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거장 - 위대한 창의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데이비드 W. 갤런슨 지음, 이준호 외 옮김, 박성원 감수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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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관점으로 분석한 예술가의 두 가지 유형.

재미있는 관점의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갤런슨은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대학시절 우연히 듣게 된 현대 미술사 수업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대부분 매우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많으니 이는 어떤 차이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예술가들의 창작 방식과 나이에 따른 성취의 차이를 분석하게 된다.

책에서 그는 예술가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번째는 '개념적 혁신가'인데, 이들은 젊은 시절에 창작의 정점에 도달한다. 이들은 명확한 아이디어와 개념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혁신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파블로 피카소를 뽑는다.

두번째 부류는 '실험적 혁신가'. 이들은 경험을 통해 점차 발전해 나가는 유형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나이가 들고서야 창작의 정점에 도달한다. 이쪽의 대표 인물은 세잔이다.

저자는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고가에 판매된 작품을 제작한 나이, 주요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제작한 나이 등 객관적인 지표를 토대로 이를 해석한다. 예술작품을 수치화하여 비교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도 있다니 새로웠다.

개념적 혁신가와 실험적 혁신가의 특징을 계속적으로 비교하고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등 다른 분야로까지 확장시켜 두 부류의 작가들을 살펴본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그런 결론은 아니다. 개념적 혁신가는 '천재'로 여겨질 수 있지만 아이디어가 소진되면 정체기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말년의 파블로 피카소는 젊은 시절보다 덜 주목 받았다. 실험적 혁신가라고 해서 쫄 필요도 없다.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념적 예술가들보다 작품을 개선시킬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창작이나 역량을 꽃피우는 전성기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예술가의 생애와 창작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 독서였다.


*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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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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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쪼이면서 쎄한 느낌의 소설이다. 억만장자, 환경운동가,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작위를 받은 사업가 등 다양한 군상들이 제각각의 욕망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태연하게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겉과 다른 욕망과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괴리를 책을 읽는 독자만이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점점 긴장감이 고조된다.


제목 '버넘 숲'이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것으로 예언과 운명의 필연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뉴질랜드가 배경인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미라'가 설립한 환경 단체의 이름이다.


버려진 땅에 불법으로 작물을 가꾸는 환경 단체인 버넘 숲의 설립자 미라. 그녀는 새 부지로 봐둔 '손다이크'를 몰래 정찰하던 중 미국인 억만장자 '로버트 르모인'을 만난다. 르모인은 미라에게 버넘 숲에 거액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미라는 그 제안을 받는다.


억만장자와 게릴라 환경단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대가 엮이면서 결국에는 음모와 비극이 시작된다.


르모인은 현시점에서 가장 빌런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돈과 첨단 기술을 무기로 온갖 불법을 버젓이 행하는 정말 악질적인 인물이다. 일론 머스크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문제는 현실에서 이런 인물을 악으로 단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씁쓸한 현실을 소설을 읽는 내내 느끼게 했다.


미라, 셸리, 토니 등 버넘 숲과 관련된 인물들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환경주의자일지라도 갖고 있는 욕망은 누구보다 속물적이다. 실질적인 변화와 개선을 이뤄내지 못하거나 결국 자본주의 안에서 약자일 뿐인 이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내적 심리 묘사가 치밀해서 초반에는 문장을 읽는 것이 다소 버거웠다. 하지만 2부 마지막부터 엄청난 몰입감이 생기더니 3부는 숨막힐 정도였다. 오바마 대통령과 스티븐 킹이 추천했다는데 그만큼 현시점의 사회적 이슈를 잘 파악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저자 엘리너 캐턴은 뉴질랜드 출신의 최연소 부커상 수상자다. 소설 속 묘사된 뉴질랜드의 환경과 국제 관계, 계급 문제 등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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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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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독 환자가 늘었다는 기사를 봤다. 2025년에 매독이라니. 슈베르트, 슈만 시대에나 있던 사라진 질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였다. 만약 매독에 걸렸다면 어떤 증상이고 또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임질, 헤르페스, 질편모충염, 클라미디아, 사면발니, 미코플라스마. 이름도 어려운 성병에 대해 현대인은 너무나 무지하다.

