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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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신작. 하루키 다운 소설이었다. 처음으로 여성이 단독 주인공인 장편소설이라 나름 화제가 된 모양인데, 글쎄 굳이 여성이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싶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엘렉트라>의 하루키식 다시 쓰기 같다는 평을 읽었는데, 그렇게 이 소설을 읽는다면 어쩔 도리 없이 납작해서 아쉽다고 말할 수 밖에는.

소설은 ˝솔직히 그쪽보다 못생긴 상대는 처음이군요.˝라는, 소개팅 자리에서 막말을 던지는 남자의 대사로 시작된다.(<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아주 후킹하다. 이 소개팅남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주인공 가호는 개미핥기 부부과 흰개미여왕이 있는 비현실적인 세계 속으로 떨어진다. 진짜 현실과는 어딘가 다른 기묘한 곳으로 꿈인지 아닌지조차 분간이 어려운 세계다.

˝나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틀린 것, 사악한 것이라고 단호히 거부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전부 다른 세계에서 일어난 일로 묵살하고 망각해버려야 할까? 진실에 몇 가지 측면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올바름에도 몇 가지 측면이 있다. 무엇을 택해도 정답이 되고, 무엇을 택해도 오답이 된다.˝(212p)

답이 보이지 않는 세계다. 답지는 주어지지 않는다. 가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너무나 하루키적인 세계, 하루키적인 인물들, 하루키적인 문장들이다. 나는 분명 비슷한 이야기를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만난 적이 있다. <가호>에서도 역시 상실, 내면의 고백, 이세계로의 진입이라는 장치가 반복된다. 확실히 짧고 읽기 쉽지만, 이전작과 반복되는 부분들이 많고(이건 사람에 따라 장점일수도) 상징은 모호하다.

하루키 소설들 중에서도 <해변의 카프카>나 <1Q84>처럼 장대한 서사적 체험이 가능한 소설이 취향인 나에게는, 아쉽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소설이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가호>를 한 여성의 정신적 역사로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던데, 그럼에도 나는 굳이 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이어야만 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모녀 서사의 복잡다단함을 다루기에는 하루키 스타일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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