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물거품 안전가옥 쇼-트 8
김청귤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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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 영원이란 건 없지만, 그들이 하는 사랑의 모양이 영원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서로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생은 전생과 같지 않고 변주되었지만, 둘 중 하나라도 사랑하는 마음만은 놓지 않았기에, 자주 재가 되고 물거품이 되어도 둘은 또다시 사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실패하는 사랑도 사랑이라고 확신하며 어떻게든 영원으로 끌고 가려는 힘.

지금의 선택이 나를 재로, 물거품으로 만든다 할지라도 그게 너를 사랑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뛰어드는 무모함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둘은 사랑의 실패를 반복하며 좀 더 넓어진다. 나만의 행복을 몰래 빌던 무녀는 너와 세계의 행복을 빌며 희생할 줄 아는 마녀가 되었고, 나만의 바다에서 홀로 살던 인어는 세계를 위해 바다에게 기도할 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영원한 사랑이란, 고립된 사랑이 아니라, 우리 둘의 사랑이 세계를 향한 사랑으로 확장되는 것이라고, 스스로의 본질을 지키며 세계에서 해야 할 일을 하며 서로를 보듬는 것이라고 일러주는 것만 같다.

‘무녀’이자 ‘성녀(Mary; 마리, 마리아)’로 신성시되면서 동시에 ‘마녀’ 취급을 받는 인물 설정. 엎드려 울던 ‘무’녀가 하늘에 한이 맺혀 ‘마’녀로 변하는 클리셰 같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이중성의 이야기들에 여전히 끌린다.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목숨을 걸고 목숨을 살리는 사랑을 하는 인어의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인간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디선가는 익명의 여성들이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둘의 반복되는 생애를 같이 따라가며, ‘무엇이 사랑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첫 번째 생. 서로를 구원한 사람들끼리, 누구도 불러주지 않던 이름을 불러준 사람과, 이름조차 없던 이에게 이름을 선물한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인가 봐.

두 번째 생. 우리는 무엇으로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걸까. 한때의 강렬했던 이미지로 영원을 사랑할 수 있는가? 내가 너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것들이 모두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할 수 있는가? ‘프리저브드 수국’ 다발을 안고 ‘영원히’ 사랑의 감정에 취해 있는 것만 같은 형태의 사랑을 어떻게 영원이라,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너에게 영원한 사랑을 알려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어딘지 맹목적이고 맹신적인 마음, 네가 보여주는 사랑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마음. 그런 마음의 교환은 한쪽을 죽게 한다. 욕심과 구분할 수 없는 사랑은 나 때문에 괴물로 변해가는 상대를 어디까지 감당하게 하는가.

세 번째 생. 불안과 애틋함도 사랑일까? 세상으로부터 하얀 담을 쌓고 그 안에 예쁜 꽃을 심어둔다고 해도, 구속은 사랑이 될 수 없다. 세상을 향한 참을 수 없는 절망과 분노도 역시 사랑을 죽인다. 그것은 사람을 불태우고 물거품이 되어 연기로 사라지게 한다.

네 번째 생. 파도에 실어 보내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아서, 기어코 서로의 기억 속에 사랑이 남아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섬과 섬사람들을 사랑해서 태어난’ 인어는, ‘섬과 섬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해서’, 그러니까 스스로를 잃어서 영원의 사랑을 잃었다. 결국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랑은 죽어버리는 걸까. ‘사람’에 대한 사랑에 빠져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놓지 말라는 걸까. 자신을 잃지 않고, 세계를 향해 확장하는 사랑이 필요함을 넌지시 느낀다.

그렇게 다섯 번째 순환한 생에서는 부디 좀 더 영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사랑하길 바라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사랑하기를 성공하는 생의 여정을, 잘 사랑하는 법을, 쉽게 죽어버리는 사랑을 영원의 형태로 유지하는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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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13 0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강한 울림이 있는 내용이네요. 가볍기만 할 수 있는 사랑의 개념을 이렇게 장엄하게 만들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