형 인간인 20대 남성 도라이치가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를 알고 있는 사이면서 욕망하고 시기하며 질투한다. 심지어 이간질하고 배신하는 모습도 보인다. 위선적인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충돌시키는 모습들이 가관이다. 이 충돌이 결국 어디까지 뻗어가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편지글을 통해 전달된다는 사실이 이 소설의 묘미다. 미시마 유키오는 철저히 각 인물이 되어 편지를 썼음이 분명하다. 각기 다른 문체가 주는 느낌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캐릭터는 편지를 쓰는 다섯 명이 아닌 야마 도비오의 아내였다. (바람 피우는 남편 몰래 비자금과 부동산을 마련한 그 성실함에 경의를.)

이 작품은 1960년대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지인 '여성자신'에 연재되었다. 작가의 성향과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요즘의 관점으로 보면 성차별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표현은 불편했다. 그래도 구성이 좋고 가독성이 놓은 소설이다. 재미있게 읽었다.

번역자인 최혜수 님의 후기가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QR코드로 게재되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장소에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옮긴이의 말'을 확인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얽히고 섥히는 욕망의 편지들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요새 좀처럼 편지글을 접하기 힘드니 오히려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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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력
아카세가와 겐페이 지음, 서하나 옮김 / 안그라픽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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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력老人力'이라니. '노망도 능력이다'는 초긍정의 메시지에 끌린 책이다.

저자 아카세가와 겐페이(1937-2014)는 일본의 현대 미술가이자 소설가다.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가로 활동하다 가명으로 쓴 단편소설이 1981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대단한 이력이다.

첫장부터 빵 터졌는데 나이 들면서 생기는 건망증에 대한 내용이다. 괴롭게도 나이가 들면서 고유명사를 잘 잊어버린다. 특히 최근에 알게 된 고유명사 일수록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대화하는 상대도 나이가 들었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생긴다.

- "아, 그 있잖아, 그, 거기에 나왔던..."
"알아요, 알아. 그 사람이잖아. 어, 그러니까, 그..."
서로 잊어버린 상태다. 하지만 제대로 '그'가 누구인지 서로 안다. 아는데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10 페이지)

너무나 공감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노인력이 생겼다.'고 한다. 힘을 빼고 세상을 단순하게 여기며 얻은 능력이라고 하니 큰 위로가 된다.

이처럼 <노인력>은 나이 들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갖가지 상황에 대한 찰진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웃기면서도 짠하다. 웬만한 글발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위트있으면서 페이소스 짙은 글을 쓸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동료들과 함께 '노상관찰학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글자그대로 길 위를 관찰하며 놓치기 쉬운 것들을 관찰하는 모임인 듯 하다. 또 수동 카메라, 그 중에서도 라이카 카메라를 애용하는 저자가 길 위를 관찰하며 찍은 사진이 중간 중간 수록되어 있다. 사진과 함께 얹힌 글이 주는 재미도 있다.

나이듦을 탓하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좋았다. 또 한 가지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데, 도쿄돔에서 하는 야구경기 티켓에 관한 내용이다. 꼭 한번 앉아보고 싶던 포수 뒷자리의 티켓을 얻은 저자는 엄청나게 기대한다. 하지만 그 티켓을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고 끝내 관람하지 못한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다른 깨달음을 얻는 것도 '노인력' 덕분이다.

1990년대에 쓰여진 글인데다 당시 일본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일부 단어들이 일본식 한자를 그대로 번역해서어색했다. (이를테면 '빈핍성' 같은 단어)

무엇보다 책의 디자인이 멋지다. 박으로 새겨진 '노인력'이라는 글자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 책이 담은 내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나이듦에 대한 호쾌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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