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천국 가는 날
전혜진 지음 / 래빗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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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사람들, 그리고 보통의 음식이 갖는 특별함.

열 편의 연작소설집이다. '김밥천국'은 아마도 편의점이나 노점을 제외하고는 가장 손쉽고 저렴하게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이 책은 이토록 흔한 분식집 메뉴를 소재로 다양한 인물들에게 조심스럽게 렌즈와 스피커를 들이댄 듯한 이야기를 담았다.

학습지 교사, 워킹맘, 삶의 끝자락에 있는 싱글 동성애자,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 이주노동자, 성폭력 피해자 등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열 편의 이야기들 중 서로 연결되는 것들도 있지만 제각각 다른 상황과 서사를 지니고 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작가가 그동안 정말 다양한 인물들을 관찰하고 수집했겠다는 것이다.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 소설의 배경이 동인천이라는 것도 알았다. 각종 분식 맛집이 포진해 있는 그곳을 떠올리니 더 실감났다. 에피소드로도 나오는 '쫄면'이 최초로 개발된 곳도 동인천이라던데, 소설에 등장하는 식당을 조만간 가봐야겠다.

'오므라이스'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삶에 대한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좋았다. 이를 분식 메뉴와 연결시킨 아이디어도. 소수의 특권자들이 아닌 이런 보통 사람들의 힘을 느끼게 해준 최근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더 특별하게 읽었다.


※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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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수반캄 탐마봉사 지음, 이윤실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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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반캄 탐마봉사'라는 작가 이름이 낯설었다. 도무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어서 확인하니 라오스 계 캐나다 사람이다.1978년 태국 농카이에 있는 난민촌에서 태어나 한 살에 캐나다로 이주하여 토론토에서 자랐다. 저자를 설명하는 이력이 작품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

열 네편의 단편 소설이 담긴 책이다. 표제작인 '나이프를 발음하는 법'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작품이 라오스 이민자들의 삶을 그렸다. 언어, 문화적으로 너무도 다른 낯선 곳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부모를 보는 자식의 시선, 그리고 이민 1.5세대로서의 좌절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다.

나이프(knife)라는 단어의 첫 글자 k는 왜 발음하면 안되는지 부모는 알려주지 못했다.(나이프를 발음하는 법) 또 해골 코스튬을 입고 부자 동네 집들의 문을 두드리며 '트릭 오어 트릿'대신 아빠가 알려준 '치-카-치'라고 소리치면 사탕을 얻는다.(치-카-치!) 이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엄마는 결국 다시 라오스로 떠난다.(세상의 가장자리)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 다른 라오스 이민자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결코 주류 캐나다인으로 살 수 없다.

네일샵 직원인 전직 복서는 단골 손님을 짝사랑하지만 그녀는 다가갈 수 없는 대상이다.(매니 페디) 캐나다 이민 후 스쿨버스 기사로 사는 남편은 아내가 알바하는 카페 사장과 바람을 피워도 뭐라고 하지 못한다.(스쿨버스 기사)

그밖에도 70대 할머니가 옆집 30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슬링샷'(2019년 오헨리상 수상작)도 여운이 대단했다.

단편소설만이 줄 수 있는 강렬함과 페이소스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서늘한 이야기, 웃픈 이야기들이 섞어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읽다보니 초기 이민을 떠난 한국인들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도 떠올랐다. 캐나다 사람들이 라오스 이민자를 대하듯이 우리도 그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언젠가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 이민자 작가가 등장해서 탐마봉사처럼 한국 사회를 꼬집는 문학작품을 내놓는 날이 올 것 같다.

책 표지가 예뻐서 독서가 더 즐거웠다. 원서보다 훨씬 디자인이 좋더라.(디자인 표지 최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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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와 거장 - 위대한 창의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데이비드 W. 갤런슨 지음, 이준호 외 옮김, 박성원 감수 / 글항아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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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관점으로 분석한 예술가의 두 가지 유형.

재미있는 관점의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갤런슨은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다. 그는 대학시절 우연히 듣게 된 현대 미술사 수업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대부분 매우 어린 나이에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많으니 이는 어떤 차이인지 호기심이 생겼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예술가들의 창작 방식과 나이에 따른 성취의 차이를 분석하게 된다.

책에서 그는 예술가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번째는 '개념적 혁신가'인데, 이들은 젊은 시절에 창작의 정점에 도달한다. 이들은 명확한 아이디어와 개념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혁신이 적어지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파블로 피카소를 뽑는다.

두번째 부류는 '실험적 혁신가'. 이들은 경험을 통해 점차 발전해 나가는 유형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점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나이가 들고서야 창작의 정점에 도달한다. 이쪽의 대표 인물은 세잔이다.

저자는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고가에 판매된 작품을 제작한 나이, 주요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제작한 나이 등 객관적인 지표를 토대로 이를 해석한다. 예술작품을 수치화하여 비교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도 있다니 새로웠다.

개념적 혁신가와 실험적 혁신가의 특징을 계속적으로 비교하고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등 다른 분야로까지 확장시켜 두 부류의 작가들을 살펴본다.

