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유령일 뿐 민음사 모던 클래식 71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유디트 헤르만은 내가 꽁꽁 숨겨뒀다가 읽을 때가 왔을 때 한 권씩 꺼내어 야금야금 읽는 작가다. (줌파 라히리,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경우가 비슷하다.) 문장 문장을 음미하면서 책을 읽고 싶었고, 고전보다는 현대 문학쪽에서 찾고 싶었고, 외국 문학을 읽고 싶었다. 서가를 배회하다보니 고른 것은 결국 유디트 헤르만의 <단지 유령일 뿐>.



원래 나는 단편을 즐겨 읽지 않는다. 최근 몇 년 한국문학을 읽느라 단편집을 자주 읽기는 했지만 원래 나는 무조건 장편소설파다.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미친듯이 몰입해 읽는 것을 좋아한다. 시리즈물이라면 더 좋다. (그렇지만 시리즈간의 번역이 더디거나 순서가 다르게 번역 출간되는 것을 참기 힘들어하는 스타일이다.) 어쨌든 내 말은 <단지 유령일 뿐>이 단편소설이라는 것이다.



사실 쑥쓰럽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졌다. 혹은 뒤에 실린 작품들이 나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고. 앞에 실린 두세작품은 마음에 드는 구절을 손 필사까지 해가며 꽤 꼼곰히 읽었다. 뭔가 남는 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루스(여자 친구들)‘,‘아쿠아 알타‘,‘뚜쟁이‘ 정도다.



유디트 헤르만의 문장은 섬세하다. 일상적인 사건들 속에서 행불행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작가다. 그래서 문장을 건너뛰는 식으로는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꼼꼼히 주의를 기울여 읽어야 주인공의 상황과 심리에 제대로 젖어들 수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주말 천천히 읽어서인지 이 책을 떠올리면 조금 감상적인 기분이다. 책을 읽으며 순간의 인연, 이어지고 끊어지는 인연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쩌면 돈도 명예도 자존심도 크게 중요치 않고 그냥 그 순간이, 당신(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아무도 아니든간에, 타인.)과 함께 지나는 그 순간만이 소중하고 값진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이 우리의 마음 속에 남기는 궤적들은 평생 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다. 비오는 가을이라 그런가.



어쨌거나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기억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과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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