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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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없이 간결할 수 있는 문장들이 좋았다. 질척거리거나 끈적거리지 않고 간결하게 마침표를 찍어낼 수 있는 문장들 사이의 짧은 호흡이나, 문단에서 문단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숨을 고르게 내쉬고 들이마실 수 있는 잠깐의 여유 같은 것들이 좋았다. 애자가 애자인 이유, 소라가 미나리의 뜻을 담게 된 이유, 나나가 나나를 나나라 칭하는 이유와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않고 소라라고 부르게 된 이유, 나기가 너에게 집착하는 이유와 소라와 나나의 곁에 꾸준히 머무는 이유 같은 것들이 각자의 언어와 느낌, 시선을 통해 담백하게 그려지고 있다. 인물들은 본인에게 맞는 어투와 뉘앙스를 구사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자신들의 곁에 독자가 있다고 의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증명하고 진술하듯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쪽은 나나다. 이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작가만이 알고 있다. 작가는 인물들에게 본인의 목소리를 선물한다. 본인의 말투, 본인의 느낌, 본인의 이야기를 선물해주었다. 책의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문체의 느낌은 하나로 유지하면서도 인물 개개의 어투와 톤은 달리 설정한 뒤 어색하지 않게 구사해냈다. 해내기 힘든 일이라 뭉뚱그리며 넘어가려 하는 대신 어렵더라도 눈앞에 문제를 놓고 직시한 채 함께 나아간 느낌이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각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장 주축이 되는 것은 애자와 그녀의 딸들(소라와 나나)이 발화하는 모든 이야기들이다.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나나의 이야기로 '애자와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고 되뇌고 고민하며 질문하는 인물이다. 나나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애써가며 애둘러 표현하는 쪽도 아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며 말할 때, 자신만이 자신의 이름을 오롯이 불러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일 때 나나는 나나다움을 인증한다. 정확히는 애자처럼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예비엄마의 마음 같은 것.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그 상태에서 자녀를 낳고, 헌신적으로 애정을 쏟으며 자녀를 부양하는 것이 엄마로써의 도리이며 책임이라고 말한다면 나나는 그렇게 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나만의 방식과 사랑으로 자녀를 보살필 수는 있겠지만 소라와 나나를 길러준 애자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언어와 태도로 자식을 길러내지는 못할 것이다. 나나는 선천적 모성애가 부재할지도 모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성애의 부재가 그리 기괴한 문제가 아님에도 뾰족하게 다가오는 것은 '여자라면 누구나 모성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세상의 시선과 강압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나의 고민과 생활은 여성 독자인 내게 더욱 날카롭고 선연하게 다가온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여성적인 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성 작가가 전형적이지 않은 여성상의 인물을 내세워 여성적 어조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기 때문이다. 여성의 문제를 여성의 시선으로 힘들이지 않고 말 하는 것, 피해자인 척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힘없는 나약한 대상인 척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사람이자 여성이며 고민을 가진 주체로 대하며 이야기하는 그 과정과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모성애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며, 아기를 가졌다고 해서 생기는 후천적인 것도 아니며, 열달을 품어 세상 밖으로 내보낸 자신의 자식을 눈으로 확인한 다음 자식의 어여쁨을 지켜보며 생겨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해주고 싶다. 모성애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발생되거나 만들어지는 감정 혹은 요인같은 것도 아니며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나 필수 성격 같은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나나의 고민은 '엄마가 될 수 있는 모든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고민이라는 점에 있어 가치가 높다. 타고나지 않은 모성애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헌신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질문하는 인물로서의 나나는 모든 여성이 의심해 볼 수 있는 사안을 대신 고민해주는 행자이자,'모성애는 생겨나는 것'이라 말하는 뭇 남성들에게 내면의 고민과 여성적 다양성을 발화해주는 대상적 화자이다.


