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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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게된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오늘에서야 다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처음 받던 날, 내 손에는 이미 양나연씨의『빠담 빠담, 파리』가 들려있어서 책을 읽고 싶다고 말하던 같은 반 N에게 이 책을 빌려줬었다. 그리고 몇 주. 드디어 내 손에 다시 돌아왔을 때, 푸른숲에서 소포가 배달왔었을 때보다 더 큰 설렘이 내 가슴을 때렸다. 어떤 이야기일까? 책장을 넘길 용기가 나지 않아서 애꿎은 표지만 쓰다듬으며 마음 속으로 이야기를 그려봤다. 오지를 여행하며 긴급구호 활동을 하던 한비야 선생님의 에세이책이니 분명 다른 작가들의 에세이처럼 한없이 여리고 부드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의 가슴을 때리고 내 어깨를 부여잡고 내 머릿속에 속삭이겠지? 책상 서랍에 넣었다가 다시 빼내었다가. 책장을 넘겼다가 다시 덮기를 몇 번. 읽을 준비가 됐다 싶었을 즈음 책 표지를 자신있게 넘겼다.

 

팔랑.

책장 한 장을 넘겼을 때. 나는 종잇장 넘어가는 소리가 무색하도록 책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책을 읽는 내내 '무릎팍도사 한비야편'을 재방송으로 다시 시청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한 그녀의 이야기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더 좋았다. 그녀는 서론에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오지에 대한 여행기도 아니고 긴급구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고. 단지 여행을 마치고 쉬면서 지내는 동안 써온 것이라고.(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서론을 지나 본문을 읽던 나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을 취했다. 바로 책에 밑줄 그어가며 읽기. 이 책이 내 책이라 마음 놓고 밑줄을 그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 학교에서 빌린 책이었다면 아마 물어내야 했었을거다. 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문장에. 핵심에 밑줄을 죽죽 긋기 시작했다. 정말 의외였다. 단 한 번도 책에 밑줄을 그으며 읽은 적이 없던 내가 무의식중에 형광펜을 들고 밑줄을 긋고 있다니! 참 신기한 힘을 지닌 책이구나, 매력있는 작가구나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한비야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다. 중학교 때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을 집어 든 적은 있었지만 그냥 어떤 대학 교사나 되는 사람이 심심해서 끄적거린 논문 비슷한 나부랭이겠거니 했었다. 책장도 넘겨보지 않고 그저 심플한 책 표지를 보고 그렇게 집어넣은 책 때문에 난 고등학교에 올라오기까지 한비야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었다. 간간히 주위에서 한비야가 어쨌다더라. 그녀의 책이 어떻다더라 하는 이야기만 들어왔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러다 결국 알게 된 것이다. 중간쯤 흘러간 무릎팍 도사에서 한 여자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어? 한비야다!"하고 외치고 말았다. 한비야? 내가 그 여자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옆집에 살고 있던 언니처럼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한데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그녀가 쓴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그녀의 얼굴을 하고 이름을 외쳤을까? 아무튼 무릎팍 도사를 보며 한비야의 이야기를 되씹으며 나는 결심했다. 그녀의 책을 다 읽어봐야겠다고.

 

그녀는 밝은 사람이다. 그녀의 밝은 성격 만큼이나 문체도 깔끔하고 밝다. 그녀의 책을 다 읽은 후에 나는 내가 그은 밑줄 부분만 다시 읽어보았다. 책을 고르는 방법. 하고 싶은 일을 찾을 때 먼저 해야 할 일. 다히로 이야기에서 가장 끔찍했던 부분과 감동적이었던 부분. 100권 읽기 운동 본부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 종교가 전혀 다른 현지직원과 부엌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종교에 대해 알아가며 포용하던 장면. 모든 장면들이 머리 속에서 영상으로 변해 내 머리와 가슴을 울렸다.

 

"가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라."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전언을 그녀가 들었을 때, 마치 내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것 처럼 가슴이 벅차고 눈물이 흘렀다. 다히로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미 죽어버린 아이를 등에 들춰 매고 월드비전 의료팀에게 온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문턱을 넘었을 때 숨을 거둔 아이 앞에 몸을 떨며 울던 어머니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며 함께 울던 장면에서도 나는 그녀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물을 정화하는 알약을 구하지 못 해 살을 뚫고 나오는 기생중을 바라봐야만 하는 남부 수단 이야기도 모두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굳건한 그녀의 신앙에 대한 나의 부러움과 열악한 환경에서 열악하게 생활하며 불평불만 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날 슬프게 만들었다.

 

그녀의 책을 읽고 나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대로 나는 고작 전반 18분을 뛰기 시작한 학생이니 남은 시간동안 더 많이 배우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울고, 때쓰고 깨달으며 많이 사랑하고 많이 알아가고 싶다. 나는 그렇게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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