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나날
알리스 브리에르아케 지음, 모니카 바렌고 그림, 정림(정한샘).하나 옮김 / 오후의소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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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어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잠시 고민한 후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굳이 다시 태어나고 싶진 않아요. 그렇지만,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그렇다면 구름이 되어 보고 싶어요. 구름. 그 구름을 그림책으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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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최소한 세 번 읽는다. 처음에는 그림과 글자를 함께 읽고, 두 번째는 그림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며 다시 읽고, 마지막에는 두 번의 읽기를 통해 생각한 것들을 돌아보며 한 번 더 페이지를 넘겨본다. 활자만 가득한 책을 읽을 때는 행간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그림책을 읽을 때는 화간을 읽으려고 한다. 『구름의 나날』을 읽으면서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건 시계와, 바이올린과, 구름.


첫 장을 넘기면 세 개의 시계가 등장한다. 모두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잘 가던 시계가 어느날 갑자기 맞지 않는 이상한 날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고, 책에 등장하는 하루동안의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살펴보는데 마지막 시계를 발견하고 웃음이 나왔다. 이건 고양이 털이잖아(!)
우리집 고양님은 빗질을 좋아해서 매일 1회 이상 작정하고 빗어줘야 한다. 심한 날은 하루 1회 만으로도 연근 모양의 털꾸러미가 나오지만. 털갈이 시즌이 아닐 때는 빠져나온 적당량의 털을 매일 지퍼백에 모아두고 있다. 모아뒀다 털공을 만드려고. 아주 큰 초대형 털공을 만들어서 고양님을 놀래키려고.
책에서 털공으로 만든 시계를 발견한 뒤로는 더욱 적극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나오는 구름은 털공일까 아닐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는 것이 두 번째 읽기의 또 다른 재미였다. 과연 털공이 또 나올까? 털공을 스윽 그려넣은 이유는 뭘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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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나날을 보내는 그의 곁을 지키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따뜻한 차, 몽글몽글한 고양이, 그리고 음악.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번은 평범한 옥타브로, 한 번은 아주 높은 옥타브로 연주한다. 자연스레 인물의 기분과 옥타브의 높낮이를 연결해서 읽게 되었고. 몇 년 간 바이올린을 켰던 경험으로 연주 장면을 관찰해 보면 그는 능력있는 연주자다. 여유롭고 평온한 표정, 그리고 정확하고 곧게 편 새끼손가락이 말해준다. 아마도 음악은 구름만큼이나 그의 곁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 온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구름. 다시 태어나면 구름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그것이 흐르기 때문이었다. 구름은 구름이면서 구름이 아니다. 언젠가 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것. 정처없이 흐르는 존재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구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름의 나날』에도 그런 구름이 나온다. 작은 구름은 점점 더 자란다. 크고 무겁고 울창해진다. 너무 커서 때론 구름이 나를 잡아먹고 내가 그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러나 구름은 반드시 흘러내린다. 꽃을 피우는 데 꼭 필요한 물이 되어.

나는 『구름의 나날』에 등장하는 모든 오브제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나를 억누르고 내 눈을 가리는 것도, 나를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것도, 무슨 일이 있어도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는 것도. 모두 다 마음에 있는 것.
출판사 오후의 소묘는 모니카 바렌고를 '부정적인 감정에서조차 낭만과 다정이 우러나'는 작가, '세상을 향한 특유의 따듯한 시선과 낙관'을 가진 작가라고 소개한다. 낙관보다 비관을 믿는 나는 혼자 있으면 자주, 그리고 쉽게 구름을 만나고. 그래서 낙관을 이야기할 줄 아는 이를 곁에 두려 한다.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모니카 바렌고의 그림도 곁에 두고 자주 보고 싶다.

💭 <구름의 나날> 리뷰어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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