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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이다 - 감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못다한 인생 이야기
김성근 지음 / 다산라이프 / 2011년 12월
평점 :
누군가를 이끌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 그룹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통솔하고 이끌어나갈 위치, 즉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에 맞는 무게와 행동, 통솔력을 갖추고 있는데 다른이를 통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냉철해보이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리더들에게도 겉으로 표현하지만 않았지 저마다 속앓이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해준 것이 바로 전 SK감독 김성근의 자서전인 『김성근이다』다. 한 사람이 아닌 다수의 사람을 통솔하고 이끌어가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힘든 일은 공정한 통솔일 것이다. 목표를 향해 개성있는 개인들을 다독이고 꾸짖기도 하면서 그들을 보듬어 함께 위로 이끌어 올리는 것. 성공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당장에라도 많은 인원을 이끌고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상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통솔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팀원'이 아닌 '리더'의 위치에 서게 되면 그 이름이 주는 중압감과 책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리더란 과연 무엇일까?
신뢰를 보여주는 리더, 신뢰를 받는 리더
리더(Leader)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이나 단체 따위에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리더의 유형은 총 5가지로 나뉘는데 우선 계급으로 억압하고 지배하는 장비형 리더이다. 팀원과의 인간관계를 이용하는 허욕의 리더이며, 리더가 성공하여 인정 받는 성과의 리더, 부하를 양성하여 성공시키는 인재양성형 리더, 성품이 좋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드는 유비형 리더가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훌륭한 리더'라고 부를 수 있는 리더는 과연 어떤 리더일까? 아무래도 인재양성형 리더가 가장 이상적인 리더가 아닐까? 대부분 성공한 CEO들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팀원들의 성과관리를 도와주며 인력을 양성해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기회를 제공했다는 말을 읽을 수 있다. 김성근 감독도 팀원의 능력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재양성형 리더에 속한다.
경쟁의 기본은 공평함이다. 공평함 속에서 이기는 거다. 그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팀의 밸런스도 공평함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이 조직이 흘러가는 힘이다. 안치용이 홈런을 쳤지만, 수비가 나빠서 안 쓸지도 모른다. 조동화나 김강민은 수비가 된다. 선수들의 경쟁 속에서 그때 그때 경기에 맞게 내보낸다. 그러다 보면 선수들도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나아지려고 발버둥을 친다. 나는 선수를 이름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김재현의 컨디션이 나쁘면 안 쓴다. 박재홍도 수비가 약하기 때문에 무조건 쓰거나 하지 않았다.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한순간이라도 소홀하게 야구를 대하거나, 한 번쯤 실수할 수 있다는 마음 자세로 야구를 하는 선수는 다음 번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다. 이전의 결과는 말 그대로 이전일 뿐이다. 현재의 상황 속에서 가장 맞는 사람, 그 사람이 그 순간에는 최고다. 프로 야구는 이겨야 되니까, 이기기 위해서 팀이 모인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박재홍이, 과거의 김재현이 잘했어도 안 쓸 수 있다.
pp. 90~92.
그는 엄격하다. 그만큼 엄했고 외로웠다. 김성근은 외로움의 대표주자였고, 성공한 리더이기도 하다. 그는 항상 선수들을 강하게 키웠다. 훈련도 빡세게 돌렸다. 스스로도 자신의 훈련이 얼마나 빡센지 알고 있을 정도니 말 다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엄격한 규정과 훈련은 선수들에게 독이되긴 커녕 오히려 약이 되었다. 다른 구단에서 뛰지 못할거라 말하던 선수들도 김성근 감독 밑에서 몇 년을 더 뛰며 선수 생활을 했다. 마운드 위에 올라가 신나게 뛰었다. 은퇴 무대에서 선수들이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화려한 막을 내릴 수 있도록 해준 것도 김성근이었다. 그는 선수들과 친하게 지내면 사적인 감정 때문에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외롭게 지내며 선수들을 이끌었지만 그만큼 신뢰가 있었다. 그는 선수들을 믿었고 선수들 역시 자신들의 엄격한 아버지인 김성근 감독을 믿었다. 이들 사이에 높은 신뢰가 있었기에 잦은 풍파 앞에도 끄떡 없었던 것이다.
윗 사람과 아랫 사람 사이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지 않나, 싶다. 리더는 팀원들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개개인의 능력을 파악할 뿐만 아니라 분석 한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켜 팀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계획하고 지시한다. 그 모든 일을 총 감독하는 것이다. 리더에게 요구되는 것은 능력이나 카리스마, 인간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 역시 요구 된다. 자신들의 맡은 팀원들을 믿을 수 있는가? 팀원들이 그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모든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부분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김성근 감독이 리더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신뢰'.
