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딸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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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죽은 성녀, 영원한 아이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이미 완성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자매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당신을 되살린 후 다시 죽이기 위해서일까요?’ 에르노는 자신의 근원으로 되돌아가 언니가 죽은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태어난다. <다른 딸>은 수신인이 없는 편지이며 에르노가 자신의 삶을 다시 명명하는 자리다.



‘나는 당신이 죽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죽은 것은 내가 글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에요.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에르노의 삶은 글쓰기로 집결된다. 삶의 모든 순간을 해체해 그 의미를 탐색하는 에르노식 글쓰기는 삶 자체다. 이번 책, 죽은 언니의 완성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언니가 사라진 자리에서 살아온 에르노는 ‘정말로 살아있지 않은’, ‘허구의 삶’을, ‘존재의 부재’를 파고들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그동안 비밀로 부쳐졌던 죽은 언니를 낱낱이 파헤치며 에르노가 직면한 것은 텅 빈 형체다. 글쓰기로 채울 수 없는, 추억 없는 사람. 이미 완결된 이야기.



편지의 결말부에 이르러 에르노는 ‘내 존재를 당신의 존재로 바꿀 수 없음’을, ‘나는 존재하기 위해서 당신을 부인해야만 했음’을 고백한다. ‘죽음이 있고 삶이 있다’고. 에르노는 이 문장에 이르러서야 죽은 언니의 그림자를 떨쳐내고 자신의 존재를 삶의 자리에 돌려놓는다. ‘나’가 되기 위해 ‘당신’을 그림자의 자리로 돌려보낸다. 이제서야 누군가의 대체가 아닌 그녀 자신이 그려진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여운이 길다. 역시 아니 에르노.



+) 책의 말미에 실린 신유진 작가님의 추천사가 정말 좋아요! 죄다 밑줄밑줄. 이 편지의 다른 제목으로 ‘나’이기 위해 부르는 ‘당신’이라니. 황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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