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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지옥 재미없는 천국
유지순 / 세손(하늘마루) / 1997년 12월
평점 :
절판
'풀뿌리 귀신'에서 작가는 '자연의 악(풀뿌리 귀신)'이 아무리 나빠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해악(마약귀신, 정치 귀신....)'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풀뿌리 귀신보다 더 무섭고 귀찮은 귀신이 많다. 마약귀신과 도박귀신, 정치귀신, 술 귀신, TV귀신, 춤 귀신-, 손목과 발목을 잡고, 정신까지 꼭 잡고 꼼짝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얼마나 많은가. 땅과 접촉하며 많은 시간을 땅과 보낼 수 있게 해 주고, 나만 귀찮게 하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풀뿌리 귀신이 귀신 중에는 괜찮은 귀신이 아닐까.]
이는 미셀 뚜르니에의 <마왕>과 일맥상통합니다. <마왕>의 작은 에피소드를 예로 들면 쎙크리스토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자를 모시길 갈망해, 백방으로 수소문해 가며 강(强)한 자를 찾지만 강한 사람보다 항상 더 강한 사람이 있게 됩니다. 마지막 강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강나루에서 어린 소년을 건네주게 됩니다. 어린 소년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워 혼이 납니다. 건네주고 보니 그는 예수(가장 강한 사람)였고, 따라서 그는 전 인류를 어깨에 멘 것이지요. 그렇게 마왕은 원래 악의 화신이지만 인간의 구원자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도리입니다. 통상적인 우리의 사고방식을 훌쩍 뛰어 넘지요. 자연 법칙은 획일적,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그래서 인위적인 법칙을 반대합니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며 생각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생각이나 언어의 밭에는 제대로 성숙해야 될 사유(思惟)보다 무수한 잡초의 언어들이 더 크게 자라려고 아우성을 친다. 이로움보다 해로운 독을 뿜어 낼 수도 있는 언어의 귀신들이다.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를 다 뽑아내어 맑게 순화시킨다는 것은 풀뿌리 귀신을 송두리째 없애는 것보다 더 어렵다.] 정작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 말이지요. 사유 속에서 올바른, 이로운, 정의로운 사유와 언어만을 고집하고 싶은데 생각대로 되어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인류의 소망이며 염원입니다. 그러나 마음속 잡초 다 뽑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므로 그 대체 작업으로 풀을 뽑습니다.
[지금까지 온갖 일과 얼키고설키며 살아온 날 들 속에 뽑아 내고 싶었던 잡초를 차츰 다듬어 내려고 애쓰며, 힘들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풀을 뽑으면서 살고 있다. 풀뿌리 귀신이 아무리 귀찮게 발목을 잡고 늘어져도 내가 좋아서 택한 일이기에 풀과 함께 하는 작업을 떨쳐버리고 싶지 않다. 이 아침도 풀뿌리 귀신과 싸우려고 작업복을 입고 모자와 장갑을 챙기면서 비 개인 후의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를 맡으며 밭으로 나간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작가는 풀뿌리를 뽑으며 사유의 잡초를 오늘도 뽑는다고 읽어야 올바른 방법일 것입니다. 이 작품 속 중심 사상은 '금도끼를 든 인간'에서 '쇠도끼를 든 인간'으로의 회귀, 또는 향수겠지요. 나무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고 산신령은 쇠도끼는 물론이고 금도끼까지 상을 주어 문제를 일으킵니다. 금도끼를 가진 인간은 자제할 줄 모르고, 밤낮으로 나무를 해 쌓아, 세계대공황으로 인류를 이끌지요. 그래서 인간들이 이 금도끼의 해악이 무엇인지 때 늦게 터득합니다. 금도끼의 원흉은 산업혁명이고 과학문명의 발달이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칼트의 2분법적 사고, 고기토(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정신과 물질의 분리. 뉴턴의 미적분, 갈릴레오, 코페르니크스, 에디슨, 아인쉬타인…….
이렇게 과학문명이 발달하다보니 인간생활이 화려하고 편해진 것도 좋지만, 그 해악도 만만치 않지요. 그래서 그 화풀이가 데칼트, 너 나쁘다. 왜 2분법적 사고냐. 인간사나 자연사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만 돌아만 가냐. 불확정성이 있고, 나비 효과가 있고, 어쩌구저쩌구 하며, 데칼트 때리기에 여념이 없죠. 그 양반입장엔 너무 억울합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절해도 시원찮은 판에 누가 저희들보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해달라고 했나. 그렇게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내 세운 게 하이데커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