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전 쯤에 큰 돈을 들여 맛사지권을 끊었다. 출근을 하면 거의 서서 일하게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서 오직 나만을 위해 카드와 타협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오늘 난 그 맛사지권이 아직 남았음을 기억해냈다. 예약 전화를 하니 오늘 비어있는 시간이 있다고 했다. 여행 후 폭풍으로 단단해진 근육들이 전문가의 손길로 한바탕 비명을 지르고 난 뒤 흐물해진 몸과 정신을 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따뜻한 공기에 절로 잠이 쏟아진다.
그러다가 풀린 근육 탓인지(?) 좀 더 똑똑해진 머리가 며칠 전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결제를 망설였던 책이 있었음을 기억해냈다.






스티븐 킹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팬이 그가 경기장에서 독서하는 모습이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한권씩 들려있다고 한다. 사진이 올려져 있던 조재형님의 홈피에서 조재형님이 말하기를 스티븐 킹은 "참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작가의 모범사례"라고 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 구입은 나에게 의무이다. 재미가 있던 아니던간에 그의 신간은 이유를 불문하고 구입한다.
내 소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티븐 킹이 오래 오래 살아 지금보다 더 많은 책을 내주는 것. 비슷한 소원으로 마틴옹이 얼음과 불의 노래를 끝내기 전에 불미스러운 사고로 글을 못 쓰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화책 중에는 이미지가 검색되지는 않지만 예약판매로 배송일이 2월 8일인 빌리배트 3권이 끼어 있다. 1,2권 구입 후 왜 아직 3권이 나오지 않느냐며 식충이 두 동생들의 징징거리는 목소리는 이제 4권으로 바뀌게 될 터이다. 책이 도착하면 먼저 후다닥 읽어버리고 책장에 감춰서 두 녀석들의 칭얼거림에 소심한 복수를 할 생각이다. 나란 여자. 악한 여자.
유키카오리의 신작인 인형궁정악단, 시귀 1,2권, 흑박물관 스프링갈드는 빌리배트를 검색하는 와중에 알라딘의 친절한 추천 마법사를 통해 알게 됐다. 기대만 잔뜩하고, 구입한 네 권중에 두 권은 읽지도 않고 책장 속으로 사라진 설희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지기 않기를 바랄뿐이다. 신간 발행으로 잠시 잊고 있던 유키카오리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된 나는 백작 카인 시리즈를 다시 잡았다. 역시나 아는 내용임에도 볼 때마다 재미있다.
플라톤의 국가는 순전히 최근에 읽었던 "리딩으로 리드하라"때문에 바구니에 담겼다.
비 소설류는 앤 페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 이후로 재미를 못 봤다.원래가 비소설류는 그닥 흥미를 못 느낀다. 그래서 시집이고 에세이고 자기계발서과 같은 글들은 끈기있게 읽어본 적이 없다. 그 책이 좋아하는 책에 관한 독서 에세이임에도 말이다.(더구나 그런 독서 에세이는 나오는 대로 모두 구입까지 하지만 늘 책장으로 직행이다)
언젠가 당직이 걸려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같이 일하던 닥터가 열독(열심히 독서)중이다. "제목이 뭐에요?" 라고 물으니 "논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공서적만 볼 줄 아는 범생이 직업의 그녀이기에 역시나 그런 책만 읽는 구나 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웃으면서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 보셨어요?"라고 묻는다.
베스트셀러라니 책 제목은 알지만 비소설류를 좋아하지 않아 보지는 않았다는 내 말에 그녀가 웃었다. 자기도 마찬가지란다. 한데 읽어보니 의외로 쉽게 읽혀서 좋았는데 거기에서 인문고전 "논어"를 새롭게 알게되어 쉽게 풀이 된 책으로 골라 차근 차근 읽고 있다고 한다. 오호라~ 절로 감탄사가 입에서 흘러나온다.
책에서 책을 추천 받는다. 앤 페디먼도 그랬다. "책은 나에게 훌륭한 추천인이다"

범생이 그녀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리딩으로 리드하라"라는 책을 어쩌면 오래도록 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 난 운이 좋았다. 인터넷 배송을 기다리는 게 싫어서 직접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입했고, 그날 저녁 바로 읽어버렸다.의외로 쉽게 읽혔다는 범생이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생각해보니 예전에 음식혁명이라는 책도 그녀가 권해줬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읽고 난 뒤 플라톤의 국가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레포트 때문에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읽어본 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꽤나 큰 인내심이 필요함도 알고 있다. 인터넷 검색하며 인문 고전학에 대한 모임이 있는 지 살피고 책에 대한 여러 정보를 찾으며 늦은 나이지만 나 또한 머리가 트이기를 기대한다.
결제를 했다. 통장을 박박 긁어서. 하~ 이제 돈이 없다. 번갯불에 콩 볶듯이 다녀온 여행은 머리를 비워 낸 것 처럼 통장 잔고도 비워놨고, 난 오늘 깨끗하게 청소까지 했다. 카드도 써야 하는 한도를 야무지게 꽉꽉 채워놨다. 다음 카드 갱신일은 2월 14일이다. 발렌타인 데이이고 내 생일 다음날이다.
돈이 없음에도 생일은 생일 답게 치뤄라. 불행중 다행이다. 생일에 대해선 카드는 늘 나에게 협조적이다.
돈은 없지만 적어도 책을 기다리는 이틀간과 택배를 받은 하루는 행복할 것이다.
PS : 알라딘은 참 글을 쓰기 힘들다. 엔터 사용이 잦은 사람이라 엔터 칠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빈칸이 싫어 쭈욱 써 내려갔더니 글이 빡빡한게 읽기가 힘들다. 좀 더 쉽게 글 쓰는 방법이 있는데 나만 모르는 걸까? 그럼 정말 슬픈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