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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내가 나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나의 의지일까?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모든 것이 정말 내 스스로 하는 일일까?
어떨 때는 내 안팎에 나를 지배하는 무언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교회를 다닐 때에 그것은 절대적 신이었고, 공상 과학 만화를 보던 시절에 그것은 외계인이었으며, 조금 자라서는 초인적인 어떤 인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 그럴듯해 보이기도 했는데, 실제로 나의 결정은 거의 대부분 사회적인 압박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은 이 지점에 와서 오히려 역으로 내 안에 숨어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의한 것이 되었다.
그동안 다위니즘은 이미 한 세기 전에 수 많은 오류들이 증명된 실패한 이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신다위니즘의 관점에서 자연과 생물을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더구나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는 유전자(그것이 실제 유전자이든 아니든)를 실어나르는 하나의 생존기계라는 그의 생각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기는 하다.
그리고 내가 또 얼마나 편협하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복잡성은 단순한 패턴에서 비롯된다는 그간의 물리학적 설명을 생물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으니, 어느 정도 최근의 과학적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설명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과학적 설명이 그렇듯이 이 책도 매우 단순한 하나의 논리로 복잡한 동물의 생태를 포착한다.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명쾌해서 오히려 쉽사리 인정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유전자는 목적이 없다. 의도도 없다. 단지 생존할 뿐이다. 목적 없는 생존이 목적과 의도를 갖게 되는 이유는 결과에 있다. 목적과 의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결과와 해석에 따라 목적이 부여될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내 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내 몸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수 많은 다양한 세포군들의 집합일 뿐이고 그러한 세포군들은 단지 기생하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지 못했던, 그리고 차마 생각할 생각조차 못했던 수 많은 (혹은 감히 접근하지 못했던 생각들) 생각들을 하게 해 주었으니, 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식상한 어구의 진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책이었다.
하지만, 결국 목적과 의도가 있기 위해서는 '인간'이어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