이 책은 노르웨이의 성병학과 의사이자 성 과학 분야 작가로 활동 중인 엘렌 스퇴켄 달이 썼다. 그는 TED에서 '처녀성 사기'라는 주제로 강연하여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22년 발표되어 점점 증가하는 성병에 관해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각 질병별로 한 챕터씩 설명되어 있다. 가상의 환자가 내원하는 상황이 묘사되는데 그래서 증상과 치료법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한다. 심각하고 장황한 의학적 설명보다 쉽고 정확한 정보 전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설명된 성병들의 증상이 모두 끔찍했다. 증상이 심해지고 나서야 내원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간단한 검사만으로 어떤 질병인지 진단할 수 있고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매독의 경우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감기와 같은 증세로 시작해서 피부 질환으로 이어지는데 이 때 그냥 지나가면 이후 잠복기가 최장 30년 간 이어진다고. 잠복기 후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심혈관 손상이나 뇌, 중추신경, 전신마비까지 일으킬 수 있는 병이니 반드시 초창기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단순히 성병의 증세와 치료법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병의 역사적 변천사와 치료법을 발견하게 된 과정도 소개되어 있다. 산부인과 도구인 검경의 발명이나 자궁경부 세포 검사를 발견한 파파니콜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개발하게 한 미국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의학과 관련된 깨알 지식까지 얻게되는 책이다.

또한 성병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는 내용도 있다. 흔히 에이즈로 알려진 HIV 바이러스는 성관계로 전염될 가능성 보다 베이거나 찢어진 상처를 통해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과 관계하여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다는 썰도 가능성이 낮다고. 오히려 과학자들은 인간이 동물을 도살, 도축할 때 혈액으로 전염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성병을 금기시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조기발견과 적절한 치료, 무엇보다 안전한 예방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유쾌하고 유익한 책이었다.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질의 응답>도 궁금하다.

- 이 책에서 다루는 성병: 임질, 헤르페스, 생식기 사마귀, 매독, 질편모충염, 클라미디아, 사면발니, 자궁경부암, 미코플라스마, 옴, HIV와 에이즈.



#나의가장가까운적성병 #엘렌스퇴켄달 #이문영옮김 #열린책들 #의학 #성병 #매독 #에이즈 #과학 #산부인과 #비뇨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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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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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작가는 오래전 <달의 바다>로 기억한다. 수지 주연의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로 알려진 <친절한 이방인>은 읽지 못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8년 만의 신작이다.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3월에 태어나서 '마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마치'는 평생 연기자로 살아온 인물이다. 노년의 마치는 알츠하이머 초기증세로 인해 특별 치료를 하는 병원에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특수 VR 기기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마치라는 캐릭터가 배우로 설정된 점이 많은 부분을 말하는 듯 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명성과 인기, 부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을 숨기고 연기해야 하는 숙명도 동반한다.

유년 시절의 상처, 아들의 실종, 남편과의 불화, 딸과의 갈등. 충직했던 매니저와의 진짜 사랑. 마치는 전 인생의 순간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가 과거를 여행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듯이.

배우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디테일이 좋았고 마치의 인생이 나이만큼의 층수가 있는 건물로 상징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던 것들을 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 속의 VR 장치가 현실에도 있으면 좋을텐데.

결국 무의미하고 불행하기만한 삶이란 없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다시 상기시키는 이야기다.




#3월의마치 #정한아 #문학동네 #소설 #신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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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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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찾은 편안한 노년 생활.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학, 젠더 사회학자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노년 돌봄과 집에서 죽을 권리 등을 다룬 다큐였는데 머리를 빨갛게 염색한 여성 학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 그의 <돌봄의 사회학>을 읽었다. 비혼 노인의 돌봄, 노인을 위한 실질적인 주거 환경을 연구한 책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사례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이 책은 우에노 지즈코의 첫 개인적인 에세이다. 사회학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노인으로 살아가는 우에노 교수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산기슭에 집을 짓고 코로나를 계기로 장기간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 지역은 '야마나시현 야쓰가타케'. 저자는 이미 그곳에 별장을 지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야마나시를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낀다. 오래 전, 일본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갈 일이 있었을 때, 두 군데의 선택지가 있었다. 야마나시와 도쿄. 한창 놀기 바쁠 때라 당연히 도쿄를 선택했는데, 이렇게 좋은 줄 알았더라면 야마나시로 갈 걸 그랬다.

시골에 집을 짓는 과정, 상수도와 정화조 등을 설치하고 생각보다 벌레가 많은 것에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제철 과일을 실컷 먹고 겨울이면 자연설에서 스키를 탄다. 자연이 주는 호사를 누리는 저자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나도 언젠가 한적한 시골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싱글인 저자가 커뮤니티를 잘 활용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각자의 특기를 살려 서로 돕고 음식을 대접하는 이웃과 친구가 전원 생활에서 빠질 수 없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글 말미에 '그 중 몇 명은 고인이 됐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노년의 인간 관계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구나 싶어 착찹했다.

이웃인 이로카와 노인과의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보다 스물세 살이나 위인 90대 싱글 노인을 돕던 저자. 자신의 마지막에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무심코 말하니 '괜찮아. 자네는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 받는다. 싱글 노인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는 혼자일 노년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위로를 느꼈다. 그러려면 물론 저자처럼 열정적으로 살아야겠지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아마도 신문, 잡지 등에 연재된 글들을 모은 듯 하다. 수록된 삽화도 글과 잘 어우러져 상상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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