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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픽션 -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ㅣ 테마 소설집
조남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평점 :
서울, 아파트, 종묘, 광화문 교보문고, 밤섬, 전주, 울산. 부동산, 지진, 사직서, 불면증, 가상현실, 관람차, 시간 거품. 조남주, 정용준, 이주란, 조수경, 임현, 정지돈, 김초엽. 『시티 픽션,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는 이렇게나 다양한 배경과 소재가 버무려진 일곱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부동산을 소재로 한 작품들. 조남주 작가의 「봄날아빠를 아세요?」와 조수경 작가의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이 그랬다. 현대 한국에서 부동산은 가장 핫하고 가장 예민한 주제가 아닐까? 부동산 문제를 빼놓고 자산을 이아기할 수 없는 도시인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다. 지역구민들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에서는 'OO동 집값의 진실'을 논하는 글이 올라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저축해도 부동산 한 방을 이길 수 없음을 진작 깨달은 인물이 영혼없이 일하며 월급을 챙기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부동산 투어를 다닌다. 관심이 있기는 한데 뉴스에 매일 나오는 부동산 정책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소설을 통해 간접적인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리얼하다. 부동산이 현대사회에서 가장 강렬한 욕망의 대상이 되어버린지 오랜데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들이 나와 반가웠다.
김초엽 작가의 「캐빈 방정식」도 좋았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언니에게 내려진 '시간지각 지연 증후군'이라는 선고. 모두가 지각하는 시간을 훨씬 느린 속도로 받아들이는 언니가 어느날 갑자기 편지를 보낸다. '백화전 옥상 관람차 있잖아. (..) 거기 진짜로 뭐가 있을 거야. 혹시 시간 되면 한번 가볼래?' 알고보니 그곳은 온갖 괴담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도시의 외딴 놀이공원(시설)에 얽힌 괴담과 관람차를 탈 때 느끼는 울렁거림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들이 시간을 지각하는 능력과 물리학을 만나 또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최근 인문학적 사유와 과학적 설명이 아름답게 배합된 SF 작품들이 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김초엽 작가님도 믿.보.작 중에 한 명이시고. 이번 단편도 역시나 좋았다. 영화 <인터스렐라>도 떠오른다. 이제부터는 관람차를 타는 모든 순간이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서울에 지쳐 지방으로 내려간 귀향을 소재로 한 「별 일은 없고요?」도 좋았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사직서를 내고 엄마가 거주한 지역으로 내려간 '나'. 상처입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누군가 툭 치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상태가 저절로 그려지며 기형도의 시 「조치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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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주 떠나는 기분 이해합니까?
고향으로 가시는 길인가보죠.
이번엔, 진짜, 낙향입니다.
달걀 껍질을 벗기다가 손끝을 다친 듯
사내는 잠시 말이 없다.
(..) 서울 생활이란 내 삶에 있어서 하찮은 문장 위에 찍힌
방점과도 같은 것이었어요.
조치원도 꽤 큰 도회지 아닙니까?
서울은 내 둥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방 사람들이 더욱 난폭한 것은 당연하죠.
(중략)
그러나 서울은 좋은 곳입니다. 사람들에게
분노를 가르쳐주니까요. 덕분에 저는
도둑질 말고는 다 해보았답니다.
- 기형도, 「조치원」 중에서
이주란 작가의 「별 일은 없고요?」은 고향으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서울이 아닌, 낯선 곳으로 간다. 새로운 인물을 향한 수군거림에 답하고 오해를 풀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곳에서 느리지만 정직하게 나를 다시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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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새벽에 책상에 홀로 앉아 있으면 이상한 감정이 들어요. 아...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데 말이에요.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꼭 장소인 것 같다니까요. 그 기분과 그 느낌이 종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갈 수도 있고 머무를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묘사할 수도 있는 곳."
이도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고 감정이 장소인 것 같다는 서유성의 말을 곱씹었다. 감정이 장소다. 감정이 장소다.
- p.89, 「스노우」 중에서
도시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여 현실을 입체적으로 감각하게 도와준다.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조금씩 다른 속도와 모양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도시인들을 위한 단편 모음집. 무엇보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