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치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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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작가는 오래전 <달의 바다>로 기억한다. 수지 주연의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로 알려진 <친절한 이방인>은 읽지 못했다. 이 소설은 작가의 8년 만의 신작이다.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3월에 태어나서 '마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마치'는 평생 연기자로 살아온 인물이다. 노년의 마치는 알츠하이머 초기증세로 인해 특별 치료를 하는 병원에 다니고 있다. 그곳에서 그는 특수 VR 기기를 통해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마치라는 캐릭터가 배우로 설정된 점이 많은 부분을 말하는 듯 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명성과 인기, 부를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끔찍한 고통을 겪더라도 그것을 숨기고 연기해야 하는 숙명도 동반한다.

유년 시절의 상처, 아들의 실종, 남편과의 불화, 딸과의 갈등. 충직했던 매니저와의 진짜 사랑. 마치는 전 인생의 순간을 찾아다니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가 과거를 여행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듯이.

배우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디테일이 좋았고 마치의 인생이 나이만큼의 층수가 있는 건물로 상징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아 알 수 없던 것들을 늦게라도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 속의 VR 장치가 현실에도 있으면 좋을텐데.

결국 무의미하고 불행하기만한 삶이란 없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이 당연한 진리를 다시 상기시키는 이야기다.




#3월의마치 #정한아 #문학동네 #소설 #신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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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슭에서, 나 홀로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제이 옮김, 야마구치 하루미 일러스트 / 청미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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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찾은 편안한 노년 생활.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학, 젠더 사회학자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EBS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노년 돌봄과 집에서 죽을 권리 등을 다룬 다큐였는데 머리를 빨갛게 염색한 여성 학자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러다 그의 <돌봄의 사회학>을 읽었다. 비혼 노인의 돌봄, 노인을 위한 실질적인 주거 환경을 연구한 책이었다. 우리보다 훨씬 일찍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사례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이 책은 우에노 지즈코의 첫 개인적인 에세이다. 사회학자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노인으로 살아가는 우에노 교수의 일상을 알 수 있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저자는 산기슭에 집을 짓고 코로나를 계기로 장기간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 지역은 '야마나시현 야쓰가타케'. 저자는 이미 그곳에 별장을 지은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다. 야마나시를 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친밀감을 느낀다. 오래 전, 일본에서 잠깐 어학연수를 갈 일이 있었을 때, 두 군데의 선택지가 있었다. 야마나시와 도쿄. 한창 놀기 바쁠 때라 당연히 도쿄를 선택했는데, 이렇게 좋은 줄 알았더라면 야마나시로 갈 걸 그랬다.

시골에 집을 짓는 과정, 상수도와 정화조 등을 설치하고 생각보다 벌레가 많은 것에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하지만 제철 과일을 실컷 먹고 겨울이면 자연설에서 스키를 탄다. 자연이 주는 호사를 누리는 저자의 삶이 부럽기만 했다. 나도 언젠가 한적한 시골에서 나만의 공간을 가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싱글인 저자가 커뮤니티를 잘 활용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각자의 특기를 살려 서로 돕고 음식을 대접하는 이웃과 친구가 전원 생활에서 빠질 수 없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글 말미에 '그 중 몇 명은 고인이 됐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노년의 인간 관계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구나 싶어 착찹했다.

이웃인 이로카와 노인과의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 저자보다 스물세 살이나 위인 90대 싱글 노인을 돕던 저자. 자신의 마지막에도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무심코 말하니 '괜찮아. 자네는 괜찮을 거야'라고 위로 받는다. 싱글 노인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며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젠가는 혼자일 노년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위로를 느꼈다. 그러려면 물론 저자처럼 열정적으로 살아야겠지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아마도 신문, 잡지 등에 연재된 글들을 모은 듯 하다. 수록된 삽화도 글과 잘 어우러져 상상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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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중국인의 삶
다이 시지에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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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나상 수상작가 다이 시지에 첫 소설집.

이 작가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다이 시지에는 1954년 중국에서 태어나 십대시절 문화혁명을 겪었다. 그 후 프랑스로 유학하여 영화를 전공하고 2000년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로 데뷔했다. 동명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페미나상 수상 이력으로 당연히 여성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남성 작가였다.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

총 세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독특하고 기묘하다. 세 소설 모두 중국의 '귀도'라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곳은 폐가전 제품이 산처럼 쌓여있어 그 배터리에서 나온 납, 수은과 같은 중금속이 땅을 오염시킨 곳이다. 오염된 땅은 귀도에 사는 인간들까지 오염시켰다.

첫번째 작품 '호찌민'.
조로증을 앓고있어 노인의 모습을 한 열 두살 소년의 이야기다. 두부를 만들어 파는 벙어리 이모와 컨테이너에 사는 소년은 어느날 거액의 돈에 그 지역의 교도소 소장에게 팔려간다. 이름조차 없는 소년에게 교도소는 '호찌민'이라고 불리며 9413번 죄수의 생애를 강제로 외우게 한다.