그는 믿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동시에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은퇴한 신윤호 투수와 얽힌 일화다. 150km의 빠른 공을 갖고 있었지만 제구력이 문제였던 신윤호 투수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과는 2011년 LG 감독 시절에 처음 만났는데 1군 감독 대행을 하며 1군으로 불려 2001년 시즌 15승 18세이브로 멋지게 활약했다. 김성근 감독은 신윤호가 타자들에게 난타를 당해도 바꾸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벤치에 들어오면 "너 고개 숙일 필요 없다"고 말하고, 다음 경기에서 또 신윤호를 썼다. 벤치에 앉은 자신의 눈치를 봐도 표정 변화 없이 지켜보며 질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게 전부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신윤호 선수가 변하기 시작했다. 감독의 눈치를 살피는 일이 줄어들면서 매 순간 던지는 공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집중력이 늘자 제구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전까지 신윤호가 실적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빠르고 묵직한 공을 보고 "던지고 싶은 대로 던져라. 아무도 못 친다"라고 말했던 다른 감독들이 막상 경기에서 난타를 당하면 2군으로 내려보냈던 일이 반복되다보니 신윤호 스스로도 자신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김성근 감독은 신윤호를 믿어 주었다. 신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윤호도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기다리는 일 또한 쉽지 않다. 회사생활에서도 믿음과 기다림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직장인 백서나 직장인 멘토링 도서를 읽으면 많이 발견되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시키느니 차라리 내가 하는게 속 편하다'는 이유로 모든 업무를 혼자서 처리한다는 부분이었다. 이런 일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동기나 선후배 사이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인데 이것은 믿음과 기다림에 관련된 문제로 볼 수 있다. 즉,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일을 맡기지 못하는 것이다. 일을 맡겼다 하더라도 잘 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으로 초조함이 생겨 진득하게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일감을 뺏어와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동료와의 관계도 소원해 질 것이고, 스스로는 여가 시간도 반납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만약 당신이 선배라면 후배가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꼴이 된다. 상대를 믿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친구든 부모든, 선생님이든, 팀장이든, 사장이든, 누구든. 아무리 그 상대가 일을 못하더라도 믿고 기다려주어야 한다.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수를 거듭하며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 점을 기억해야 한다.
거북이 같이 살자
김성근 감독은 항상 느리게 살았다.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지만 그는 재능만 믿고 설쳐대기 보다 꾸준히 노력해 실력을 쌓았다. 실력과 재능이 함께하니 그는 더욱 빛을 발했다. 가쓰라 고등학교에 진학해 1학년 때 투수를 맡은 그는 밤 늦도록 강가에 앉아 돌맹이를 던지는 훈련을 했다. 그 당시에는 마땅한 훈련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력을 인정 받은 그는 경기에 설 수 있게 되었다. 타석에 들어서 안타를 칠 수는 있었지만 발이 느려 계속 아웃 되는게 문제였던 그는 내리막길을 달리거나 새벽에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전거를 서서 몰았다. 다리 힘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문제에 부딪히면 항상 극복해내려고 다분히 노력했다. 그는 노력파였다. 빠른 지름길은 아니었지만 느리면서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답안이었다. 그는 거북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거북이처럼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거북이는 뒷걸음질을 하지 못한다. 묵묵히 앞으로만 나아간다. 사람도 일단 결심을 하면 옆을 보거나 윗걸음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렵다고 포기하고, 힘들다고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재주 부리면서 요령 피우는 사람들도 있다. 토끼처럼 사는 사람들이다. 토끼는 어려움이 있을 때 재빠르게 뛰어서 도망가버린다. 거짓말하고, 요령 피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거북이는 다르다. 거북이는 위기를 만나면 머리와 두 손, 두 발을 제 몸 안으로 깊숙이 웅크린다. 사람도 그렇게 해야 한다. 모든 질문을 자신한테 던지면서 가만히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가만히 묵묵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속에 인내도 있고 답도 있다.
p. 199.
그의 말이 맞다. 토끼 같이 살면 순간적인 위험은 넘어갈 수 있을지 몰라도 성장이 없다. 신뢰가 없다. 요령으로 작은 위험은 피해갈 수 있을지 몰라도 큰 위험에 닥치면 결국 꺾여버리고 만다. 실패하고 만다. 하지만 거북이는 다르다.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한다. 당장은 어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신뢰를 받는다. 요령을 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 이겨낸다. 성공한다. 거북이과 같은 삶이 그 사람을 위로 이끌어 올려주는 것이다. 이런 거북이과 같은 삶과 노력하는 삶은 김성근 감독의 어린 시절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늘 최악의 상황을 그린다. 그게 습관이 됐다. 가난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그것에 책임을 져야 했다. 프로 야구 감독이 되면서도 늘 결과로 말하고 책임을 져야 하니까 어떻게든 결과를 내기 위해서 악착같이 해오지 않았나 싶다. 현실이 최악이면 나는 그것보다 최악을 가정한다. 거기서부터 계획을 짠다. 거의 모든 것을 재창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43.
그가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도 어린 시절이 아닌가 싶다. 가난하게 살았던 그의 유년 시절이 그가 움직일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사람들은 항상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 그것을 두려워하느라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질 못한다. 결국 뒤로 물러나기만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일은 점점 늦어만지고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악순환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시작한 사람은 다르다. 그것을 염두해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따라서 실천하기엔 참으로 어렵지만 항상 이 점을 염두해두면 어떠한 위기도 잘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령으로 위기를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근 감독에게 힘든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SK가 화려한 실적을 올리던 시절,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더 이상 SK가 이기는 건 보고 싶지 않다"던 냉담한 반응에 상처 받은 적도 있었고, 감독 자리에서 짤릴 때도 힘들어 했었다. 자신의 판단 미스로 이기던 게임에서 지게 되었을 때는 하루 종일 넋을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그가 바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야구 바보다. 머리 속에 야구 밖에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야구'에 대한 생각에 넘어진 적도 있었다. 운전도 안 한다. 야구 생각을 하면 아무것도 안 보이기 때문에 사고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야구에 대한 생각 뿐이다. 그 점이 무섭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하다. 그 한결 같음이 참 부럽다. 게다가 김성근 감독에게는 참으로 배울 점이 많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배우는게 좋다.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읽고 그것을 내것으로 만드는게 참으로 좋다.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기 때문에 받아 들이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편견이 없는 상태에서 받아 들이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 해당 도서는 다산북스 신간 체험단 활동을 통해 다산북스에서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