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가게 - 제1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53
이나영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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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함께 공유해 읽어도 좋을만큼 깊은 사고를 유도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누구에게 읽혀도 단순한 사고에서 그칠 수밖에 없는 아쉬운 작품도 있다. 최근 한국 문단을 향해 있는 날 선 비판 중 하나는 '문학에 서사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한국 소설뿐 아니라 한국 아동문학에도 두루 해당된다는 점에서 서사 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서사(Narrative)란 하나의 사건이나 일련의 사건들을 표현해 낸 것으로 단일한 에피소드 형식을 취하는 이야기(Story)와는 다른 구조를 갖는다. 이야기와 이야기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하나의 인과관계를 형성해 구조적으로 결합할 때 나름대로의 굴곡을 가진 서사구조가 탄생된다. 다시말해 공통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하나 둘씩 모여든 에피소드의 이유 있는 나열이 서사 구조를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의 부족, 서사의 부재는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이는 문제의식을 다루는 작가의 태도에 있다. 작가 자신이 중요하다 여기는 문제의식을 한 가운데에 놓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가지를 치며 펼쳐 나가는 식의 글쓰기 태도가 서사 부족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에피소드를 나열한다고 서사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공통된 문제를 떠안은 에피소드들이 그럴듯한 이유를 공유하며 긴밀하게 연결되었을 때, 그 중 하나의 문제라도 생략되거나 다른 것으로 변경되면 인과가 성립되지 않는 유기적인 관계가 되었을 때 에피소드들의 묶음은 서사구조 중 한 단계를 획득한다. 에피소드들의 유기적 묶음이 서사의 구조를 이루고, 다양한 서사의 단위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때 독자는 단일해 보이는 서사적 흐름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가지를 치며 뻗어 나가는 단일한 에피소드들을 하나로 엮어내지 못하는 미완의 글쓰기는 독자로 하여금 '불완전하다', '서사가 없다', '서사가 부족하다'는 불평을 쏟아내게 만든다.

실감하지 못해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은 이나영 작가의 『시간 가게』를 만난 이후다.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거래할 수 있는 가게를 들이밀었던 작가는 눈에 보이는 뻔한 에피소드를 단순하게 나열하며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시간을 살 수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의 집합은 작가가 나름대로 제시한 문제의식과 제대로 결부되지 못한 채 각자의 가지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가지는 뻔함과 단순함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해 가능의 범주 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다양하게 응용하고자 하는 상상적 욕구를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를 더하거나 빼도 이상하지 않은 에피소드의 집합에 있다. 문학이 유기체적인 상태를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 단일한 서사의 흐름이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 『시간 가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겠다.






시간을 거래할 수 있다는 것


작가는 시간을 살 수 있는 상점을 에피소드의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적 상황에 해답을 제시한다. 일종의 판타지 소재를 끌어와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환상적인 힘에 의존해 해결해 보자, 는 태도인데 충분히 재치 있게 해결해 낼 수 있는 문제를 피상적이고 표면적으로 접근해 해결했다는 점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10분을 사기 위해 거리낌 없이 온전한 행복이 느껴지는 기억을 팔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내 몸이 기억하는 행복, 머리로 느껴지는 행복이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행복을 팔아야만 10분의 시간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고작 10분을 사기 위해 행복한 기억을 파는 게 합당한 거래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시간을 파는 상점』에서는 시간이 부족해 남의 손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금전적 대가를 받고 의뢰 받은 일을 대신한다. 구체적인 금액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위험부담이 큰 일인 경우 받아야 하는 대가도 비례한다. 하지만 『시간 가게』에서는 거래 가능한 시간은 하루 한 번, 10분에 고정되어 있을 뿐이며 거래 가능한 대가 역시 행복한 기억에 고정되어 있다.

윤아는 온전하지 않은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고 10분을 사려다 실패한다. 재방문한 시간 가게에서 "앞으로 시간을 사려면 행복한 기억을 2개 떠올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거래에 응한다. 부당한 거래다. 기억 1개에 10분을 취하는 것이 합당한 거래라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기억 2개에 10분은 균형이 맞지 않는다. 하루 한 번, 이라는 제한적 거래가 하루 두 번으로 풀리는 것도 아니며 10분의 시간이 15분이나 20분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지 않나. 부당한 거래에 응하면서도 우리의 주인공은 한 번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을 빌어 작가가 말한 것처럼 '다시 시간을 거래할 수만 있다면 행복한 기억 두 개를 파는 것 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식의 합리화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닌데 작가는 꽤 여러 번에 걸쳐 비슷한 방식으로 합리화를 주장한다. 윤아가 공부를 싫어하면서도 강박적으로 좋은 성적을 받으려 노력하는 것은 '좋은 성적을 받아오면 엄마가 행복해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 하고, 엄친아 영훈을 싫어하는 것은 '이유 없이 너스레를 떨기 때문'이라고 합리화 하며, 윤아가 수영이네 패거리와 가까워 질 수 없는 것은 '공부만 잘하지 아무 매력도 없는 아이인 윤아를 싫어하는 미영 때문'이라고 합리화 한다. 허나 이런 것들은 참 된 이유가 되지 못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냥"이라는 범주에 숨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지라도 문학에서는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합리화가 대답이 되서는 안 된다. 구체적이고 설득 가능한 대답이 아니면 개연성이 충분한 사건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Why?