어느 쪽이 더 낫다는 그런 결론은 아니다. 개념적 혁신가는 '천재'로 여겨질 수 있지만 아이디어가 소진되면 정체기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말년의 파블로 피카소는 젊은 시절보다 덜 주목 받았다. 실험적 혁신가라고 해서 쫄 필요도 없다. 이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념적 예술가들보다 작품을 개선시킬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창작이나 역량을 꽃피우는 전성기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예술가의 생애와 창작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 독서였다.


* 도서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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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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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쪼이면서 쎄한 느낌의 소설이다. 억만장자, 환경운동가, 아마추어 저널리스트, 작위를 받은 사업가 등 다양한 군상들이 제각각의 욕망으로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소설 속에서 태연하게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겉과 다른 욕망과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괴리를 책을 읽는 독자만이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에 점점 긴장감이 고조된다.


제목 '버넘 숲'이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등장하는 것으로 예언과 운명의 필연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뉴질랜드가 배경인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 '미라'가 설립한 환경 단체의 이름이다.


버려진 땅에 불법으로 작물을 가꾸는 환경 단체인 버넘 숲의 설립자 미라. 그녀는 새 부지로 봐둔 '손다이크'를 몰래 정찰하던 중 미국인 억만장자 '로버트 르모인'을 만난다. 르모인은 미라에게 버넘 숲에 거액의 지원금을 주겠다고 제안하고 미라는 그 제안을 받는다.


억만장자와 게릴라 환경단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대가 엮이면서 결국에는 음모와 비극이 시작된다.


르모인은 현시점에서 가장 빌런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 돈과 첨단 기술을 무기로 온갖 불법을 버젓이 행하는 정말 악질적인 인물이다. 일론 머스크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문제는 현실에서 이런 인물을 악으로 단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씁쓸한 현실을 소설을 읽는 내내 느끼게 했다.


미라, 셸리, 토니 등 버넘 숲과 관련된 인물들도 비슷하다. 겉으로는 환경주의자일지라도 갖고 있는 욕망은 누구보다 속물적이다. 실질적인 변화와 개선을 이뤄내지 못하거나 결국 자본주의 안에서 약자일 뿐인 이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내적 심리 묘사가 치밀해서 초반에는 문장을 읽는 것이 다소 버거웠다. 하지만 2부 마지막부터 엄청난 몰입감이 생기더니 3부는 숨막힐 정도였다. 오바마 대통령과 스티븐 킹이 추천했다는데 그만큼 현시점의 사회적 이슈를 잘 파악한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저자 엘리너 캐턴은 뉴질랜드 출신의 최연소 부커상 수상자다. 소설 속 묘사된 뉴질랜드의 환경과 국제 관계, 계급 문제 등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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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가까운 적, 성병
엘렌 스퇴켄 달 지음, 이문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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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독 환자가 늘었다는 기사를 봤다. 2025년에 매독이라니. 슈베르트, 슈만 시대에나 있던 사라진 질병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였다. 만약 매독에 걸렸다면 어떤 증상이고 또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임질, 헤르페스, 질편모충염, 클라미디아, 사면발니, 미코플라스마. 이름도 어려운 성병에 대해 현대인은 너무나 무지하다.

이 책은 노르웨이의 성병학과 의사이자 성 과학 분야 작가로 활동 중인 엘렌 스퇴켄 달이 썼다. 그는 TED에서 '처녀성 사기'라는 주제로 강연하여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책은 2022년 발표되어 점점 증가하는 성병에 관해 쉽고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각 질병별로 한 챕터씩 설명되어 있다. 가상의 환자가 내원하는 상황이 묘사되는데 그래서 증상과 치료법을 독자가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한다. 심각하고 장황한 의학적 설명보다 쉽고 정확한 정보 전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설명된 성병들의 증상이 모두 끔찍했다. 증상이 심해지고 나서야 내원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간단한 검사만으로 어떤 질병인지 진단할 수 있고 치료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매독의 경우는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감기와 같은 증세로 시작해서 피부 질환으로 이어지는데 이 때 그냥 지나가면 이후 잠복기가 최장 30년 간 이어진다고. 잠복기 후에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심혈관 손상이나 뇌, 중추신경, 전신마비까지 일으킬 수 있는 병이니 반드시 초창기에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단순히 성병의 증세와 치료법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병의 역사적 변천사와 치료법을 발견하게 된 과정도 소개되어 있다. 산부인과 도구인 검경의 발명이나 자궁경부 세포 검사를 발견한 파파니콜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개발하게 한 미국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의학과 관련된 깨알 지식까지 얻게되는 책이다.

또한 성병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는 내용도 있다. 흔히 에이즈로 알려진 HIV 바이러스는 성관계로 전염될 가능성 보다 베이거나 찢어진 상처를 통해 걸릴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동물과 관계하여 바이러스가 전염되었다는 썰도 가능성이 낮다고. 오히려 과학자들은 인간이 동물을 도살, 도축할 때 혈액으로 전염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성병을 금기시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조기발견과 적절한 치료, 무엇보다 안전한 예방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유쾌하고 유익한 책이었다.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질의 응답>도 궁금하다.

- 이 책에서 다루는 성병: 임질, 헤르페스, 생식기 사마귀, 매독, 질편모충염, 클라미디아, 사면발니, 자궁경부암, 미코플라스마, 옴, HIV와 에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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