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짐승아시아하기 문지 에크리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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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마어마하다. 문지에크리 시리즈로 출간된 김혜순 시인의 아시아 여행기, <여자짐승아시아하기>. 김혜순 시인의 작품을 처음 읽는 나는 순식간에 압도당해버렸다. 40년간 시를 써온 시인. 올해 그리핀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관습적으로 해석돼온 한국 여성시의 풍경과 문법을 비틀고 타파한(<피어라 돼지> 출판사 소개)˝ 시인. 그녀가 아시아의 몇몇 나라를 여행하며 ‘여자/짐승/아시아-하기‘에 대해 썼다.



이 책을 여행기라고만 소개하기는 힘들 것 같다. 수록된 글들 속에는 정확한 지명이 언급되지 않으며 관광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도 없다. 다만 문장들이 마치 시 또는 산문, 아니, 시-산문처럼 시인의 사유를 따라 거침없이 흘러간다. 시인이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그녀 자신만이 가능한 방법으로 쓰여졌다.



‘여자하기‘,‘짐승하기‘,‘아시아하기‘. 나에게 주어진 정체성(과 그 개념들)에서 탈피하여 한 발자국 건너 바라보기. 쉽지 않았지만 문장을 더듬더듬 읽으며 시인의 사유를 따라가려 애썼다. ‘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기를 여러번. 책을 읽으며 쉽게 만날 수 없는 귀한 순간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표현하기는 어렵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자하기‘,‘짐승하기‘,‘아시아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그렇게 되어졌기에?



시인은 ‘여자짐승아시아는 가능성의 세계‘이며 ‘성별, 인종, 국가를 막론하고 여자짐승아시아 할 수 있다‘고 썼다. 여자의 몸으로, 짐승과의 외밀성을 공유하며, 아시아를 여행하는 시인. 그리고 그 이상. 어쩌면 당신도 <여자짐승아시아하기>를 읽는 동안은 여자짐승아시아하기를 할 수 있을지도. 눈의 여인과 검은 여신과 쥐와 붉음의 세계에서 당신이 아닌 그 무엇이 될 수 있을지도. 아니, 근미래에는 우리 모두가 인간짐승이 되어있을지도.



도대체 이 책이 어떻다는건지 모르겠다고? 나도 내가 뭐라고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일단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직접 여자짐승아시아하기에 도전해보시기를. 어떤 글은 직접 체험되어야만 하고, <여자짐승아시아하기>가 그렇다.




www.instagram.com/vivian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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