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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소실점을 향해 민음의 시 271
양안다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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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필름을 마구 찢어서 아무렇게나 다시 이어 붙인 후에 영사기에 넣고 재생하는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랬더니 그건 더 이상 편집된 영화가 아니라 눅눅한 현실이 됐다.


하나의 시 안에서도 시와 시 사이에서도 이어지는 이야기

시집 전체는 하나의 영화 같다. 겹치는 대사와 장면과 이미지.
대체 책장을 몇 번이나 앞뒤로 넘기며 시와 시 사이를 이동하며 감상했나.
그러면서 대체 몇 번이나 피가 아닌 액체를 흘렸나.

생각만으로도 슬퍼서 마음이 망가지고
평생을 걸고 가장 절절하게 애틋하며
혼자 떠나버려 다신 볼 수 없는 사랑에게
딱 한 권의 시집을 전할 수 있다면.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쏟아지는 시간에만 이 시집을 펼칠 수 있었다.
몇 번이고 비명을 지르며 읽었다.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솔직하게 절망하고 슬플 수 있었다. 맹세코 이렇게나 마음에서 탄 냄새가 날 수 있었는지 몰랐다.

이런 게 마음이라면

네가 보고 싶어
나는 너와 함께 무너지기로 선택할게
너를 내려 당기는 중력의 영향권으로 함께 들어갈게

이게 나의 애도법이야

우연하게 시작됐다가 결국 무너져 잔해가 된 우리의 마음을 끌어안고 파수하는 게 내 운명이든
운명적으로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던 우리 마음의 최후를 뒤에서 끌어안고 함께 떨어지는 게 우연이든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

과거와 미래가 뒤엉키며 네 모습이 되어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것을 나는 그저 바라볼 뿐.
저기 봐, 슬프게도 숲이 타오르며 울고 있어
안타깝게도 우리는 같은 꿈을 꿀 수 없어서 외롭고
불행히도 동시에 죽을 수 없어 혼자 춤을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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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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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과 횡으로 촘촘히 얽힌 그녀들의 삶과 한이 질기고 튼튼한 그물이 되어 서로를 추락으로부터 구해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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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과 연애 말들의 흐름 5
유진목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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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완벽히 홀로 사유하며 다시 태어나는 시간. 다른 인간이 침범하지 않고 내가 발을 움직이는 대로 조종되는 시간. 나를 압도하는 감정을 압도하고, 자아를 제압하고, 몸을 정화하는 시간. 그렇게 깨끗해진 몸에 새로운 감정을 담는 시간.  

이 책이 산책하는 일에 대한 상술 없이도 <산책과 연애>라는 제목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 산책의 속성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때 '연애'는 한자 '戀愛'를 쓰는 게 아니라 '憐愛'를 써서 '불쌍하게 여겨 사랑함'의 의미가 아닐까.

책의 두 챕터인 인간과 자연에 대해 '산책하고' '연애하는' 글이 가득 담겨있다.

"자연을 생각하면 슬프고 인간을 생각하면 어둡다. 나는 슬프고 어둡다." (pp. 116-117)

자연과 인간을 연애하며 축축한 회색이 된 사람이
산책이라는 사유를 통해 얻은 상념들을 무질서하게 혹은 질서 있게 적은 이야기.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지나치게 예민해서 비천해진 사람의 이야기.


1장, 인간> "이것 참. 또 (사랑) 시작이네." (p. 63)

하필 인간을 연애할 줄 알았기 때문에 인간을 싫어하게 된 사람이 여기 있었다.
인간에 대해 사유하며, 스스로가 최대한 인간이기를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고찰.

어떤 이는 생애 동안 몇몇 사람과 연애를 경험하겠으나, 그 중 가장 사랑한 사람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가장 혐오했던 것 또한 자기 자신일지도.
사랑과 혐오의 감정 모두 연애 안에 속하므로 두 문장은 상충하지 않는다.

사랑이 약점인 세상에서 기꺼이 약해지기로 선택할 수 있다니. 
그또한 최대한 인간이기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일 수도 있겠다.

