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릴 때 소크라테스를 추천합니다 메이트북스 클래식 9
플라톤 지음, 김세나 옮김 / 메이트북스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소크라테스 입문서> 이렇게 제목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 읽는 책이다 보니 술술 읽히는 것에 비해 내용은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대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인데 쉬우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다.

 

제목이 주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보통 사람의 삶은 쉬이 갈대 같이 흔들린다. 그럴 때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의지가 된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를 내세우고 있다. 그의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서 충분히 그런 자격이 있음을 느꼈다. 죽음에 초연하는 모습, 철학자의 삶을 살다간 모습이 책속에 녹아 있다.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이는 그의 신념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슬픔과 괴로움은커녕 당당하게 죽어가는 모습에서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러니 죽게 되었다 해서 화내는 사람을 자네가 보게 된다면, 이는 그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충분한 증거 아니겠는가?”(115) 죽음은 화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니 신나는 일이다. 이 정도의 위인이면 우리의 스승으로 삼을만 하지 않겠나.

 

그가 아테나이인에 했던 말이 준엄하게 다가온다. 이보시오, 가장 위대하고 지혜와 힘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 아테나이의 시민인 당신이 부와 명예와 명성은 되도록 많이 획득하려고 안달하면서도 지혜와 진리와 당신 영혼이 최선의 상태가 되도록 하는 데에는 관심도 없고 생각조차 하지 않다니 부끄럽지 않소?”(38) 나에게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 명예, 명성은 뒤로 미루고 지혜, 진리, 영혼을 앞세우자. 부자가 되지 말자는 게 아니고, 부자가 되기 위해 영혼을 팔아먹지 말자는 말이다. 그도 이렇게 말했다. 부에서는 미덕이 생겨나지 않지만, 미덕에서는 부와 다른 모든 인간적인 좋은 것들이 생겨납니다. 개인적인 것이든 아니면 국가적인 차원의 것이든지요.”(39) 부와 미덕에는 선후 관계가 존재한다. 진정 현실 세계에서도 그런 것이라 믿고 싶다.

 

개인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잘 몰랐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 네 개의 책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인물됨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스스로 죄가 없음을 밝히는 변론’, 도망가라는 친구 크리톤을 향해 행복한 죽음을 택하는 크리톤’, 영혼은 영속하니 자신도 역시 영속하리라는 믿음을 보인 파이돈우리는 이 세 개의 이야기에서 그의 진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 이야기인 향연에서는 알키비아데스의 소크라테스 예찬에 보이는 그의 모습은 흡사 공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재미있게 읽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 있다. 배고픔과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서 공자의 안빈낙도가 엿보였고, 술을 잘 드셨지만 결코 취하지 않는 모습에서도 공자의 양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취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성인(聖人)은 통하는 데가 있는가 보다.(312)

 

변론할 때부터 죽음에 초연한 그의 모습을 어떻게 봐야할까? 배심원들은 그가 비굴하게 굴기를 바랐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조금만 비굴했으면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소크라테스에게 무슨 의미일까! 동시에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후세의 우리에게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가 될 수 없다. 나의 삶과 죽음도 어떠해야 하나 생각해 보게 된다. 나는 육체의 쾌락과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먼저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육체의 여러 가지 쾌락과 감정을 이롭다기보다는 해롭다 여겨, 멀리하고 배우는 즐거움에 열중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남에게 빌려온 장식물이 아닌 절제와 정의, 용기, 자유, 진실 같은 영혼 자체의 장식물로 치장하고 그리하여 운명이 부르면 언제라도 저승으로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혼에 대해 안심할 수 있는 걸게.”(207)

3부 파이돈은 솔직히 읽기가 힘들었다. 영혼에 대한 나의 신념과 다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크라테스 특유의 화법이 아직 적응되지 않아서이다. 뭔가 핵심을 바로 찌르지 않고 빙빙 도는 느낌, 자꾸 반복되고 논리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격다짐이 느껴졌다. 물론 나의 고집도 만만치 않아서 설득당하지 못한 면이 있지만 말이다.

 

앞에 비해 4부 향연은 재미있게 읽었다. ‘에로스라는 주제가 신선하기도 했지만 죽음을 벗어나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좋았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거부감이 들 정도의 표현도 많아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 대한 거부감으로 확대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특히 동성애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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