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된다는 것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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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아하는 작가 니콜 크라우스의 단편집.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문장에 있다. 크라우스가 자아내는 문장들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는 내면의 미세한 균열을 정교하게 그려내고, 기어이 문장 하나하나가 정체성과 삶과 사랑이라는 주제에 닿도록 직조해낸다. 작중 인물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독자들 모두 불가해하고 난해한 삶의 그물 속에서 기어이 사랑을 찾아내도록.



열 편의 단편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에르샤디를 보다>. 영화 <체리향기>에서 미스터 바디를 연기한 바로 그 에르샤디 맞다. 무용수인 주인공은 도쿄의 어느 정원에서 에르샤디를 보게 된다. 어쩌면 에르샤디의 모습으로 눈 앞에 현현한 자기 자신을.



이 작품은 영화 <체리향기>와 배우 에르샤디, 주인공과 친구 로미의 이야기가 다층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다. 또,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에르샤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공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작품의 말미에 주인공은 ‘에르샤디로부터 무언가를 포착하고 싶은 욕망. 현실이 나를 위해 팽창했고 다른 세상이 다가와 나를 건드렸다고 느끼고 싶은 욕망 때문에 내 상태를 더 빨리 자각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결국 외부 현실의 징후들은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인 셈이다. 이 과정이 영화 <체리향기>의 줄거리를 빌어 꽤 아름답게 드러난다.



다음으로 좋았던 단편은 <스위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은 ‘폭력적 관계에 자신을 내맡기고 벼랑 끝까지 다녀오는‘ 한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소녀는 ‘자신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며 어둠 혹은 두려움과 맞붙어 이긴 사람의 품위‘를 가졌다.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기어이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소녀. 이런 류의 이야기는 거부하는 것이 더 힘들다.



니콜 크라우스의 전작들로는 <사랑의 역사>, <위대한 집>, <어두운 숲>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단연 <어두운 숲>. 그렇지만 아직 그의 작품들을 만나보지 않은 운 좋은 독자라면 최신작이자 첫 단편집인 이 책 <남자가 된다는 것>으로 가볍게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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