사랑이 천성이고 습관인 나와 너를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끝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한 나를 위해.
사랑할 수 없지만 동시에 사랑을 꿈꾸고, 가져본 적 없는 온기를 그리워하는 불쌍한 너를 위해.


"자기모순을 발견하지 못한 자기는 서서히 혹은 빠르게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 나는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p. 56)

"사람과의 좋은 순간은 늘 그리운 것이었다. 살면서 가져본 적 없는 순간인데 그랬다." (p. 58)

"싫은 일을 쓰는 것은 싫은 일이다. 싫은 일을 읽는 것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사는 일은 싫은 일 없이 살아지지 않는다. 싫은 일은 흔하고 좋은 일은 드물다. 하지만 사는 일은 좋은 일 없이 살아진다." (p. 60)

"사랑하는 사람은 너무 많이 반성한다 ... 감미롭고 어리석은 나. 어쩌다 다른 모든 것에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어리둥절한 나. 책 때문일까?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어째서 나는 사랑하며 살라고 말하는 작가들에게 감응했지?" (p. 64)

 

2장, 자연> "나는 그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살아왔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을 알지 못했다." (p. 89)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자연을 연애하면서 발생한 깊은 사유의 글들.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그것을 고대하는, 갖고 싶어 하는. 말 그대로 죽음을 '연애'하는 사람도 있다.

사랑을 하면서도 죽음을 바랄 수 있다. 사랑하는 것이 있어도 죽음을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깨달았던 한 문장이다.

물론 작가는 제발 좀 그만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깨달은 것을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관객이니까. (p. 96)


"그런데 사람은 두고 죽어도 되나?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사랑하는데 왜 죽어? 이렇게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p. 95)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삶이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야." (p. 103)

"어떤 순수는 인간을 죽인다. 그리고 어떤 순진함은 인간성을 훼손한다.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날씨보다 순진함에 훼손된 인간이 나는 더 무섭다." (p. 110)

내가 했던 모든 연애는 나를 혼자서 걷게 했다 ... 정신없이 걷다 보면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분 같은 걸 신경 쓸 여력이 없다. 격렬한 산책은 기분을 압도한다. 격렬한 산책은 인간을 제압한다. 격렬한 산책은 몸을 정화한다. 정화된 몸에는 다른 감정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면 새로운 감정에 따라 걸음이 바뀐다 ... 사유하는 인간은 걷지 않고도 산책할 수 있다 ... 여기에 있으면서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여야 한다. 깨끗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인간이 침범하지 않는. 나 혼자인 상태. - P70

자연을 생각하면 슬프고 인간을 생각하면 어둡다. 나는 슬프고 어둡다. - P116

자기모순을 발견하지 못한 자기는 서서히 혹은 빠르게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 나는 무슨 수를 써도 나를 사랑할 수 없었다. - P56

사람과의 좋은 순간은 늘 그리운 것이었다. 살면서 가져본 적 없는 순간인데 그랬다. - P58

싫은 일을 쓰는 것은 싫은 일이다. 싫은 일을 읽는 것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사는 일은 싫은 일 없이 살아지지 않는다. 싫은 일은 흔하고 좋은 일은 드물다. 하지만 사는 일은 좋은 일 없이 살아진다. - P60

감미롭고 어리석은 나. 어쩌다 다른 모든 것에 실패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어리둥절한 나. 책 때문일까?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어째서 나는 사랑하며 살라고 말하는 작가들에게 감응했지? - P64

나는 그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살아왔다. 그것 말고 다른 것을 알지 못했다. - P89

그런데 사람은 두고 죽어도 되나?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사랑하는데 왜 죽어? 이렇게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 P95

어떤 순수는 인간을 죽인다. 그리고 어떤 순진함은 인간성을 훼손한다.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날씨보다 순진함에 훼손된 인간이 나는 더 무섭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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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 쿠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42
이혜미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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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서 도려내져서 동그랗고 커다란, 상처 자체가 된 반죽들은

상처로서 아름다워지기 위해 뜨거운 열기 속을 견딜 각오를 안고 낯선 생을 한 번 더 살아내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상처들은 쿠키라는 이름의 흉터로 굳는다.