결국 중요한 문제는 "왜 그래야만 했느냐?"하는 질문 뒤에 이어지는 답이 설득력을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문학은 "왜?"라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창작자의 입장에서 풀리지 않은 질문을 그냥 넘어가는 것은 작품의 단점을 남겨 놓는 일과 마찬가지이며, 독자의 입장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을 그냥 넘기는 것은 해결 불가능하거나 이해 불가능한 문제를 무시한 채 다음 질문을 받아 들이는 것과 같다. 질문의 제시와 합당한 답변의 등장은 필연적이되 설득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동시에 이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시간 가게』는 다양한 질문이 제시될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합당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 수는 있지만 그 답변 모두가 설득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그렇다, 고 대답하기 어렵다.

1.윤아 엄마는 왜 윤아에게 1등만을 요구하는가?
2.윤아는 왜 엄마의 '행복'에만 집중하는가?
3.윤아는 왜 영훈을 껄끄러운 존재로 받아 들이는가?
4.윤아는 왜 돈의 가치를 기억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가?
5.윤아는 왜 엄마의 요구에 한 번도 반항하지 못하는가?
6.왜 하필 시간을 사야만 했는가?
7.왜 시간 가게 할아버지는 시간 거래에 필요한 거래물로 행복한 기억을 요구했는가?
8.거래 가능한 기억 중 온전한 행복을 담은 기억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9.시간 가게 할아버지의 눈이 초승달 모양에서 보름달 보양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10.윤아가 시간 가게를 방문하며 본질적으로 획득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엇을까?

등등 『시간 가게』를 읽고 던질 수 있는 질문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변 가능한 상황이나 에피소드들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부재해 있는 상황에서 윤아 엄마가 느낀 경제적인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결심한 직업적 선택, 직업적 특성이 자녀의 육아에 반영됨으로써 빚어지는 상황의 아이러니함과 자녀가 느낄 수 있는 소외감과 외로움의 상관관계 등은 제법 설득 가능해 보이면서도 허술한 면을 드러낸다. 작가는 보편적인 사회문제를 끌어와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있지만 윤아네와 비슷한 꼴을 갖추는 가족집단이 모두 같은 문제를 겪고 있지 않다는 점이나,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듯하다. 윤아는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행복하지."라고 답하는 엄마의 대답에 의존해 '엄마가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데 그런 삶을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와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시간 가게』의 커다란 맹점이다.


헬리콥터맘들을 향한 화살


아동문학이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함께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아동문학 이론들이 아동문학을 "아동이나 동심을 가진 아동다운 성인에게 읽히기 위해 쓴 모든 저작"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문학적 대상이 되는 어린이를 현실의 어린이로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동심을 다만 어린이의 마음으로만 보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결국 동심이란 현실의 어린이를 포함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1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나영의 『시간 가게』는 어른들을 향한 화살은 될 수 있어도 아이들을 향한 화살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좋은 학교를 졸업한 이력이나 성적이 세상을 사는 가장 가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과도하게 커버하는 헬리콥터맘들에게 『시간 가게』는 제법 날카로운 촉을 지닌 화살이 될 수는 있겠다. 에피소드 별로 녹아 있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 '초인종을 쓸모 없는 물건으로 만들지 말아주세요.', '아이들에게 공부가 제일이라고 주장하지 마세요', '밥이라도 한 끼 함께 먹어주세요.' 등등의 메시지들은 엄마들에게 비수처럼 날아가 꽂힐 것이다. 허나 입시 경쟁에 내몰려 독립된 자기 결정권이나 자기 시간을 향유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윤아의 이야기가 큰 공감을 불러 일으키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윤아보다 더 한 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아이들도 있을 거고, 윤아와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을 것이며, 윤아와 같은 생활이 왜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해가 불가능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보편적으로 수용 불가능한 윤아의 에피소드들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충돌하다 그대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저 소비되는 것이다.



되묻고 싶은 것


이나영 작가가 독자들을 향해 질문하고자 했던 것은 단 한 가지다. "너희들은 행복하니?" 이 한 마디의 질문을 위해 소비된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서 아쉽다. 에피소드들마다 인물의 입을 빌어 직접적으로 발화된 행복의 의미나 행복 유무에 대한 질문이 작품 전체에 반복되고 있는 점도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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