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기가 났다.
작년에도 두드러기때문에 십여일 고생을 했었다.
그때는 상한 우유 두 모금이라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원인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도통 원인을 모르겠다.
딱히 생각나는 원인이 없다기 보다 너무 많은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우유도 많이 마셨고, 계란도 끼니때마다 먹었으며, 어패류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음식도 먹었다. 추운 곳에 오래 노출도 되어있었고, 최근엔 나름 직장과 집에서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러니까 도대체 원인이 뭐냔 말이다!!!

계속 두드러기가 돋아 있는 것은 아니다. 아침 저녁으로 두 번 반복적으로 났다가 다시 가라앉는다. 아침 저녁으로 일정하게 나타나는 두드러기지만 돋았다가 다시 들어가는 시간은 일정 하지가  않았는데 샤워도 하고, 물도 마시고, 약속 없이 집에서 푹 쉬고, 음식을 가려먹는 나름 노력한 비 약물 요법 중에 도대체 원인이 뭐냔 말이다!!

심하게 가렵지 않아 내내 참다가 5일 전에 피부과에서 약을 받았는데 울긋 불긋한 얼굴을 보고 팀장님 한 말씀.

"네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다. 동생이 먼저 시집간다고 상견례까지 했으니 그 속이 오죽하겠니. 그리고 우리가 한 삼개월이 워낙 바빴잖니. 노구를 이끌고 일하려니 힘들고, 거기에 스트레스까지 받아서 그래. 보약이나 지어 먹어라."


???
그렇다면 두드러기 치료법은 동생이 결혼을 안 하거나, 미뤄지거나, 내가 먼저 하던가,
아니면 나이를 거꾸로 돌린다던가, 일을 그만 둔다던가 해야 하는데

동생은 결혼을 꼭 할 것이고, 절대 미뤄질 일도 없다. 내가 먼저 결혼을 하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이긴 하나 그것도 작년부터 노력해서 올해도 3월을 넘겨버리니 여기에 정신을 집중하면 그나마 하루에 두번이던 두드러기가 온종일 솟아 있을 것이다. 나이를 거꾸로 돌리기 전에 지구가 먼저 멸망할 것이고, 후덜덜한 카드 명세서는 채찍을 들고 나를 일터로 내몬다.

결론 나왔다.

결혼 안 한 30대의 여자는 두드러기가 나선 안된다.
 
오늘은 오후 근무였다. 5일 전 받은 피부과 약이 떨어진 오후 근무였다. 그 전에 렌즈도 떨어졌는데 일주일 째 안경만 쓰고 다녔다. (일회용 렌즈를 낀다) 집에서 일찍 나가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사고, 안경점과 피부과를 차례로 들르기로 했다. 1년에 한번 있는 유니폼 사이즈 재는 날이었기에 근무 전에 팀장님실도 들러야 한다. 연필도 떨어져가니 문구점도 들러야했는데 예상시간으로 잡은 1시간이 카페에 들르자 30분이 훌쩍 가 버린다. 커피를 들고 뛰기 시작한다. 오늘 따라 신호등은 계속 빨간 불이다. 늘 있던 안경사가 쉬는 날인가 보다. 이름을 일러주고 초초함에 손가락을 책상에 두들겼다. 40분이 지났다. 여기서 고민을 한다. 내일도 오후근무니 먼저 나와 피부과와 문구점을 들러 오늘은 이대로 출근을 하느냐 오늘 마저 일을 보고 내일은 좀 더 게으름을 피우느냐. 고민하는 순간에 피부과에 도착 한다.

그대로던가요? 의사가 물었다. 그대로에요. 좀 더 나아진 건 없구요? 없는데요. 계속 약을 먹어야 할까요? 대답이 없다. 대신에 묻는다. 저번에 주사는 안 맞는다고 했죠? 오늘도 안 맞을건데요. 다시 5일분 드릴게요. 이번에는 내가 대답이 없다. 먼저 계산을 하고 처방전을 들고가는 아저씨를 그리피너 조이스가 되어 나는 걸음으로 따라 잡았다. 약국에선 대기 시간 없이 바로 약을 받았다. 50분이 지났다. 마지막으로 문구점이 남았는데 병원 앞은 빈 택시들이 대기중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하지?


 파버 카스텔 보난자 2B 연필 5자루, 파버카스텔 9000 3B 3자루, 파버카스텔 색연필 파랑과 핑크, 파버카스텔 휴대용 연필 깍이, 연필 마개 10개 세트, 포스트 잇, 지우개 한개, 화이트 3개(팀장님 뇌물용 한개 포함) 제스트림 볼펜심 1.0짜리 2개. 노트와 필통은 찬조 출연

마무리.

업체에서 늦게 오는 바람에 유니폼 사이즈는 출근 전이 아니라 근무 중에 재야 했다. 다행이다. 작년보다 사이즈가 늘었다. 쉣이다. 팀장님 압박으로 친한 레지던트를 찾아 약을 지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속 병이 났다고 한다. 한방은 늘 두리뭉실하니 고개가 갸웃갸웃 했지만 회복은 두리뭉실 되어가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피부과 약은 당분간 중단하라고 한다. 20분 더 늦게 나와도 됐는데 안타깝다. 대신에 내일은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 그래서 행복해졌다. 피부과 약을 먹지 않았더니 얼굴에 붉은 꽃이 가득 피었다. 일요일은 모처럼 쉬는 날이고, 모처럼 약속도 잡았다. 이 얼굴이 일요일도 그대로 라면 큰일이다. 일요일은 피부과 약을 먹어 꽃들을 달래 볼까 한다. 혹시나 한약을 먹는데도 두리뭉실 낫지 않을 경우엔 말을 듣지 않고 피부과 약을 먹은 것을 숨겨야 한다.
안타까운 20분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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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3-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필과 색연필과 포스트잇을 대체 어떻게 어디에 사용하시는 걸까요? 아 궁금해요..

버벌 2011-03-31 14:01   좋아요 0 | URL
락방님이 생각하는 바로 거기에 사용해요~~ ㅋㅋㅋㅋㅋㅋ 연필은 일할때 많이 쓰는거라. 주로 볼펜을 쓰는데 볼펜과 비슷한 비율로 연필도 사용하거든요. 공동으로 쓰는 연필과 볼펜이 있는데 마음에 안들어서 저는 주머니에 제것은 담아다녀요. 주머니 속에 순전히 나만의 것이 담겨있어요. 연필 지우개 화이트 볼펜 작은가위 초콜렛몇개... ㅡㅡ;;; 안 그래도 큰 몸이 부푼 주머니때문에 더 크게 보인다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