자신의 한 뭉텅이를 상실한 남겨진 반죽 잔해들은 차마 쿠키라고 불리지도 못하고 덩그러니.

그들도 쿠키라고 불러주고 싶어지고 만다. (흉터 쿠키인용, 스크래치인용)

 

상실과 상처와 불완전한 회복을 노래하는 시집.

그 모든 과정을 가만히 지켜봐주는 따스한 시선을 포착한 문장들.

 

시인은 다정하게 슬퍼하는 관찰자이자 증인이다.

 

계속 얼음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녹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녹아가며 그들의 마음의 겉면에서 흐르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맑고 슬픈 액체를 그저 지긋이 바라본다. (원테이크인용)

스스로도 역시 납작해져야지, 조금씩 흩어지다 흔적으로만 남아야지다짐하며, 조용히 우리를 슬퍼한다. (침대에서 후렌치파이인용)

 

참았던 오열을 쏟아내는 여름 꽃의 목격자가 될 만큼 섬세한 눈빛을 보낸다.

각자의 기울어짐을 볼 줄 알아서 비슷한 각도로 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소망하며 무너지는 사람들의 세계와 기꺼이 같아지려 한다. (인용)

 

순간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내가 너를 계속 보았노라 위로한다.

여린 식물의 개화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도 말을 건넨다.

우리 본 적 없지만 기꺼이 너그러이 마음을 내어줄게 자기야 작약이 세계를 찢으며 터져 나오는 순간이야 하나의 장면이 태어나고 마는 기쁨으로 그러니 스스로의 무게에 놀라 고개를 떨구더라도 아름답기를 포기하지 말자 이른 낮잠처럼 자장자장 다독이며 사라지려는 꿈을 애써 덧대며 마음을 멈추지 말자 꼭 쥔 주먹을 조금씩 펼쳐내는 힘으로 휘몰아치는 작약에게 속삭이지 네가 나였으면 좋겠어 저기에서 자기까지 단숨에 피어나도록” (하필이면 여름)

 

시인의 눈에는 안쓰럽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가장 차가운 것도 기꺼이 어루만지며 뭉쳐있는 슬픔들을 발견한다.

사랑을 하기 때문이다.

눈사람은 점점 더 뚱뚱해지지. 무뎌진 생각을 뭉쳐 만든 소용돌이의 힘으로, 세상 흰 슬픔들을 다 먹어치운 육체로 ...... 몰려온 빛의 무리들을 그러모았다. 빌려온 체온에는 되새길 시간이 필요하니까.” (ㅇㅇ)

 

시인이야말로 뭘 잃어버렸니? 물어오는 다정한 언니이다. (스파클 다이브인용)

그래서 가장 기초에 깔려 있던 단어와 형태소와 낱말 사이를 샅샅이 살핀다. 그 사이에 숨어있던 튼튼한 재료들을 그러모아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런 재료들이 있노라고. 이런 것으로 너의 마음을 지켜주겠다고. “감정에도 거처를 지어주려 한다. (인용)

 

늦겨울에 심장을 꺼낸 동백을 가엾이 보며 꽃이 피었다고 편지를 쓰다가도

동백꽃이 나무를 찢고 태어나 피 흘리는 걸 발견하고 꽃은 피였다고 알아챈다. (동백 독백인용)

웃음과 울음을 계이름 삼아 곡하는 인간의 눈물을 곡이라고 부르며 음악을 지어준다. (슈슈인용)

사랑과 사라짐 사이의 가까운 거리 탓에 끝나지 않는 애도를 이해해준다. (비문 사이로인용)

 

시인은 작은 지붕과 굴뚝처럼 생긴 글자인 로 영혼의 집을 지어줬다.

환하게 비추는 조명으로부터 조금 빗겨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또 다른 들에게.

(흰 페이지를 열고 무대 위로 나아가인용)

 

나는 이렇게 다정한 건축가를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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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리커버)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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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만든 ‘판타지 가족물’이 너무 살아 있어서 놀랍다. 그 이야기 안에서 자꾸만 내가 보인다. 작가의 ‘안 흔한 사랑 얘기’도 너무 매력적이다. 너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썼지만 어쩔 수 없다.

