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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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중학교 때 일 것이다. 도덕 시간인지 윤리 시간인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성악설과 성선설에 대해 배웠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착하게 태어나지만 살면서 악해진다는 성선설과 태어날 때는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악설. 적어도 어린 나에게는 이 문제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느 쪽이 먼저인지 모르는 것처럼, 착하게 태어났는지 악하게 태어났는지 모르겠더라. 그때부터 내 주변 사람들을 관찰했고 맨 마지막에는 나에 빗대어 생각했다. 선하기도 악하기도 했다.

파울료 코엘료의 작품을 대체로 좋아한다.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로 시작해서 그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악마와 미스 프랭』을 선물 받았다. 두께에 비해 무게감이 있어 오랫동안 책장에 두었다가 어제 꺼내어 읽었다.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선과 악이다.

어느 날, 금괴를 등에 지고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한 이방인이 도착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인 샹탈에게 자신은 사람들이 선한지 악한지 알고 싶다며 말을 시작한다. 부와 재력을 지닌 그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방인이 오기 전까지 표면적으론 충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 안에 마을 사람이 죽는다면 금괴를 마을 사람들에게 주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마을로 떠나겠다고 말하는 이방인. 마을 사람들과 악마로 비유된 이방인의 심리를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을 모두 볼 수 있다. 종교를 운운하고 돈을 가진 자는 더 많은 돈을 갖고자 욕심을 부리며 선과 악의 선을 넘나든다. 악에 선 마을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선으로 돌아오고 소설은 끝난다.

이 책을 통해 성악선과 성선설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 보인다. 사람은 선과 악이 공존한다. 단지 우리는 그 사이를 오고가며 마지막엔 ‘선택’할 뿐인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늙은 베르타가 베스코스르르 떠나는 샹탈에게 한 마디 던진다. “삶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지. 모든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 달려 있어.”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은 선을 택할 것인지 악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하루 만에 읽은 소설, 역시 파울료 코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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