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싫어! 푸른숲 작은 나무 15
라셸 코랑블리 글, 쥘리 콜롱베 그림, 이세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책은 가깝게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엔 멀리 느껴지곤 한다. 어느 때는 책상 가득 책을 쌓아 놓고 그 사이에 얼굴을 콕 쳐박고 책을 읽고 싶을 때도 있고, 어느 때는 '닥치는 대로 책을 잡아서 허공이나 벽으로 내던지'(11쪽)고 싶을 정도로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다. 개인에게 있어서 책을 읽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원인과 그 반대의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이는 뇌가 스스로 지적필요성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책이 미치도록 보고 싶을 때도 있고, 반대로 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을 때에는 읽으려해도 읽히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교육을 받는 그 순간부터 책 읽기를 요구 받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의 '요구'라기 보다 '활동'에 가까웠을 것이다. 흔히 엄마들은 자녀들이 어렸을 적에 '밤마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 책 속의 그림도 보여 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읽어 주었'(19쪽)을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교육임과 동시에 아이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며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동일 경험을 교류하는 시간이자 무의식이 확장되어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을 것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혼자 책을 읽으라고' 한다. '말도 없고, 정도 없고, 단어들만 끝없이 나열돼 있는 책을 혼자서 읽으'(19쪽)라고 말이다. 바로 그 순간, 아이들은 책에 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와 반대로 부모들은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며 '교양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19쪽)다는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시끄럽게 내비치기 시작한다. 부모들에게는 당연한 바람이었을 것이고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되어진 방법이었을테지만 사실상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오히려 더욱 나쁜 쪽으로만 영향을 끼쳐 책을 더욱 멀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 독서를 강요하는 부모를 피해 도서관에 모인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모임이 있다.

 




 

사실 여기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도서관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의 모임'을 갖는 것은 모순이다. 비록 부모에 의해 강제로 도서관에 다니게 되었다 하더라도 자신들이 그토록 읽기 싫어하는 책이 가득히 쌓여 있는 공간에 '시합에 뛰어드는 럭비 선수들처럼 머리를 맞대고'(45쪽) 서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의논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밖에 없다. 책을 적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오히려 '도서관의 키 큰 책장들이 요새의 성벽처럼' 아이들을 보호하게 된 것도 아이러니하다.

 

사실 아이들은 책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책이 읽기 싫어졌을 뿐이다. 사무엘은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아이는 책과 원수를 졌다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고 어린 시절 엄마가 책을 읽어 주던 정다운 분위기를 다시금 느끼고 싶어 한다. 유세프는 반에서 1등이고 책도 잘 읽는 아이였지만 부모의 기대감이 나날로 커지면서 독서에 대한 부담과 거부감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잔은 어떤가? 만화책만 읽고 싶은데 엄마가 글이 있는 책을 권하는 것도 모자라 책의 내용을 잘 이해했는지 책을 덮 무섭게 꼬치꼬치 캐묻기까지 한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은 책 읽기를 스스로 놓은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니즈(Needs)와 부모들의 원츠(Wants)가 만나는 지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결국 '책과 원수 진 여덟 명'(46쪽)이 되어 도서관 문을 꼭꼭 닫고, 커튼도 치고 '책들이 무너지고 넘어지면서 항복을 외'(66쪽)칠 때까지 도서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허나 이 난장판 속에서 사무엘은 책의 산을 만들어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간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산 속에서 길을 찾'으며 '이야기들을 헤치고 나갔지만, 그 이야기들을 망가뜨리거나 구기지는 않았'(67쪽)던 이유는 아이 스스로가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그것이 자신에게 끼칠 영향. 책 속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성격과 중요성 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들의 산 속에서 사무엘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며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할'(68쪽) 수 있을 거라고  깨닫는다. 사무엘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본디 가지는 의미를. 이야기는 원래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과 같았고, 지식을 나누어 줌으로써 보다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무엘 자신도 이야기의 산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자신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꾼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께 자신들의 손으로 어지럽혀 놓은 도서관을 정리하는 벌을 받았을 때 사무엘은 '언젠가 저 책들 중에서 한 권을 펼쳐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많은 사서와 선생님이 말해 왔던 '책의 마법'에 걸려 '단어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될 날이 올지도 모'(78쪽)른다고 사무엘은 생각했는데 이는 사무엘이 향후에 책을 읽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엄마들은 뜨끔할 것이다. 지금껏 자기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대했으며 독서 지도를 어떻게 해왔는지 생각해보면 <책 읽기 싫어!>에서 아이들이 말하는 부모들의 모습 중에 자신의 모습이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책을 멀리하게 만드는 일순위는 아이가 책의 내용을 제대로 숙지했는지 되묻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책의 내용이 어떠했는지 말하거나 그림과 같은 것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게 마땅할텐데 굳이 아이에게 '이 책의 내용은 어땠고 너는 뭘 느꼈니?'라고 물었다가 아이가 "다신 책 안 읽을거야!"라고 말하면 엄마들은 할 말이 없는게 당연하다. 책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아이에게 가장 큰 부담을 안겨줄뿐만 아니라 기계적 독서 습관을 들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명창순 독서 치료 전문가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이가 책 읽는 순간을 존중하교, 아이에게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주며, 아이의 책 읽는 모습을 격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서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새 책은 아이에게 가장 든든한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83쪽)라고 말한다. 확실히 이 말이 맞다. 어떤 방식으로 읽으며 어떤 형식으로 된 책을 읽든 아이가 무언가를 읽는 다는 것에 칭찬을 아끼지 말고, 그 순간을 존중한다면 아이는 필시 책을 더욱 가깝게 할 것이다.

 

어떤 아이들은 이 책을 읽고 "우와, 왜 저 생각을 못 했지? 나도 저렇게 해 봐야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따라하면 어쩌면 좋지?"하는 걱정이 앞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동화책, <책 읽기 싫어!>는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동화 속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악동들을 통해 대리 체험을 경험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될 것이다. 대리 체험에서 오는 통쾌함을 통해 아이들은 책 읽기를 더욱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불어 아이들이 스스로 이 책을 집어 들고 펼치는 순간, 결국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책 읽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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