비현실 속에서 생생한 현실을 보게 하다니.


_초대

짧은 글 속 오브제의 반복과 이미지의 중첩이 환상적이었다. 어렵지 않은 비유와 선명한 감각 묘사가 매력적이던 글.

평생 동안 목에 걸려 있는 가시. 이물감의 반복. 끊임없이, 잔잔히 나를 괴롭히는 것. 분명히 아픈데, 애매하게 아프다 해도 그건 분명 존재해서 나를 건드렸는데. 그런데 모두가 그런 가시는 없다고만 했다. 없는 것 때문에 아파하는 바보가 된 줄로 알았는데. 다들 없다던 그 가시를 뽑아내는 순간, 무엇인들 하지 못하리. 그 시원한 숨을 들이킬 수 있다는데. 가시를 집어 빼낼 때의 비릿한 향기쯤이야.

_습지의 사랑

외롭고 괴롭히는 것만 알던, 죽은 것들에 둘러싸여 마음도 생각도 죽은 듯 지내던 그 ‘물’은 갑자기 나타난 ‘산’, 그 애의 인사에 당황한다.

물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일을 망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마음이 웅성거렸다. 자주 초조해졌다. 기다리는 것이 생겼다. 산의 진짜 이름이 궁금했다. 다른 것을 보아도 산의 얼굴이 보였다. 한 번의 인사를 위해 백 번을 연습했다. 그 애가 만들어 준 자신의 이름이, 그 애가 불러주는 이름이 마음에 꼭 들었다. 산이 하는 일을 돕고 싶었다. 그 애가 지친 것이, 희미해지는 것이 보였다. 자꾸 자신의 무언가를 산에게 주고 싶었다. 그 애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으나 자신에게는 줄 것이 없다는 게 슬펐다. 가까이 가고 싶다. 닿고 싶다. 하나로 흐르고 싶다. 범람만을 기다렸다. 나도 너에게 갈 수 있는 날만을 바랐다.

아, 너무도 푸르고 어린 마음.
눅눅한 물이 산을 향해 품은 산뜻한 마음.
비가 쏟아지면 기어코 맞닿아 이뤄지는 습지의 사랑.

_칵테일, 러브, 좀비

아빠가 진짜 쓰레기 같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밉기는 정말 미웠고, 종종 사고를 쳤고, 자기 역할을 잘 해내지는 못했으며, 가족과의 믿음을 저버리기도 하면서 내 삶을 잔잔히도 괴롭히던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좀비가 될 정도는 아니었는데. 평생 힘껏 뭔가를 누르면서 살던 엄마는 끝까지 몸에 힘을 풀지도 못하네. 잘 때도 이를 앙다물고 살았구나. 아빠 때문에.

그런데도 당신과의 끝을 내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질질 끌수록 모양은 더 추해질 텐데. 당신이 내게 남긴 구질구질한 마지막 흔적 때문에 나도 괴물이 되고 있는데, 그런데도, 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았어요, 사랑을 다 소진하지 못해서 쉽게 끝을 내지 못합니다.
당신은 겨우 완전히 시체가 되고서야 다 끝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끝을 내지 못한 한 사람.
“아니, 아직 안 끝났다. 네가 살아야 끝나.” (p.105)

이게 지금 책 얘기인지, 내 얘기인지.

_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악마는 돌고 돕니다. 우리는 돌고 도는 비극 속에서 끝내 이렇게 되고야 말았네요.
나는 당신의 눈동자가 죽어버린 걸 보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을 과거에만 살게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당신이 이 꼴이 나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이렇게 만든 악마를 없애겠습니다.

저 악마를 죽이려 했는데 칼에 맞은 것은 저입니까, 저 악마입니까. 혹은 당신입니까.
당신의 삶을 그렇게 만든 건 저였습니까, 저 이였습니까. 혹은 당신입니까.

이토록 복잡하게 가슴을 꽉 쥐게 만드는 모자 관계는 무엇일까.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비극.
발버둥 칠수록 조여오는 비통한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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