여자라고 모두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야, 라는 고백과 함께 잘 키워보려 애쓰는 거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는 거야, 말하는 목소리가 좋았다. 자신들의 처지나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늘어 놓으며 이해해달라고 때쓰거나 강요하지 않고 내 상황은 이렇고 너의 상황은 이러하니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보듬어 줄 수도 있고 부듬어주지 못할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그 덤덤한 태도가 좋았다. 소라는 소라대로 이모가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아이를 싫어하는데, 좋은 엄마가 될 자신도 좋은 이모가 될 자신도 없는데 심지어 그런 준비를 할 시간도 마땅치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응, 나 임신했어."라고 인정해버리는 나나의 태도에 두려워졌을 것이다. 나나는 나나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애자와 같은 엄마가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본인이 잘 아는데 그렇게 헌신적이며 사랑으로 가득 찬 부모가 되어줄 수 없음을 알아버렸는데 남편을 잃은 애자가 사랑을 모두 잃고 껍질만 남은 채 아이들을 가엽게 방치하던 순간에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아는데 기꺼이 부모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 나나의 이야기. 나나가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난 뒤에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이해 받지 못할 거라는 것. "엄마를 애자라고 부르는 거. 그만 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남자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나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며 살게 되어도 시댁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것 같다. 그저 물끄러미, 저 사람들은 자신들을 절대 이해하지도, 이해 할 수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통감하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이해 받지 못할 관계라면 끝내는 게 맞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나나의 선택이 틀린 선택이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소라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거짓으로 좋아한다고 위선을 떨지는 않는다. 나나가 예민한 시선으로 자신의 자매를 평가하고 바라볼 뿐이다. 위선적인, 나약한, 맹랑한 소라.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 원망하고 미워하다가도 연민하고 동정하며 때론 동경한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새로운 이름의 병이 되어 소라와 나나를 잠식하지만 그것은 때론 백신이 되어 그들을 낫게 해준다. 나기도 마찬가지의 존재. 소라와 나나에게 위안을 주고 위안을 받는 존재다.

 
그래, 이 소설은 연약해 보이지만 결코 연약하지 않은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엄마, 라고 소리내어 부를 수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소라 혹은 나나 혹은 애자라고 소리 내어 부를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목소리는 소라-나나-나기 순이지만 그들이 내는 목소리 안에는 애자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때론 강인하고 때론 아름다워보이는 애자라는 인물을 생각하다가 소라와 나나가 말하는 애자 씨의 인생은 애자 씨만의 인생과 동일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애자 씨의 입을 통해 들었던 그들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나나는 담담하게 전한다. 하지만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가 오롯한 애자 씨의 이야기일까, 의심하게 되는 건 인간이 모든 것을 오롯하게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는 것, 어머니라는 가족적 호칭이나 지칭대명사를 버리고 '애자'라 이름하는 것은 자신들이 말하는 대상이 한 사람의 인간이자 하나의 주체, 또는 객체화 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을 '거리두기'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직계 관계를 가진 인물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이름으로 호칭하는 것이 얼마나 예의 없는 행위인지를 따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나나엄마, 소라엄마라고 부르며 대상의 주체성을 무력하게 만들고 존재의 힘을 무시하는 것이 더 폭력적인 행위니 말이다.

이 소설은 여성이 남성적이려 하지 않고 여성적인 목소리를 덤덤한 태도로 내는 소설이다. 여성의 문제를 여성스럽게 보이려 말하지 않는다는 것, 여성스러움에 묻어 가며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의식을 내던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황정은은 특유의 담담한 문체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족의 문제, 한부모 가정의 고민이나 사회적 시선 문제, 이런 형태의 가정이 이상적인 가정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 폭력성에 대해 그저 덤덤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더듬거리며 나아가게 만드는 답답한 소라의 이야기를 견뎌내고 나면 빠르고 냉철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나나를 만날 수 있다. 나나 다음에는 속삭이며 고백하는 나기를, 그 다음에는 또다시 나나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당신들이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들으려 하지 않았거나 듣고도 모른척 외면해 왔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라, 나나, 나기의 입을 빌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모든 여성들이, 그리고 남성들이, 모든 부모들과 자식들이 읽어보면 좋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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