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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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비바, 제인>의 작가, 개브리얼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자기 복제 없이 세 작품 내내 각기 다르게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써낼 수 있다니. 세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어린시절 함께 게임을 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던 샘과 세이디가 우연한 재회를 통해 의기투합하여 함께 게임을 만들게 되는 내용이다. 물론 이야기는 그보다 더 멀리 간다. 두 사람의 공통 분모 ‘게임’을 중심으로, 우정과 사랑, 오해와 진실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새벽까지 페이지를 넘기며 오랜만에 읽는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샘-세이디를 주축으로 한 인물들의 관계성이 흥미로웠고, 두 사람의 인생 곡선을 따라 탄생되는 작중 게임들 또한 무척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어린시절 불우한 사고를 겪고 예민하고 폐쇄적이며 오만한 성정을 가지게 된 샘.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아픈 언니, 공대에서 희귀한 여학생이라는 환경 때문에 충족되지 않는 결핍을 채워줄 외부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면이 있는 세이디. 두 사람은 서로를 스스로의 분신이라 여길 만큼 깊이 이해하지만, 그만큼 애착이 깊기에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그게 아닌 걸 알면서도) 크게 서로를 오해하기도 한다. 이들이 이성 친구라는 점 때문에 생기는 우정과 사랑 사이의 관계 고민도 재미있었다. 두 사람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서로를 사랑한다. 그렇게 유일무이한 관계라면, 일도 사랑도 서로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소설 속에서 꽤 만족스럽게 풀린다.



창작자가 주인공인 소설에서 작중 창작물은 소설 재미의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다. 그런 면에서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의 작중 게임들은 플레이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아마 샘-세이디가 각자를 투영해서 만들어낸 게임 속 세계이기에 더욱 마음이 갔을 테지만. 두 사람의 첫 합작품이었던 ‘이치고’(호쿠사이의 작품이 모티브), 세이디가 학생 시절 만든 ‘솔루션’(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활용한),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회사를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뒤 만든 ‘세계의 양면’ 등등 작중 등장하는 게임들이 모두 설득력있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나는 이 게임들의 모티브가 된 실제 게임들(하베스트 문, 심즈, 동물의 숲, 스타듀 벨리 등등)을 찾아보다가 게임기를 구매하기에 이르는데… (당분간 책 못 읽을 예정) 아무튼. 저자가 실제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고 게임이라는 세계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게 느껴져 소설 속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결국 게임도 이야기니까.



돌고 돌아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사랑은, 내가 알아차려야만 그 자리에 항상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일단 누군가를 사랑하면, 듣기 지겨워질 때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 말이 의미가 닳을 때까지 사랑한다고 말한다. 안 그럴 이유가 있는가? 당연히, 젠장, 사랑한다고 말한다.(615)



정말, 왜 아니겠는가. 정립되지 않은 관계의 속성, 오해와 판단, 질투… 그런 것들보다 언제나 사랑이 더 크다.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많은 훌륭한 이야기들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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