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한사발
김은애 지음 / 문학관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은 윤재천 교수님의 <정 한사발>에 대한 평론의 부제(副題)다. 나는 가급적 교수님의 평론을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평론을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교수님의 안목에 가려, 어느 틈에 나를 잊고, 그래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목은 슬쩍 빌려야겠다(왜냐하면 이만한 제목을 뽑아낼 능력 없음으로). 선배들의 권유가 아니라도 읽고 싶던 책이다. 다시 읽고 싶은 곳은 접는다. 읽다보니 접은 곳이 왜 이리 많으냐. 누군가. 독자는 분노를 읽지 않는다. 독자와의 공감대 형성하기.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새롭게 배워야 한다. 글 쓰기를 다시 배운다.

'인맥 쌓는 일은 점점 높아지고, 학벌 때문에 고통받는 깊이도 점점 깊어간다. 이제 지방은 서울의 인력 하청업체가 되었다. ----중략-----얼마나 지나야 지방대학을 나와도 밥도 먹고, 반찬도 먹고, 후식인 과일까지 먹을 수 있을까. -고질병에서- 이런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때늦게 깨달았으니 어쩔 도리가 없지. 뒤쳐진 나의 아이들을 어쩌면 좋으랴. 이 글을 읽고 모두 일어나 사회개혁을 한대도 때는 늦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고쳐 가야지.

그는 늘 서 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서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 있는 자리에 고마워한다. 기뻐도 서서 기뻐하고, 아파도 서서 아파한다. ---중략---- 하얀 그의 손을 잡아보면, 너무나 매끄럽다. 원숭이도 미끄러질 정도다. 오죽하면 '간지럼 나무'라는 얘기도 굴려올까. 그를 보면 목이 마르다. 아마 그가 물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목 백일홍 중에서- 낭창나창하게 쓰기가 이런 글일까. 사물 - 목 백일홍의 본질 꿰뚫기일까. 깊이 파고들기. 관조를 배워라. 연습을 해야지. 물 흐르듯, 붓 가는 대로 쓰기. 붓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는 말에 강하게 반발했건만, 붓 가는 대로 쓰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목소리에 관한 나의 생각- 글 전체가 독백이다. 독백만으로 수필 한 편을 만든다. 웅변 원고 외듯 외우고 싶은 글이다. 목소리가 따듯해요 - 까미유 - 전화 상담원이 되기까지 과정 - 개성이 강한 여성들 - 양심의 소리 - 갈등 - 불행의 공유 -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 일깨우기 - 따듯한 목소리의 도치. 연과 연이 바뀔 때마다의 유연함을 배운다. 어색하지 않게. 다음에 나올 말을 예측할 수 있도록.

다시 출발선에 섰다. 숨을 길게 내 쉰다. 물론 뛰는 자세에는 왕도가 없다. 혼자 일어서고, 혼자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혼자 달리기 시작한다. 속도에 연연한다. 속도는 살아가는데 있어아니다. 삶도 마찬가지다. ---중략---.숨이 차기는 마찬가지다. 앞서 달리는 이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밤에 달리는 여자 중에서- 참기름을 이야기하면 고소한 냄새가 나게, 색동저고리를 이야기할 땐 물감이 묻어나게, 강물을 이야기할 땐 물살과 깊이가 정강이와 넓적 다리로 느껴지도록. 보아라. 읽는 내가 운동장을 달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가.

주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스펀지다. 가족들이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나무그늘이다. 항상 가족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는 스페어 타이어이다.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척척 들어주는 마술램프. 알라딘 램프이기도 하다. 이런 참한 주부 한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 있다. -부엌에서 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와 딸까지 4대 여인들의 부엌 이야기다. 긍정적인 눈으로 따듯하게 쓴 글이다. 아름다운 글이다. 대개 여자의 슬픔과 좌절, 처절한 시집살이, 애환이나 늘어놓던 수필에서 탈피했다. 얼마나 든든한 글인가. 얼마나 밝은가.

<정 한사발>로 책제목을 정한 까닭이 있다. 눈물이 확 솟구쳐 나오게 하는 글이다. 이런 사건의 소재는 자기 자랑에 급급한 법인데 해탈을 하듯 쉽게 뛰어 넘는다. '여우'에 대한 나의 느낌 - 나는 나보다 똑똑한 여자를 보면 시샘이 나서 곧잘 여우라고 부른다. 물론 당사자 앞에서. 김은애님은 수필도 Vm~처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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