두번째 작품 '저수지의 보가트'.
저수지 관리인의 딸인 소녀는 겨울이면 꽁꽁 언 저수지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연습한다. 소녀의 어머니는 얼마 전 실종되었는데 어머니는 다니던 공장에서 납에 중독되어 이상해진 뒤였다. 그러던 어느날 언 저수지에서 피겨 연습을 하던 소년은 깨진 얼음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세번째 작품 '산을 뚫는 갑옷'.
대장장이 과부의 차남인 주인공. 주인공의 형은 쇠사슬로 집앞 나무에 묶여있는데 그것은 전자제품 폐기물로 인한 납중독 때문에 광증을 앓고있기 때문이다. 차남은 운좋게 고향을 떠나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아르바이트로 어느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된다.


세 편 모두 제도와 권력, 환경 오염에 피해입은 중국 소시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전체주의, 물질주의에 대한 풍자 같기도 하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덕분에 흥미진진하고 독특한 분위기와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낯설지만 새롭고 놀랍다. 아이러니로 가득한 블랙 코미디이면서 날카롭게 허를 찌르는 소설이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강렬하고 힘이 있다. 마술적이고 우화같은 느낌도 있어 하여간 독특하다.


색다른 느낌의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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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노동인권 변호사가 함께한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
윤지영 지음 / 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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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인권 변호사가 전하는 우리사회의 노동자 법정투쟁.

15년 넘게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저자가 겪은 법정투쟁 사례들을 모은 책이다. 비정규직, 갑질, 부당해고, 노동착취, 이주노동자 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만연하게 발생하는 노동인권 침해의 현장에 저자가 있었다. 실제 사례들은 현실감이 넘쳤고 극적인 장면들도 꽤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법의 효용에 대해 생각했다. 법이 개인에게 최소한의 보호막이 되는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꼈다. 다만 법이 그런 역할을 하려면 윤지영 변호사와 같은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골프장 캐디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다. 2020년 상사의 괴롭힘으로 목숨을 끊은 20대 여성의 사건인데 문제는 캐디라는 직업이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와 유가족이 협력해서 결국에는 승소했다. 이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사업주가 보호해야 한다는 선례를 남겼다고 한다.

이 밖에도 다양한 을들의 사례가 나온다. 승소한 사건도 있고 끝내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사건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례가 사회 정의와 약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의 과정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대형 로펌에서 높은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대신 노동인권 변호사를 선택한 저자가 존경스럽다. 쉽게 읽혀서 노동인권, 노동법에 대한 이해도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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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연구 암실문고
앨 앨버레즈 지음, 최승자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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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의 번역으로 40년 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책이다. 이후 중고 시장에서 정가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이번 출판본은 전에 누락된 부분까지 새롭게 번역하여 추가되었다.

저자 앨 앨버레즈는 영국의 시 평론가다. 그는 자살이 예술 창조자들의 상상 세계에 어떻게, 왜 영향을 주는지 알고 싶었고 이를 문학의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는 단순히 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비평가로서의 입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번째 장은 저자와 실비아 플라스의 인연을 소개한다. 그는 1960년대 실비아 플라스와 그의 남편인 테드 휴스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부부가 같이 만나기도 하고 아이를 동반한 산책을 할 정도로 가까웠다. 그러다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가 두 아이를 데리고 휴스와 별거 중일 때 만나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플라스가 작업 중인 시를 저자에게 낭독해주면 저자는 의견을 냈고 실제로 저자로 인해 고쳐진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앨버레즈는 플라스의 천재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플라스는 가스 오븐의 벨브를 열고 오븐 속에 머리를 누이고 목숨을 끊는다. 당시 플라스의 나이는 서른 살. 어린 남매를 남긴 죽음이었다.

앨버레즈는 실비아 플라스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에 대해 묻는다. 또 그녀의 죽음이 가십거리로 왜곡되기도 하는 상황에 대해 유감스러워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부터 시작된 플라스의 죽음에 대한 짓눌림이 어떻게 그녀의 창작에 영향을 주었는지도 분석한다.

두번째 장 '자살의 역사적 배경'에서는 그리스 시대부터 자살이 어떻게 인식되었고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해 다룬다. 서구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자살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세번째 장 '자살, 그 폐쇄된 세계'는 자살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소개한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등의 주장이 잘 정리되어 있다.

가장 분량이 많은 마지막 장 '자살과 문학'은 앨버레즈가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집이다. 실비아 플라스가 트리거가 된 자살이라는 행위와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관점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과 작가, 예술가들이 소개된다. 낭만주의 시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통>(독문학을 전공한 최승자 시인이 '베르테르'가 아니라 '베르터'라고 번역한 걸까?)이나 20세기 다다이즘에 대한 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그 밖에 윌리엄 카우퍼, 토머스 채터턴, 키에르케고르, 예이츠 등 다양한 작가들의 사례가 인용된 시와 함께 등장한다. 문학적 지식이 확장되는 내용인 동시에 저자의 깊이있는 해석이 알차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더디게 넘어가는 구간도 많다. 하지만 의미를 파악하고 생각하느라 꼭꼭 씹어서 읽게 되는 책이다. 특히 인용된 시들이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라 그런지 더 잘 다가왔다. 단순히 텍스트만 번역된 느낌이 아니라 우리말로 재창작된 또다른 시들을 읽는 기분이다.

이 책이 더 놀라웠던 이유가 에필로그에 반전처럼 등장한다. 앨버레즈 본인도 자살 시도의 경험이 있었고 다행히 실패했다는 것. 저자는 그 경험으로 자살한 이들을 한층 더 이해하며 오래도록 읽히는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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