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지음, 백지민 옮김 / 푸른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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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인가!˝ 첫 페이지부터 황홀한 기분으로 한 문장 한 문장을 탐독했다. 무엇보다 감정의 떨림을 오롯이 담아낸 문장을 보면서 전율했다. 이런 묘사, 이런 문장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문장 말이다. 오늘의 책은 1980년대 폴란드의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피어난 퀴어 로맨스를 그린 소설, 토마시 예드로프스키의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주인공 루드비크는 대학 졸업 전 농촌활동에서 야누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들이 한여름 호숫가에서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져있던지! 표현 하나하나에 감탄했다. 처음 야누시를 본 순간 ‘마치 아는 얼굴을 알아본 양 내 마음은 기묘하게 안심‘했다던가, 스스로의 분신처럼 여기는 책을 덜컥 알려줘놓고는 ‘인생을 살면서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거나! 상대방을 애타게 그리며 그를 점차 세계의 중심으로 놓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져있다. 너무나 적나라하고 강렬해서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사랑이라니. 그걸 언어로 표현해내다니.

그런가하면 소설 속에서는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느끼는 불안과 두려움, 체제에 순응하며 성공을 갈망할 것인지 탈출하여 자유를 맛볼 것인지 사이의 갈등 또한 첨예하게 드러난다. 루드비크와 야누시는 서로를 애타게 갈망하지만 그들 욕망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여름 호숫가에서의 환희가 끝나고 회색빛 도시 바르샤바에서의 갈등이 소설 후반부에 펼쳐진다. 억압당하며 ‘부질없는 삶과 소극성‘을 견딜 수 없는 루드비크와 ‘모험을 피하고 똑똑하게 굴어야 한다‘는 야누시. 필연적으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여정은 어쩐지 견딜 수 없이 쓸쓸하다. 전반부의 찬란함만큼이나 후반부의 암흑 또한 강렬하다. 금기 안에서의 욕망, 체념 혹은 반항, 불안과 수치 같은 것들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칫 전형적일 수 있었던 책 속 이야기를 강렬하게 재탄생시킨 건 바로 살아있는 문장이다. 특히 루드비크가 영혼의 책이라 여기던 <조반니의 방>을 야누시에게 덜컥 빌려주던 바로 그 순간을 나는 오래도록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나의 전부를 들킬 것을 각오하면서도 어쩐지 그라면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전전긍긍하던 루드비크의 모습은 과거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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