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기 안내서. 다소 생뚱맞은 제목의 이 책은 리베카 솔닛의 초기작에 속하는 에세이다. 국내에서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로 이름을 알린 솔닛은 사실 역사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작가이자 인권 운동가다. 이 책에서 솔닛은 다루기 모호하고 어려워보이는 ‘길 잃기‘라는 주제를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비롯해 신화, 역사, 자연 등 온갖 주제를 넘나들며 풀어낸다. 솔닛만이 가능한 글쓰기다. 이 책에서 솔닛이 이야기하는 길 잃은 상태는 두 가지다. 실제로 길을 잃는 것과 비유적으로 길을 잃는 것. 솔닛의 문장에 따르면 어느 쪽이든 ‘길을 전혀 잃지 않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고, 길 잃는 방법을 모르는 것은 파국으로 이어지는 길‘(31p)이다.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는 이가 있을까. 길을 잃고 또 잃으며 성장하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삶이 아니던가. 결국 솔닛의 지적 탐험을 따라가며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이 책은 결국 끝없이 길을 잃어야만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역설에 대해 말하고 있는 셈이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페르세포네와 마린 이야기다. 이 챕터에서 솔닛은 무모한 젊음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보다는 요절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청소년기에 대해서 말이다. 이 글은 ‘우리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죽음이 반드시 삶의 일부여야 한다는 사실‘(130p)을 짚으며 시작된다. 솔닛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구 마린을 추억하며 자신의 마음을 되돌아보는데, 이는 곧 ‘절대적으로 현재만을 사는 젊음‘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다.독서의 여정 자체가 길을 잃고 길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던 <길 잃기 안내서>. 솔닛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 거듭 읽어도 좋다.www.instagram.com/vivian_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