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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때에도 그랬지만 고등학생인 지금에도 나는 가끔 '내가 마법을 부릴 줄 알면 좋겠다.'라든지 '마법사가 내 앞에 나타나 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면 좋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곤 한다. 그만큼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되돌리고 싶은 일이 산더미와 같아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법사가 존재한다면…'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고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을 탓하고 있다보면 어느덧 나는 자연스럽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만약, 시간이 되돌려진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상상하곤 한다. 이는 내가 할 일이 없어서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보다 공상적이어서도 결코 아니다. 단지, 후회하는 일이 많을 뿐.
오늘만 해도 창업계획서 작성을 미루는 바람에 불려가고 싶지 않은 선생님께 불려가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결코 유쾌하지는 않는 일. 하지만 불려가는 그 순간에 머리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수십가지의 생각 중에서 나는 또 한번, 의식 중이든 무의식 중이든 간에 '~일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바라고 소망해도 과학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후회하고 있는 일에 대해 위로를 얻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얼마 전에 구입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하던 '마법사'라는 존재가 튀어나온다. 약간 심하게 똘끼 가득한 설정이었지만 그래도 '마법사'라는 것 자체 하나에 위안을 받았다. 직접적은 아니더라도 간접적으로나마 미지의 존재를 만났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감동이 내 마음을 지배한 것이다.
책임감이 과연 무엇이기에. 『위저드 베이커리』의 제빵사이자 마법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어 줄만한 빵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글을 읽고 있는 나조차도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고 싶을 정도로 유혹적인 능력을 가진 빵들을.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 빵을 사용했을때 오는 부작용과 결과는 오직 구매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안내 문구. 그 문구 하나에 내 어께가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내 가슴이 얼마나 싸늘하게 식어버렸는지 이 글을 쓴 작가는 알고 있을까? 내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바로, 책임. 무시하고 싶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단어다.
책임이 뭐길래. 대체 이게 뭐길래 나를 이렇게도 옥죄는 것일까? 나는 책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라고? 과연 내게 그럴 능력이 있는 것일까?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내게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책임은 어떻게 지는 거지? 올해 중반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간 잘 활동하던 방송부를 빠져나오며 선배들에게 쓴소리를 얻어 들었던 적이. 애들 사이의 트러블도 있는데다가 단장이라는 지위가 주는 압박감도 심심치 않았고, 무슨 일을 시켜도 하려고 하지 않는 후배들이나 동급생의 태도에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아 충동적으로 뛰쳐나온 방송부였다. 사람에 대한 정이란 정은 바닥을 치고 있어서 선배들에겐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선생님께 말씀 드려 방송부에서 문예부로 부서를 옮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비릿한 웃음을 띄운 채 지금껏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선배들을 보며 코웃음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한 일이 없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지금껏 내가 쓰러져가는 방송부 입지 굳혀보려고 얼마나 머리 쥐어싸면서 선생님들에게 아이디어 상의하고 최소한의 지원과 신뢰를 얻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나 찍찍 내뱉고 있는거다. 게다가 내가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라는 말에 또 한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영상제 참여에 대해 일을 벌여놨으니 수습하라는 거였는데, 영상제 참여할건지 이야기만 나오고 콘티나 스토리는 나 혼자 작성한게 전부였고 다른 선생님들한테는 전혀 말도 없이 우리들 사이에서 가타부타 말만 많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책임지라고.
아무튼 꽤나 말이 많았던 6개월 속에서 나는 책임 아닌 책임을 져야했고, 그 사이에 받은 스트레스와 상처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방송부에 가지고 있던 정까지 뚝 떨어지게 만드는 그 태도들에 사람 자체를 증오하게 만드는 놀라운 능력. 그저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마음 같아선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나온 빵을 그네들에게 돌려 내가 받은 상처 이상의 고통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책임이라는걸 져야하니, 그저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작가는 우리에게 '책임을 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언제나 자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앞서 생각하고, 그 일이 가져오는 결말과 변수를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지 판단한 후에 결정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나였더라면 분명 책임의 압박에 짓눌려 도망쳐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